지난 휴일 지인들과 하루 서너 차례 운행되는 경북선을 이용해 기차 여행을 다녀왔다. 경북선은 경부선의 김천역과 중앙선의 영주역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이었다. 용궁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예천군에 병합됐다. 문경역을 거쳐 용궁역에 도착하니, 여의주를 들고 있는 한 마리 용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용궁역에서 푸르스름한 논이 펼쳐진 길을 여유롭게 걷다보니, 어느덧 용궁향교에 도착했다. 용궁향교는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년) 처음 세워졌다. 1603년(선조 36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1636년(인조 14년)에는 세심루를 각각 중건했다. 강당인 명륜당 앞에 세워진 문루에는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인 세심정 편액이 걸려있다.
명륜당 앞에는 인화재, 양현재라고 붙여진 편액이 걸린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다. 앞뜰에서 명륜당을 바라보니, 조선이 나아갈 바를 고민하던 선비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용궁향교와 관련해서는 명나라 장수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수가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울산으로 가던 길에 공자 위패를 모셔 놓은 대성전에서 쉬려고 앉았단다. 그때 갑자기 대성전의 굵고 긴 대들보가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면서 뒤틀려 돌아갔다고 한다. 이 소리에 놀란 명나라 장수가 대성전 밖으로 뛰쳐나와 달아났다고 한다. 당시 명나라 군인들이 조선에 들어와서는 전쟁 중에 조선 백성을 수탈한 걸 은유적으로 비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용궁향교를 둘러본 후, 비룡산에 있는 장안사를 찾았다. 장안사는 759년 신라시대 경덕왕 때에 세워진 사찰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 금강산, 양산, 비룡산 세 곳에 각각 장안사라는 이름의 사찰을 건립했다.
비룡산에는 지금도 원산성이라고 불리는 산성이 아직 그 원형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원산성과 관련해서는 백제 시조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올 때 마한의 최후 보루였던 이곳을 점령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곳은 상당 기간 백제의 요새로서 삼국이 충돌했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으로는 고구려 온달 장군이 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서 내려오다가 한강에 있는 아차산성에서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장안사 뒤편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진 회룡포 전망대가 있다. 용궁면의 이름이 용왕이 사는 궁궐에서 따왔다면, 회룡포는 내성천이 굽이치는 모습이 용이 한 바퀴를 돈다는 뜻에서 나왔다. 회룡포 전망대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물돌이 마을이 보인다. 전망대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있으니, 내성천이 감싼 회룡포에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용궁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궁역 옆에 있는 용궁시장을 찾았다. 용궁시장은 장날이 아니었음에도 외지인이 많이 보였다. 관광객은 주로 순대, 오징어 불고기로 유명한 식당들을 찾았다. 맛있는 순대집이 많은 용궁시장은 매년 순대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관광객이 제유소라는 간판이 걸린 상점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사는 광경도 자주 보였다.
용궁역에는 매표소가 없다. 표값은 기차를 탄 후 기차 안에서 승무원에게 직접 지불한다. KTX 기차를 타면 속도가 빠른 만큼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 이용한 무궁화호는 느리지만 창밖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느린 기차 속도만큼이나 동행했던 이들과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얻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경수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hunlaw.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