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 의혹 수사' (21번째, 김태윤 기자)라는 제목으로 박 시장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보도했다. 방송이 공직자의 비리나 도덕성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책무다.
다만, 공직자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에는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최소한의 균형이 갖춰져 있어야 하며, 일방적으로 개인을 마녀 사냥 하는 태도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MBC 보도는 박 시장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대로 전달하기보다는 박 시장을 공격하려는 편파성 짙은 보도였다. 이 보도를 한 번 해부해보자. 앵커는 이렇게 시작했다.
[앵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 씨의 병역기피 의혹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측과 아들에 병역 기피 의혹을 제기한 의사들이 현재 8개월째 재판 중인데 이번에는 시민단체가 주신 씨를 고발하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 MBC 보도 중대부분의 앵커 멘트는 그 보도의 주제를 요약하고 있다. 이 앵커 멘트에서 보듯이 이 보도에서 전해주는 '사실'은 박 시장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제기한 의사들이 재판중인데 이어, 시민단체의 고발로 박 시장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무난하다. 저녁 종합뉴스에서 언급할만한 뉴스 가치가 있는 내용이다.
박 시장 아들 '무혐의'에 대해서는 얼버무려리포트에 들어가 보자. 기자는 먼저 박 시장 아들의 공군 입대, 입대 이후 자생한방병원 MRI 영상, 2012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적으로 찍은 MRI 사진까지 언급했다. 여기까지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기자는 이어 이렇게 말한다.
[기자] (세브란스) 병원은 "두 곳의 MRI 사진은 동일인의 것"이라고 밝혀 논란은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전문의들이 계속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 MBC 보도 중이 기자 멘트에는 두 가지 생략된 말이 있다. 우선 세브란스 병원이 동일인의 것이라고 밝혔다고만 언급하고 있지만, 세브란스 병원 공개 검증 이후, 병무청은 보충역 판정 당시 MRI가 박주신씨 것임을 확인했다. 병원이 밝힌 것과 병무청이 밝힌 것은 시청자에게 그 뉘앙스가 다름에도 기자는 이를 정확히 언급해주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 기자는 세브란스 병원의 공개 검증과 전문의들이 계속 의혹을 제기하는 사이 일어난 법적 판단을 언급하지 않았다. 세브란스 공개 검증 이후, 검찰은 2013년 5월 박 시장 아들에 대한 병역법 위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기자는 이런 검찰 처분을 언급하지도 않은 채 "논란은 끝나는 듯했"는데 "계속 의혹을 제기했"다고 얼버무렸다. 의도성이 있든 없든 이는 주요한 사안을 누락해 결과적으로 왜곡 보도가 된 셈이다.
허위 사실 '꼼꼼하게' 유포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음부터다. 보도는 기자 멘트와 더불어 양승오 박사의 녹취를 두 번이나 인용하면서 허위 사실인 병역 비리 의혹을 '꼼꼼하게' 보도했다.
[기자] 영상의학 전문가인 양승오 박사는 자생병원에서 찍은 주신씨 MRI 사진은 "20대가 아닌 40대 남성의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양승오 박사] 저는 처음 그 사진을 보는 순간 20대에서는 불가능한 골수 패턴이다. [기자] 또한 주신씨가 작년에 영국 유학을 앞두고 비자 발급용으로 찍은 가슴 방사선 사진과 자생병원에서 병역 면제용으로 제출한 MRI와 함께 포함된 흉부 사진은 흉추의 극상돌기와 석회화 소견 등이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승오 박사] 이것은 공식적인 자료입니다. 두 피사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고도 남는 사진입니다. - MBC 보도 중MBC가 양 박사 등의 박 시장 아들 병역 비리 의혹 주장을 다루려면, 최소한 현재까지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의혹 제기가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보도에 언급된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허위 사실로 법적 판단이 내려진 주장들을 새삼 꼼꼼하게 정리한 것일 뿐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보도와 같은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기소했고,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한 이 중 1인은 올해 7월 울산지방법원에서 '허위사실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위반죄'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MBC는 이런 내용 또한 전혀 담지 않은 채 의혹만을 나열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보도는 법정에서 허위 사실로 유죄를 받은 내용(1심이긴 하지만)을 MBC라는 공영방송을 통해 재유포한 것이다.
악의적인 표현들마지막으로 MBC 보도는 박 시장이 선관위에 고발했다가 취하했으나, 오히려 의사들이 법정에서 판단을 받겠다고 주장해 재판이 8개월째 진행 중인 것처럼 표현했다.
[기자] 박원순 시장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의혹을 제기한 핵의학과 양승오 박사와 치과의사 김우현 박사 등 7명을 선관위에 고발했다가 취하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의사들이 법정에서 판단을 받겠다며 주장해 재판은 8개월째 진행 중입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최근 시민 1천 명으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박주신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공안 2부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 MBC 보도 중이 기자 멘트만 보면 허위 사실 유포자들은 확신에 차서 박 시장의 고소 취하마저 고사하고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법정에서 판단을 받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다. 선관위가 이들의 죄질을 판단해 검찰에 고발했고, 이에 따라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기소해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자의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라는 표현도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서울시장 법률대리인이 보도자료에서 밝힌 것처럼, 세브란스 공개 검증 이후 "법원, 검찰, 병무청 등 국가 기관이 판결, 처분 등의 공적 행위를 통해 '병역 의혹'이 사실 무근임을 확인한 것만 해도 이번이 6번째"이기 때문이다(서울시청 보도자료 표 참조). 따라서 이 또한 명백한 왜곡 보도다.
1) 병무청 2013. 2. 6 보충역(공익근무) 판정 당시 MRI가 박주신씨 것임을 CT, 신분 인식 카드발급 시스템으로 확인 2) 검찰 2013. 5. 28 박원순 시장 아들에 대한 병역법 위반 무혐의 처분3) 법원 2014. 4. 21 병역 비리 의혹 제기자들에 대한 '허위사실유포금지가처분 결정' 4) 검찰 2014. 11. 26 병역 비리 의혹 제기자들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위반죄' 기소 단행 5) 법원 2015. 7. 17 '허위사실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위반죄' 유죄 판결(울산지방법원 1심 판결) 6) 법원 2015. 9. 3. 서울시청 앞 1인 시위자에 대한 '허위사실유포금지가처분 결정' - 서울시청 법률대리인 보도자료 중
이제 MBC 보도는 법원에서 보도의 편파성과 왜곡에 대해 다투게 되었다(
관련 기사 : 박원순 "관용도 지켜줄 가치 있을 때 베푸는 것"). 서울시가 지난 2일 이 보도를 들어 MBC를 형사 고발 및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은 이번 MBC 보도에 대해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의식해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싶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음해 공작이지 정상적인 보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민언련은 이 보도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보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심위)에 이 방송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다. 방심위의 엄정한 심의를 기대해봐야겠지만, 독자 스스로 MBC 보도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했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한 번 점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제 9조(공정성) ② 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여야 한다. 제 14조(객관성)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 제 20조(명예훼손 금지) ① 방송은 타인(자연인과 법인, 기타 단체를 포함한다)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되어 있다. -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중 덧붙이는 글 | '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진순(민언련 정책위원), 정민영(변호사),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