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산에 오르다 제주에는 이름이 '산'으로 끝나는 오름이 다섯 군데 있다. 한라산, 성산, 산방산, 두럭산 그리고 영주산. 이날 오름 투어가 진행된 곳은 영주산. 해발 326m, 신선이 살던 산이라고 해서 영주산이라 불리게 된 오름이다.
입구를 지나쳐 우리가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하늘로 쭉 뻗어있는 '천국의 계단'이었다. 아래에서 보면 계단의 끝이 하늘에 맞닿아 있어 이렇듯 멋진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천국에 도착한 우리. 천국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초원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넓고 아름다운 초원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초원 덕분에 영주산은 '제주의 알프스'라 불리기도 한다.
알프스를 걷는 기분이 이럴까. 이렇듯 설레고 충만할까. 어제와는 달리 더 없이 화창한 제주의 아침이었다. 눈 앞의 모든 것들은 자신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그것들을 보는 내 눈은 어느 아침보다 더 맑아졌다.
함께 오름을 오르는 우리들은 가끔 이야기를 나누며 초원을 달리듯 신나게 걸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사장님이 뾰족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 차있는 울창한 숲을 가리켰다. 틈 없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나무들 사이를 유심히 지켜보라는 사장님의 말. 그럼 '그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뭐를요?""노루요."한때는 유해 동물로 낙인 찍혀 멸종 위기에 놓였던 노루가 요즘엔 가끔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노루를 부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우리에게 전수해주었다. 양 손을 입가에 갖다 대고 숲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면 된다는 거였다.
"노오~루우~."말도 안 되는 노하우였지만 우리 중 몇 명은 정말 손을 입가에 대고 '노오~루우~'를 외쳤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노루인지 모르는 노루는 결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초원을 걷던 우리 앞에 또 다른 계단이 나타났다. 나는 이 계단이야말로 진짜 '천국의 계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니, 계단은 분명 하늘로 이어져 있는듯 보였다. 저 끝에 다다르면 정말 하늘로 올라가게 될 지도 몰랐다.
길게 뻗어있는 계단과 계단을 감싸듯 피어난 색색의 꽃들을 감상하며 우리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기에 각자 자기의 리듬대로 빨리, 또는 천천히 오를 수 있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걸음이 유독 느렸다. 초원과 하늘, 꽃과 계단,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 오름들 그리고 이 모든 걸 감싸고 있는 영주산의 기운을 사진기에 담느라 그들은 매우 바빠 보였다.
계단을 다 오르자 억새인듯 갈대인듯, 키 크고 유연한 풀들이 사잇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기분 좋게 그 길을 통과하자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는 풀들이 밤새 머금었던 물기를 우리에게 탈탈 털어냈다. 바지는 축축이 젖었고, 운동화는 진흙 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고개를 숙여오는 풀들에 손을 내밀며 그들의 신선한 물기를 받아내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제주의 오름은 전망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주위 경관이 한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많은 사진을 찍었다. 주로 사장님의 지시대로 이 포즈, 저 포즈를 잡아보는 식이었지만, 언제 이런 사진을 찍어볼까 싶어 정말 열심히 방방 뛰었던 것 같다.
어제보다 더 느긋하게 오름을 즐겼던지 아침 식사 시간에 겨우 맞춰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식탁에는 이미 사장님 어머니의 맛있는 아침이 맛깔나게 차려져 있었다. 이 밥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나는 오늘 또 새로운 곳으로 출발한다.
새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에는 동행이 있었다. 지난 밤 함께 밤을 보낸 그녀는 묵을 곳을 찾고 있었고, 나는 혹시 몰라 내가 묵게 될 곳을 한 번 보여줘 봤다. 그녀는 그곳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 밤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어제 저녁 고깃집에서 처음 만났다. 고깃집에 먼저 도착한 나를 포함한 몇 명의 게스트들은 그녀를 기다리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막 제주에 도착한 그녀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기 전에 먼저 고깃집으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얼마간 기다리니 도착한 그녀. 첫 인사는 "아줌마라 미안해요"였다. 이어지는 또 다른 소개의 말은
"나는 주신을 모시고 있어요". "주신이요?""맥주, 소주, 막걸리 다 좋아한다구요. 난 술 마시러 여행 다니는 것 같아. 호호."주(酒)신을 모신다는 그분을 앞으로는 주신 언니로 부르기로 했다. '주신' 언니는 우아한 얼굴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찢어진 청바지에 목깃을 잔뜩 세운 검정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포스가 강렬했다. 그래서인지 주신 언니가 막걸리 한 잔을 비우면, 나도 저절로 한 잔 비우게 됐고, 언니가 또 한 잔을 비우면, 나도 또 한 잔을 비우게 됐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쿵짝, 쿵짝'하던 우리. 오늘 밤도 같이 '쿵짝' 해보기로 했다.
다시 새 게스트하우스로남원읍 위미리에 위치한 새 게스트하우스는 인터넷으로 본 것보다 더 근사했다. 2층 높이의 통 유리가 바다를 향해 시원스레 가슴을 열고 있었다. 1층은 카페 겸 남자 전용 게스트하우스였고, 2층은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 사장님이 근사한 것도 참 마음에 들었다. 예술가의 풍모가 물씬 풍겨오는 사장님은 왠지 작가이거나 화가일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오랜 시간을 금융업 종사자로 살았단다. 3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 제주로 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거란다.
사장님의 배려로 일찍 체크인을 할 수 있었던 우리는 우선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제 막 도착해 피곤할 리 없는 주신 언니는 산책을 나가기로 했고, 나는 이번 여행 처음으로 낮잠을 시도했다. 너무 피곤했던 끝인지 뭔가 환상체험을 하듯 잠을 잔 것 같다. 이상한 꿈도 꾸고 신음 소리도 마구 내면서. '허억. 흑. 으응. 응?' 하는 소리들은 내가 낸 소리였겠지?
잠인지 환상체험인지 구별이 안 되는 어떤 행위를 하던 도중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주신 언니가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
"막걸리 마실래요, 맥주 마실래요?" 잠에서 덜 깬 나는 본능대로 대답했다.
"전 맥주가...""안주는?""전 없어도 되는데... 언니 드시려면 과자가 좋지 않을까요?""그걸로 돼요?""술은 공복에 마셔야...""아, 좋네. 오케이. 금방 갈게요."다시 잠에 빠져들었다가 주신 언니가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까 문자를 주고 받은 후 40분이 지나 있었다. 주신 언니는 홀로 술을 사러 멀리 있는 마트까지 걸어갔다 왔단다.
"근처에 편의점 없어요?""몰라요. 안 보이던데. 제주도는 다 좋은데 편의 시설이 너무 없어. 뭐, 그래서 좋은 거지만. 계속 잘 거에요?"밖을 보니 서서히 어둠이 내려오고 있다. 이대로 계속 자래도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맥주를 앞에 두고 그럴 순 없지.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앞에 마련된 철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만히 앉아서도 야자수 나무 사이사이로 바다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주위가 워낙 조용했던 터라 '콰, 콰'하는 바닷소리도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여행 중인 고3 엄마 바닷바람을 상쾌하게 맞으며 '딱' 맥주를 땄다. 자, 건배. 맥주를 한 모금 마시자 모든 피곤이 한순간에 다 사라지는 듯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끼리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가장 완벽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주신 언니에게 물었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시나 봐요. 계속 혼자 다니신 거에요?""몇 년 안 됐어요. 한 5, 6년 됐나. 그 전에는 여행도 잘 안 다녔지. 남편 출장 갈 때 몇 번 따라간 걸 제외하면 거의 없어요."알고 보니 주신 언니의 첫째 딸은 벌써 대학생이라고 했다. 엄마를 똑 닮아 아주 예쁘다고. 사진을 보니 정말 예뻤다. 현재 연극영화과에 다니고 있단다. 둘째도 대학생이랬다. 그리고 막내 아들은 무려 고3. 고3 엄마가 혼자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뭔가 반전 있는 이야기가 주신 언니에게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물었다.
"와, 멋져요. 그런데 아들이 뭐라고 안 해요?" "전혀요. 우리 애들은 부모한테 고마워해야 해. 우리가 참 밝게 키웠어요. 애들이 인성도 참 좋고. 그런데 공부를 다 못해. 후후. 우리가 공부는 안 시켰거든. 물론 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대신 즐겁게 놀라고 했어요. 언젠가는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하더라고. '우린 정말 운이 좋다. 이런 부모가 어디 있냐.'하고. 공부 안 하는 고3이라 여행도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이제 애들도 내가 혼자 여행 다니는 거 익숙해졌거든요."주신 언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언니는 혼자 여행을 다니기 전 많이 우울했다고 한다. 애들도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이젠 내 몫의 일이 더는 없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고. 그 무렵 주신 언니는 괜히 남편에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남편이 꼬시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고생고생을 하다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며.
그러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울을 떨쳐내는 건 누구에게 떠넘길 수 없는 내 몫의 일이라고 생각 했단다. 그렇게 처음으로 혼자 여행길에 올랐다. 며칠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외롭기도 하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 이거구나. 나는 지금 온전히 나야. 여행이 나를 찾아주었구나.'
"그때부터 일년에 한, 두 번은 꼭 여행을 해요. 처음엔 무지 긴장했어. 여행을 가면 여행객들 나이가 너무 어리더라고. 아줌마가 끼면 괜히 분위기를 깰 것 같아 엄청 조심했지. 그러다 이게 뭔가 싶어 그냥 막 들이댔어요. 나, 아줌마다. 그러니 끼워줘라. 그러니 애들도 나를 편히 대하더라고. 작년에 제주도를 여행할 땐 한 남자애가 한 여자애를 좋아하는 것 같길래 내가 커플로 만들어주기도 했지. 보름씨는 나이가 어떻게 돼? 아,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 제주도에선 맺어지긴 힘들겠다(이 부분에서 난 맥주를 쭈우우욱 들이켰다). 아무튼, 난 여행이 너무 좋아.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가면 일상도 충만해지고. 남편이랑 애들도 그걸 아니깐 나를 내버려두는 거지. 내가 행복해야 자기들도 행복할 거 아니야."주신 언니는 조금은 불행했던 시간을 이겨낸 후 멋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연스레 내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도 한 열 살만 젊었으면 혼자 여행도 하고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 한 스무 살은 젊어져야 하나. 가족밖에 모르는 내 엄마도 주신 언니처럼 일상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엄마만의 방법을 찾아내면 좋을 것 같았다.
나를 찾는답시고 수많은 시간을 내게 골몰해 있느라 엄마의 시간에 대해서는 그간 얼마나 무심했던가. 그런데, 그렇다고 엄마더러 갑자기 혼자 여행을 떠나보라고 막 떠밀 수는 없고 어떻게 한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말하는 도중에 주신 언니에게는 총 네 통의 전화가 왔다. 남편과 두 딸 그리고 막내 아들. 하나같이 쩌렁쩌렁한 목소리여서인지 옆에 있는 나도 전화 내용을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 없었다. 주신 언니 말대로 가족 모두가 굉장히 밝은 성격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다 엄마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술 조금만 마셔!""응, 당연하지."전화를 끝낸 주신 언니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날이 정말 좋네요. 보름씨랑 이야기하니 기분도 참 좋고. 그런데 맥주를 다 마셨네? 우리 사러 갈래요?""네. 좋죠."새로 맥주를 사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차양막 안으로 옮겨 놓고 우리는 다시 자리를 잡았다. 바닷소리에 빗소리가 얹어져 분위기는 한층 낭만적이 되었다. 맥주 때문에 기분이 더 좋아지신 걸까. 주신 언니는 본인이 언제부터 주신을 모시게 되었는지를 본격적으로 풀어놓기 시작한다. 나는 아주 잠깐 딴 생각을 했다. '내일 한라산 가야 하는데. 내일도 비가 오면 어쩌지' 하지만 걱정은 그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우리는 그날 밤 기분 좋게 오랜 시간을 이야기했고, 나중에는 주신 언니의 가공할만한 친화력으로 같은 방에 있던 이십대 초반 게스트들과도 함께하게 되었다. 거기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스태프까지. 그러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한라산 때문에 중간에 혼자 나와야 했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30일간의 제주 여행 연재글입니다.
개인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