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판결 기사, 법조계 소식. 하지만 흥미 위주의 기사로는 내막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법조계 소식을 쉽게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법률, 법원·검찰 관련 소식 등 누구나 알아야 할 법률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간추려서 단번에 한 주간 법조계 소식>, 줄여서 <간단한 법>이 법을 보는 올바른 눈을 갖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 기자말<간단한법> 다섯 번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① 마지막 문자는 "아이들과 아내를 잘 부탁해"- 승승장구 대기업 임원, 왜 스스로 목숨 끊었나② 이재현 회장, 김승연 회장처럼 미소 짓나- 대법, "배임 유죄 부분 다시 계산하라" 파기환송 ③ 진상규명은 없고, 위자료만 남긴 재판-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대법 "사인미상"으로 결론④ "미 대사 습격은 살인행위" 징역 12년 - 김기종씨,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죄⑤ 법원 판결에 울고 웃는 교육감들- 조희연 선고유예로 '한숨' 돌리고 김병우는 '당선무효' 위기마지막 문자는 "아이들과 아내를 잘 부탁해"
"처남, 우리 아이들하고 아내를 잘 부탁해."A(당시 46세)씨는 생애 마지막으로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뒤 이른 아침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옥상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기업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걸까.
LG 파워콤에서 근무하던 그는 2010년 합병 후 LG 유플러스 상무로 IPTV 사업부장을 맡았다. 이동통신사 최연소 임원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그였지만 과중한 업무, 실적 압박 등 남모를 고민이 컸다. 게다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LG 파워콤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왔다.
A씨는 오전 8시부터 늦은 밤까지 일했고 주말에도 거래처 접대를 위해 골프모임에 참석하거나 근무를 해왔다. 그는 2012년부터 회사에서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 부진이 계속되면서 무기력감과 우울증에 빠진 그는 심지어 집에서 "힘들다"라면서 아내에게 안아달라고까지 했다.
그는 급기야 업무상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2012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A씨의 아내는 "남편은 업무상 사망했다"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관건은 업무와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에 있었다. 다행히도 법원은 A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김병수 부장)는 "2012년 이전까지 우울증세를 앓은 전력이 없고, 개인신상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등 직장에서 받게 된 업무상 스트레스를 제외하고는 자살은 선택할 만한 동기나 계기가 될만한 사유를 찾아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자살 직전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하여 우울증세가 발생하고 악화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라면서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라고 판시했다.
3년 만에 A씨는 산재를 인정받았다. 직장인의 업무 스트레스는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는 걸까.
'대법 파기환송' 이재현 회장, 김승연 회장처럼 미소 짓나
유죄지만 금액 산정이 잘못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배임죄 사건을 맡은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런 모습, 어디선가 본 듯하다. 바로 2011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배임 사건에서다.
업무상 횡령·배임·탈세로 기소된 김 회장은 1심 징역 4년 → 2심 징역 3년 → 대법원 파기환송의 경로를 거쳤다. 파기사유는 배임액 계산이 잘못됐으니 다시 계산하라는 취지였다. 이 회장도 여기까지는 거의 비슷하다. 물론 김 회장처럼 집행유예(징역 3년에 집유 5년)로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회장 역시 업무상 횡령·배임·탈세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전부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10일 대법원(2부 주심 김창석 대법관)은 배임 부분에 제동을 걸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이 회장의 소유 회사인 '팬 재팬'이 건물을 사면서 CJ의 일본법인인 '씨제이 재팬'이 300억 원대의 연대보증을 서게 했다는 것이다. 1심과 2심도 배임으로 보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팬 재팬'이 대출금을 변제할 자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보증액 전부를 손해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특별법이 아닌 일방 형법의 적용대상이라는 말이다. 즉 "업무상 배임으로 취득한 재산상 이익이 있더라도 그 가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중처벌할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파기환송심에서도 유죄 가능성은 크지만, 형이 더 낮아질 가능성은 작지 않다.
구속집행정지로 입원 중인 이 회장은 대법원 판결로 수감은 면했다. 2심 재판부는 다시 한 번 재벌의 3.5법칙(집행유예형 중 가장 높은 수위인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것을 의미)을 확인해 줄까, 아니면 수백억 대 비리 혐의에 대해 단죄를 내릴까.
허원근 일병 사망, 진상규명은 없고 위자료만 남긴 재판
진상규명은 없고, 위자료만 남았다.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이 허무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대법원은 사인을 밝히지 못한 채 유족에게 일부 배상을 명한 2심 판결을 유지했다.
허 일병은 1984년 M16 소총으로 양쪽 가슴에 한 발씩, 머리에 한 발 등 총 세 발을 맞은 채 사망했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2004년 6월 2기 의문사위는 타살로 결론 내렸으나 국방부는 자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허 일병의 유족들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타살로 보았다. 재판부는 "소속 부대에서는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두 발을 추가로 발사하고 사체를 이동시키는 등 사건을 은폐·조작하였다"라면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반면 2심은 자살로 결론을 바꾼다. '허 일병이 스스로 M16 소총으로 가슴에 각 1발씩 발사하였으나 사망하지 않자 비스듬히 누운 자세에서 다시 1발을 발사하여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군 수사기관의 부실수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가가 위자료를 일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2부 주심 이상훈 대법관)은 "자살도, 타살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나온 자료만으로는 타살이나 은폐·조작을 인정할 수 없고, 그렇다고 2심의 주장처럼 자살하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손해배상 3억 원으로 부실수사에 대한 잘못만 추궁했다.
대법원은 그 책임을 "군 수사기관의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황" 탓으로 돌린다. 과연 그럴까. 애초에 군 수사기관의 조사로 밝혀질 사안이었다면 30년간 의문사로 남지도 않았으리라. 군대 → 의문사위원회 → 검찰 → 법원을 거쳐도 해결되지 않는 죽음을 이제 누가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미 대사 습격은 살인행위" 김기종 징역 12년,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죄
지난 3월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종씨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3월 5일 세종문화회관 열린 주한 미국대사 초청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대사를 발견하고 과도로 공격해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 재판장 김동아)는 김씨에게 살인미수, 외국사절폭행죄를 적용했다.
김씨는 "살해할 의사가 없었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과도로 사람의 얼굴 또는 목 부위에 중대한 상해를 가하는 경우 생명에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라면서 "범행의 경위, 동기, 상해 부위와 정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주장의 당부를 떠나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 방법을 선택하였다는 점만으로도 비난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라고 지적하면서도 "피고인이 궁핍한 환경에서도 개인적 이익을 챙기지 않고 남북한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구활동과 시민운동을 해온 것"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거론했다.
한편, 검찰은 미 대사 습격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에 동조한 것이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추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동맹국 외교사절을 공격한 것은 중대한 사건"이라면서도 "양국의 동맹·외교관계가 악화될 위험이 발생하였다는 사정이 있다고 하여 이로써 곧바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발생하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법원 판결에 울고 웃는 교육감 : 한숨 돌린 조희연, 위기 처한 김병우
법원 판결에 교육감들이 울고 웃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심에서 선고유예형 판결로 모처럼 웃었고, 김병우 충북교육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낯빛이 어두워졌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6·4 지방선거 운동 중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의혹을 제기한 혐의(허의사실공표)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0만 원 형을 선고받았다. 조 교육감이 고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일이 임박해서 국회 기자회견, 이메일, 라디오 등 전파성이 높은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렸다고 판단한 결과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 교육감의 허위사실공표로 인하여) 고승덕이 낙선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하면서, 더 나아가 "선거과정에서 적격검증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승덕에게 객관적인 소명자료의 제시를 요구한 것이어서 그 경위에 참작할 점이 있다"라고까지 평가했다. 그런데도 결과는 당선무효형이었다. 판결이 나자 유·무죄 공방과 함께 조 교육감이 선거라는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결과를 뒤집을 정도로 심각한 불법을 저질렀는지 논쟁이 벌어졌다.
허위사실공표죄의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500만 원~3000만 원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재판부가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든다. 형을 감경한다고 해도 벌금 100만 원 밑으로 내려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조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당선무효 위기에 몰린 조 교육감은 2심에서 그야말로 기사회생했다. 2심 재판부(서울고법 제6형사부 재판장 김상환 부장)가 지난 4일 일부 무죄를 선고했고, 나머지 유죄 부분도 벌금 250만 원의 선고유예로 판결했기 때문이다. 선고유예란 벌금형 등 비교적 가벼운 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일정기간 동안 형의 선고를 미루고, 2년이 지나면 형이 없던 것으로 보는 제도다.
먼저 재판부는 국회 기자회견 부분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사고 있다'는 정도의 문제 제기를 허위사실로 보기 어렵고 허위라는 인식도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허위사실공표죄를 적용함에 있어서 선거의 공정성의 무게를 의식하되, 대의민주주의 핵심인 선거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의 비중 역시 균형감 있게, 섬세하게 염두에 두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메일과 라디오 인터뷰 부분은 미필적 고의를 인정, 유죄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 선거는 기본적으로 경쟁후보자간 상호공방, 비판, 공직적격 검증 기회를 제공하고 ▲ 조 교육감의 행위가 선거결과에 직접적, 의미있는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없으며 ▲ 선관위도 경고처분에 그친 점 ▲ 조 교육감이 사죄의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벌금 250만 원을 선고유예했다.
이 판결에 양쪽 모두 상고를 제기, 다시 대법원의 판단이 남았다. 조 교육감은 이제 한숨을 돌렸을 뿐이다.
반면, 선거기간 호별방문 위반 등으로 2심에서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은 김병우 충북교육감은 자리가 위태롭게 됐다. 일부 무죄 부분을 대법원(1부 주심 김용덕 대법관)이 깨고, 유죄 취지로 다시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김 교육감은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뒤 학교, 관공서 사무실 등을 방문하여 지지를 호소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전고법은 학교 방문은 유죄라도 법원·검찰과 관공서 사무실 방문은 공개된 장소여서 무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대법원은 "모두 선거운동을 위한 방문행위였다"라면서 유죄라고 봤다. 또 예비후보 등록 전 선거구민에게 문자를 보낸 행위도 선거법 위반이라며 함께 파기환송했다. 김 교육감은 대법원에 또 한 건의 선거법 사건이 계류 중이어서 과연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