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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앙코르와트 메인 사원의 뒤편.
앙코르와트 메인 사원의 뒤편. ⓒ 구창웅

 시엠립 곳곳에 산재한 크메르제국의 흔적.
시엠립 곳곳에 산재한 크메르제국의 흔적. ⓒ 구창웅

 1000년 세월 동안 한자리에 서서 명멸하는 제국의 역사를 지켜본 석상.
1000년 세월 동안 한자리에 서서 명멸하는 제국의 역사를 지켜본 석상. ⓒ 구창웅

 압사라. 앙코르와트 부조 미학의 절정이다.
압사라. 앙코르와트 부조 미학의 절정이다. ⓒ 구창울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마땅할 캄보디아의 아이들.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마땅할 캄보디아의 아이들. ⓒ 구창웅

앙코르와트
-크메르, 보석보다 빛나는 돌의 나라

아이들은 일 년 내내
맨발로 크메르의 역사를 밟고 다닌다
자야바르만과 수르야바르만을
발음하지 않더라도 빛나는 땅
강위력한 왕조는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데바라자(神王)를 만들고
백만 마리 코끼리와 천만 신민(神民)의 믿음
돌을 쪼아 보석으로 빛나게 했다
앙코르와트, 지구 위 가장 아름다운 석조건물
누가 있다면 나서봐라, 이 말을 부정할 자
밥을 굶는 가난과
이백만 명을 학살한 이데올로기로도
궤멸시키지 못한 지난 세기의 광영
해자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은
지상에서 천상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비추고
압사라 여신의 도드라진 젖꼭지
천 년 세월에 깎이고도 고혹 잃지 않았다

프놈 바켕과 앙코르 톰 그늘마다 들어찬 목소리
슬픔과 환희, 눈물과 웃음은 대극이 아님을
깨달은 자는 사원에서 진실을 읽고 간다
갈라진 돌 틈마다 들어찬 간절한 사연들
누구는 세상 무너지는 통곡을
다른 누구는 가장 빛나는 고백을
왕과 신의 거처에 남기고 돌아갔다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은 장엄이
서쪽 하늘 아래 석양으로 붉게 타오를 때
캄보디아가, 아니 아시아가, 아니 전 세계가
동시에 고개를 조아리는 숨 가쁜 풍경
크메르의 역사는 이미 몰락을 넘어섰다
고통과 피 흘림 속에서 마침내 완성된 신성(神聖)
바닥을 구르는 자갈 하나까지 해탈에 이른 땅

눈부신 일출이 사원 꼭대기에 걸릴 때
현재와 미래가 감히 어쩌지 못할 과거는 존재를 드러내고
이끼마저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월
신성한 호수에 몸을 씻는 코끼리의 울음소리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건 행일까, 불행일까
영과 욕, 부침을 소리 없이 지켜봤을 거대한 나무들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의 하늘을 지키고 섰다
끝나지 않을 부연으로도 해명되지 못할 비밀과 감탄
캄보디아 시엠립 정글 속 크메르의 사원들.
천 년 전 그러했듯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앙코르와트,
인류가 끝끝내 가 닿지 못할 멀고 먼 피안(彼岸)의 나라.


#캄보디아#앙코르와트#시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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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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