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앙코르와트-크메르, 보석보다 빛나는 돌의 나라아이들은 일 년 내내 맨발로 크메르의 역사를 밟고 다닌다자야바르만과 수르야바르만을 발음하지 않더라도 빛나는 땅강위력한 왕조는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할 데바라자(神王)를 만들고백만 마리 코끼리와 천만 신민(神民)의 믿음돌을 쪼아 보석으로 빛나게 했다앙코르와트, 지구 위 가장 아름다운 석조건물누가 있다면 나서봐라, 이 말을 부정할 자밥을 굶는 가난과이백만 명을 학살한 이데올로기로도궤멸시키지 못한 지난 세기의 광영해자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은지상에서 천상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비추고압사라 여신의 도드라진 젖꼭지천 년 세월에 깎이고도 고혹 잃지 않았다프놈 바켕과 앙코르 톰 그늘마다 들어찬 목소리슬픔과 환희, 눈물과 웃음은 대극이 아님을깨달은 자는 사원에서 진실을 읽고 간다갈라진 돌 틈마다 들어찬 간절한 사연들누구는 세상 무너지는 통곡을다른 누구는 가장 빛나는 고백을 왕과 신의 거처에 남기고 돌아갔다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은 장엄이서쪽 하늘 아래 석양으로 붉게 타오를 때캄보디아가, 아니 아시아가, 아니 전 세계가동시에 고개를 조아리는 숨 가쁜 풍경크메르의 역사는 이미 몰락을 넘어섰다 고통과 피 흘림 속에서 마침내 완성된 신성(神聖)바닥을 구르는 자갈 하나까지 해탈에 이른 땅눈부신 일출이 사원 꼭대기에 걸릴 때 현재와 미래가 감히 어쩌지 못할 과거는 존재를 드러내고이끼마저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월신성한 호수에 몸을 씻는 코끼리의 울음소리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건 행일까, 불행일까영과 욕, 부침을 소리 없이 지켜봤을 거대한 나무들만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의 하늘을 지키고 섰다끝나지 않을 부연으로도 해명되지 못할 비밀과 감탄캄보디아 시엠립 정글 속 크메르의 사원들.천 년 전 그러했듯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앙코르와트, 인류가 끝끝내 가 닿지 못할 멀고 먼 피안(彼岸)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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