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그리 대중적이지 않지만 그동안 정치와 사회 분야에 적잖은 영향력을 끼쳐왔다. '경제발전'에만 집중돼 있던 사회적 관심사가 '복지'로 옮겨 오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는다. 진보정당뿐 아니라 과거의 민주당, 그리고 지금의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복지정책을 수립하는 데 이 단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복지 담론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 운동' 단체였다.
그들이 '창당'을 선언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난 8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복지국가 정당 대국민제안대회'를 열고 정식으로 창당 계획을 밝혔다. 정치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직접 정치를 선언한 것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에서 수많은 신당 창당설이 흘러나오지만 대부분 기성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다. '새로운 세력'으로 정치권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창당 시도는 주목 받는다.
"야당, 고위층에 의해 '보편적 복지' 이식"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야당을 통해 복지국가 정치세력화를 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낡은 정치로는 이 시대가 원하는 어떠한 구조적 개혁도 할 수 없다. 완전히 파괴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야당을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협의체"라며 "사실상 정치자영업자들의 집단"이라고 맹비판했다.
그는 천정배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전망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기성 정당으로 들어갈 확률은 0%"라며 "천 의원은 좋은 정치인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분들도 기존의 낡은 정치의 구성요소가 돼 버렸다. 천 의원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해도 신당을 창당한다면 그것 자체로 낡은 정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공동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그동안 사단법인으로 복지의제와 관련해 학술적이고 사회운동적인 활동을 해왔다. 정당을 창당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그동안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만들기 위해 운동해 왔다. 정책 연구와 개발, 이게 X축이다. 정책이 있어도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국민운동체가 필요했다. 광주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지역운동조직을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렸다. 이게 Y축이다. 하지만 운동만으로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 법과 제도가 다 바뀌어야 한다. 그걸 하는 게 정치다. 그게 Z축이다.
Z축이 바로 복지국가의 정치세력화다. 처음에는 이걸 야당을 통해 이루려고 했다. 먼저 진보정당을 찾아가 그들의 반자본주의 노선을 복지국가 노선으로 바꿨다. 또 (당시) 민주당을 찾아가 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등을 만나 이들을 복지국가주의로 교화 시켰다.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정동영이었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우리 슬로건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그 결과, 민주당 당헌에 '보편적 복지'가 들어갔다. 자유주의 정당에 사회민주적 요소가 들어간 것이다. 정치사적으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한계가 금방 드러났다. 보편적 복지라는 노선은 당원들의 총의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일부 고위층 정치인에 의해 이식됐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 기성 정당으로는 복지국가 정치세력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우리 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불행의 늪에 빠졌는데 누가 집권을 했나 보면 지금 거대양당이 10년씩 집권했다. 그들이 다 망쳐 놨다. 과거의 낡은 정치로는 이 시대가 원하는 어떠한 구조적 개혁도 할 수 없다. 그 구조를 수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파괴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소득층 증세로 시작해 중산층까지 증세해야"- 현재 야당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복지국가 정당'이 기존의 야당과 어떤 차이가 있나?"지난 8월 25일 '복지국가 정당 대국민제안대회'를 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설명회를 하는 중인데, 그런 질문이 나올 걸로 예상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왜 그걸 묻지 않는지 거꾸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다르다는 걸 알고 있는데 뭐 하러 물어보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성의 낡은 정치가 무엇인지 대중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것과 다른 정당을 만든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영호남 지역주의 정당, 특정 인물에 의존하는 것이 낡은 정치다. 조선일보와 서울대학교가 공동으로 한 국민 의식조사에서 68%는 정치를 불신한다고 했다. 또 63%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했다. 정치가 내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정치효능감' 조사에서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12%밖에 안됐다. 나머지 88%는 정치가 내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기성 정치가 거대한 실패를 했다는 얘기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과 같이 할 수 없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지금 현재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은 지난 15년의 세월 동안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기성 정치에 도전장을 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들도 낡은 정치의 구성요소가 됐다. 자신들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인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기존의 진보정당으로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면 내가 입당하는 게 맞지만, 이미 못한다는 결론이 났다."
- 그렇다면 복지국가 정당은 어떻게 기성정당과 구별될 수 있는가?"우리는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를 법과 제도를 통해 실현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기성정당이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의회에 진입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다.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의 협의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정책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사실상 정치자영업자들의 집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오로지 복지국가에만 관심이 있다. 가치와 정책을 추진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엄청난 개혁이 필요하다. 재벌의 양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일부 노동자의 양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뛰어야 하고, 그것만을 위해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 복지는 곧 조세제도와 연결된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쟁이 있었다. 또 '중부담중복지'라는 말도 나왔다. 복지국가 정당이 추구하는 복지는 어떻게 이뤄지나?"복지는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성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복지에는 '적극적'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국민 모두의 능력을 키우는 복지다. 일자리 복지이고 경제성장을 위한 복지다. 우리가 제시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경제성장과 복지를 통합 시킨 모델이다. 성장 엔진을 탑재한 복지국가 모델이다.
기본적으로는 보편적 부담을 추구한다. 우선 상위 10% 수준의 고소득자들과 재벌 대기업이 세금을 더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가 성장하면 중산층까지 증세를 확대해야 한다. 국민들이 보편적 증세라고 하면 싫어할 수 있다. 그것은 경제와 복지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더 많은 소득을 얻게 한 후에 보편적 증세로 가야 한다."
"천정배, 복지국가 정당으로 온다면 환영"
- 진보정당의 실패를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정치구조 상 제3당이 성공하기 어렵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그동안 한국정치가 쌓아온 '정치불신'은 결과적으로 거대양당 이외의 제3정당을 불러냈다. 처음 정몽준이 그랬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기업가 출신에게 기대가 생겼다. 그 뒤에 문국현이 나왔고 안철수가 나왔다. 그런 제3의 세력이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국민들은 성공한 기업가 출신을 정치로 불러내면서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해법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다.
그것은 단지 어떤 인물을 불러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제3의 인물을 불러내봤자 결국 기성의 정치로 흡수됐다.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이것이 복지국가 정당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 복지국가소사이어티도 지난 대선에서 당시 안철수 후보를 지원하는 등 기존의 제3세력과 함께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난 대선 전후 시기에 안철수 후보를 잠시 도와주기로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안 후보가 자신의 정치 노선을 '복지국가'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매개로 연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복지국가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분이다.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 천정배 의원과 관계도 주목을 받는다. 천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을 어떻게 생각하나?"천 의원은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분들도 기존의 낡은 정치의 한 구성요소가 돼 버렸다. 천 의원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해도 신당을 창당한다면 그것 자체로 낡은 정치가 될 것이다. 특히 지역주의 신당이 될 수밖에 없다. 낡은 정치의 확장일 뿐이다. 또 '천정배 신당'이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인물에 기댄 인물 중심의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안철수 신당'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기 때문에 천정배라는 정치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신당 창당에는 굉장히 부정적이다. 만약 우리 정당에 함께 하겠다고 한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 일각에서는 복지국가 정당이 천정배 신당과 결국 함께 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기성정당으로 들어갈 확률은 0%다. 그리고 천 의원이 신당을 만들려고 하겠지만 실제로 창당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창당을 하는 순간 '야권의 분열'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실제 분열 세력인 건 사실이다. 호남 지역 정당이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천 의원이 그걸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지역주의 정당이 아니라 가치 정당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것 역시 공격받을 것이다. 그는 수차례 국회의원을 했고 당의 원내대표를 했고 법무장관까지 지냈다. 여태까지 정치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본인도 거기에 책임이 있다. 그 공격을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정치인이다. 지난 재보궐 선거 때도 당선을 위해 많이 도왔다. 지난 10년 동안 복지국가라는 가치를 공감해 온 사이다. 그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낡은 정치를 주도하기 보다는 새로운 정책과 가치 중심의 복지국가 정당에 참여하는 게 그분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11월 말까지 창당 완료할 것"- 내년 총선 목표는 어떻게 되나? 야권연대도 고려하고 있나?"목표는 분명하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의석을 얻는 게 목표다. 국민들께서 많은 참여와 지지를 보내준다면 제1야당의 자리도 차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선 전 지역에 후보를 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호남에서는 지금의 제1야당과 전면적으로 경쟁하고 일절 양보하지 않을 생각이다. 호남인들에게도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것이 호남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다른 지역에서는 전면적으로 연대와 연합을 제안하려 한다. 그 방식은 어떤 것이든 고려할 수 있다. 그것이 국민들의 정치교체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마음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총선에 나서는 것은 야권을 분열 시키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 정당은 정치에 실망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분들이 다시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정당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야권의 지지 영토가 더 넓어지게 된다."
-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이달 내로 '복지국가정당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정당을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플랫폼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단법인으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정당 작업은 이 기구를 통해서 할 예정이다. 추진위에서 창당발기인대회를 준비하고 창당준비위원회를 출범 시킨 후 5개 지역에서 광역시도당 건설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전직 정치인이나 특정 지역을 앞세우는 일은 일절 안하려고 한다. 오로지 복지국가 정당의 가치와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국민의 지지를 받아내고 그걸 동력으로 11월 말까지 창당을 완료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