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에서 시키면 지방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강득구(새정치민주연합, 안양) 경기도의회 의장이 정부의 누리과정(만3~5세) 예산 떠넘기기를 작심한 듯 비판했다. 강 의장은 "지방자치, 지방분권이란 시대 요구를 무시한 처사"라며 "대통령 공약이니 만큼 중앙에서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강 의장은 이어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는 의원들 의견을 이해한다"며 경기도 교육청이 3차 추가경정 예산으로 제시한 1079억여 원 삭감에 찬성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내년 본예산 편성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내년 누리과정 본예산도 삭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문제로 경기도의회 새정치와 새누리는 정쟁에 휩싸였다. 지난 17일 새정치는 "정부예산으로 지원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누리과정 지원 추경예산 전액을 삭감하겠다"고 선언했다. 새누리는 이에 "누리과정 예산을 발목 잡아 정쟁을 일삼지 말라"고 맞섰다.
경기도의회 1년, 생활임금 조례 제정 등의 성과 있어
지난 17일 오후 강 의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강 의장은 이날 연정(연합정치)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연정의 핵심 이기우 사회 통합부지사에 대해서는 "좀더 개혁적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연정으로 인해 견제와 비판이라는 의회 본연의 기능이 약화됐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일축했다.
강 의장은 이날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1년도 평가했다. "자주재정권, 자치입법권 같은 권한이 커져야 지방자치가 발전할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지방의원이 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의원 보좌관제 도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다음은 강 의장과의 일문일답.
- 임기 절반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의 소회는? "벌써 1년이다. 하루하루는 무지 힘들고 긴 시간인데, 되돌아보니 금방 갔다. 의장 될 때가 세월호 참사 직후였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사람 중심 민생 중심'을 의정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연정에 합의도 했고. 소회라면, 한다고 했지만 아쉬움이 훨씬 많은 1년이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해서 성과도 냈지만, 정치에, 정치인에 대한 도민들 불만은 여전하니, 이 점이 아쉽다."
- 성과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최초로 연정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생활임금 조례를 만든 게 성과다. 이거(생활임금 조례), 전임 김문수 지사가 계속 재의를 요구해서 갈등을 겪은 일인데 남경필 지사는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연정 효과다. 경기도 생활임금은 최저 임금보다 1천 원 많은 시급 7천30원인데 내년부터 경기도와 산하 공공기관 등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750여 명에게 적용된다.
경기도의회 환경미화원을 직접 고용으로 바꾼 일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실천한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그 분들 월급이 20만 원 정도 올랐다. 경기도의회 직원이라는 자긍심도 생겼으리라 본다. 또, 버스요금 인상 시 본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제도화해, 함부로 못 올리게 한 것과 요금 폭탄 논란이 벌어졌던 좌석·직행좌석버스 거리 비례제 도입(기본거리 30㎞ 초과, 5㎞마다 100원 추가)을 막은 것도 의미가 있다."
연정 때문에 의회 기능 약화? "동의하기 어려워" - 연정 때문에 견제와 비판이라는 의회 본연의 기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처음엔 사실 걱정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행정감사나 예산심의 모두 '세게' 했고 조례발의 건수도 늘었다. 8대 때는 1년 148건이었는데 9대 들어서는 308건이나 된다.
오히려 '예산 연정'으로 의회가 직접 예산을 짤 수 있으니 의회 기능이 높아진 측면은 있다. 또 공공 기관장 인사청문회 도입으로 견제 기능도 강해졌다. 기관장들, 예전엔 도지사 선거 도와준 분이나 가까운 분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인사청문회 덕분에 도덕성과 전문성 등을 검증할 수 있게 됐다. 그럴(선거 도와준 사람이 임명될)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다."
- 새정치가 파견한 연정의 핵심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의 10개월을 평가한다면? "새정치 의원들이 추천한 부지사니 만큼 새정치의 가치를 도정에 반영하는 역할을 잘해야 한다. 특히 보건복지, 여성, 환경 등 이 부지사가 담당하는 것은 새정치의 진보적 가치가 담긴 좋은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영역이다. 좀더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좋은 정책을 의제화해서, 연정을 하니 달라지는구나 하는 것을 도민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동시에, 이 부지사가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경기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남 지사가) 연정할 때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준다고 했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순환 보직제(2~3년 주기로 부서를 옮기는 제도)인 경기도의 인사 특성상, 인사권을 주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약속한 것이니 만큼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인사권을 확실하게 줬으면 좋겠다. 예산 편성권도 마찬가지고."
- 의회 사무처 인사권 독립, 의원 보좌관제 도입 같은 의회 기능 강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인사권 독립이 있어야 집행부 견제가 가능한데, (저한테) 의회사무처장 추천권은 있지만 결정권은 없다. 결정권자는 도지사다. 과장급도 협의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최종 결정은 도지사가 한다. 이게 지방의회의 한계다. 의회보다 집행부(경기도)가 힘이 훨씬 센 구조다.
보좌관제 도입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은 보좌관만 9명이고 후원금도 1년에 2억 전후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방의원은 이런 것을 포함해서 지원되는 게 국회의원 100분의 1도 안 된다. 철저하게 대한민국은 중앙 중심, 여의도 중심 국가다. 이 두 가지 다 중앙 부처인 안전행정부와 국회에서 동의해 줘야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지방자치에 관심 있는 국회의원 과연 몇 명?"
- 어려움? "국회의원들이 자기 기득권만 챙기지 지방자치에 관심 있는 사람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안행부도 마찬가지로,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과 철학이 거의 없다. 지방자치단체를 통제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 있다. 갈 길은 멀지만, 의회 인사권 독립과 의원 보좌관제 도입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의원 보좌관제를 도입하고 지방의원도 후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하면 지방의회의 역할이 커지고 지방자치가 발전할 수 있나? "그런 것들이 선행돼야 역할이 커지고 발전할 수 있다? 이것만은 아니고, 이보다는 지방자치법을 개정해서 자주재정권,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같은 권한을 확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법을 만들 수 있는, 공무원 조직을 자체적으로 꾸릴 수 있는 권한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전체 세금의 20% 정도만 지방정부가 걷을 수 있고, 부지사 한 명 늘리려 해도 중앙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도 제한적이고."
- 만약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런 법 만들 것인가? "필요하다고 보니까 분권형 개헌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남경필 도지사와 이재정 교육감 1년을 평가한다면? "남 지사, 기본적으로 유연하다. 또 소통을 잘한다. 보수적이지만 진보적 가치를 인정한다. 다름을 인정할 줄 안다. 김문수 지사 때 원내대표 맡았는데, 1년이 다 가도록 김 지사는 내 얼굴도 몰랐다. 식사 한번 같이 한 적도 없고. 그런데 남 지사는 다르다. 수시로 만나고 도정에 대해 그때그때 설명한다. 자기 생각과 달라도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인정할 줄도 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번 누리과정 문제만 봐도, 도지사로서 중앙정부에 할 말은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물론 같은 당 출신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다는 게 어렵긴 하겠지만 말이다.
이재정 교육감은 '단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9시 등교', '교육공동체 만들기', '공교육 정상화'에 기울인 노력 등을 잘한 일로 평가할 만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혁신교육에 좀 소홀하지 않나 하는 것인데, 혁신교육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안 "100점 만점에 70점" - 논란 많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안,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 신인과 여성에 대한 가산점, 비례대표 30% 여성 할당 등은 나름대로 의미 있다. 임기 3분의 2 이상 채우지 못한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 10% 감점(공천할 때)하기로 한 것도 받아들일 만하다. 근데 웃긴 건 국회의원에 대한 감점은 없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자치단체장 출마할 때도 10% 감점해야 공평하지 않나? 어쨌든 혁신안 내용만 가지고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다."
- 총선 출마를 비공식적으로 밝혀왔는데, 결정했는지? "비공식적으로 밝혔다기보다는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역할을 준다면 피하지 않겠다."
- 끝으로 경기도민에게 한 말씀.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인사드리게 돼서 기쁘다. 노무현의 가치와 김대중의 정신에 따라 사람과 지역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게 나의 중심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되살려 서로를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정치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동시에 저출산, 양극화 문제 해결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공약인 누리과정 지원 예산을 지방에 떠넘기려 하는데, 이건 전적으로 중앙이 책임질 일이다. 이걸 지방으로 넘기면 교육 현장은 그야말로 피폐해진다. 의장으로서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이 예산을 떠넘기지 못하도록 하겠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의 관심과 행동도 필요하다.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내년 총선 후보자에게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의견을 밝히라고 압박해서, 지지후보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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