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
지난 3일 새누리당은 갑작스럽게 '포털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포털의 뉴스서비스가 '야당에 편향됐다'는 결과를 담은 자체 생산 연구보고서를 공개하면서다. 밖에서 보기에는 갑작스러웠지만,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보고서 용역을 맡긴 게 지난 1월 전이니 오랫동안 준비해온 '카드'였다.
김무성 대표가 포털이 제공하는 기사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당 차원의 대응을 주문하자마자 포털 관련 법안 5개가 줄줄이 발의됐다(관련기사:
포털 겨냥 김무성 "포털이 정보 왜곡, 시정해야"). 국정감사에서도 소속 의원들은 포털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공천을 받아야 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주로 총대를 멨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는지,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에는 논리적 허점이 많다. 통계 왜곡도 발견되는 등 무리수도 눈에 띈다.
[자료왜곡] 포털에 청구된 언론중재 건수가 5271건?김학용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2일 포털을 겨냥한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은 '포털, 이젠 언론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때!'였다. 부제로는 '언론중재 조정 신청 3년간 5271건... 신문·방송 대비 최대 5배'가 따라붙었다.
김 의원은 이 자료를 통해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포털 뉴스서비스에 의한 피해와 관련한 조정 청구건수가 최근 3년 동안 5271건(20.6%)으로 인터넷 신문 1만1410건(44.7%) 다음으로 높았다. 매체유형별 비교에서도 신문 2198건(8.6%), 방송 1022건(4.0%)에 비해 최대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포털에 언론중재위 조정청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의 문제일 수 있지만, 기사를 자의적으로 배치하고 기사 제목도 수정하는 등 유사 언론 행위를 하고 있는 포털의 책임도 크다"라고 비판했다.
보도자료의 제목과 내용만 보면 포털 뉴스서비스의 공정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이는 김 의원의 자료를 조금만 더 읽어내려가면 바로 알 수 있다.
김 의원이 낸 자료의 중간쯤에는 "포털사별 조정청구 건수는 지난 3년간 네이버가 13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이 111건, 네이트 90건 순으로 나타났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포털 3사를 다 합치면 331건에 불과한 셈이다. 오히려 신문과 방송이 7배와 3배 가량 많다.
그렇다면 나머지 4940건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사실 김 의원이 언론중재위 자료에서 뽑아낸 5271건은 '인터넷뉴스서비스'로 분류된 뉴스서비스의 조정청구 건수다. 언론중재위에 따르면 '인터넷뉴스서비스'에는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뿐만 아니라 KBSi 등 방송사닷컴의 뉴스서비스가 포함된다.
결국 '인터넷뉴스서비스'를 포털로 뭉뚱그려 포털에 대한 언론중재신청 건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는 새누리당이 공언한 포털 손보기를 위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건수를 입맛에 맞게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은 '포털 공격' 명령을 내린 김무성 대표의 최측근이다.
[아전인수] 자신이 만든 법 잊어버린 새누리당새누리당은 포털의 '제목 편집'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여의도연구원의 포털 보고서 연구 결과를 그 근거로 삼았다. 보고서는 포털이 제공 받은 기사의 제목을 수정한 비율은 네이버의 경우 12.9%, 다음은 4.8%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예로 든 것은 기사 제목이 길어 단어를 몇 개를 빼거나, 줄임표를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고서의 객관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새누리당은 이 문제를 국정감사장으로 끌고 나왔다.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가 대표적이다. 증인으로 나온 이병선 다음카카오 이사가 "저희는 제목을 수정하지 않는다"라고 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이재영 의원은 다음카카오의 서비스 자료를 제시하면서 "'인연을 끊자는 시어머니에게 사과한 후 마음이 괴롭습니다'라는 글의 제목이 '시모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을까 합니다'로 바뀌어 올라와 있다"라며 "작성자가 제목을 바꾼 것이냐"라고 따졌다.
하지만 이 의원이 제시한 자료는 뉴스서비스가 아니었다. 다음의 요리 커뮤니티인 미즈넷에 올라온 네티즌 사연으로 뉴스 제목의 편집 사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포털이 기사 제목을 임의로 수정하는 데 법적 제약이 따른다는 사실도 무시했다. 포털은 제목의 글자 수가 많아 화면에 모두 담을 수 없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목을 수정할 수 없고, 제목을 줄이더라도 원제목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신문법(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신문법 제10조를 보면 '인터넷뉴스서비스 사업자는 기사의 제목·내용 등을 수정하려는 경우 해당 기사를 공급한 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현행 신문법은 지난 2010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법안이다.
이 사실을 잊었는지 새누리당은 연일 포털이 기사 제목에 편집권을 행사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16일 새누리당이 개최한 '포털 압박용' 토론회에서 "포털이 '악마의 편집'을 통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과장된 기사를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략변경] 뉴스 편향성에서 독과점 문제로 초점 이동새누리당의 포털 공세는 처음에는 편집권 행사에 따른 편향성에 집중됐다. 하지만 새누리당 주장의 논리적 허점이 부담됐는지 점차 포털의 독과점 문제 쪽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김상민 의원은 지난 17일 국정감사에서 "정치적 편향 문제를 다루자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나쁜 게 독점과 불공정(경쟁)"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의원도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독점력을 가지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도 아닌 지네발식 사업 확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라고 밝혔다.
결국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네이버는 시장 점유율만 봐서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볼 수 있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 행위를 한다면 제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 위원장 말대로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양대 포털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행위를 한다면 물론 바로 잡아야 한다. 문제는 포털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한 새누리당의 태도다.
새누리당의 '검은 속내' 때문에 오히려 꼭 필요한 독과점 규제마저 선거를 앞둔 포털 길들이기로 오해를 받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