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22일 오후 4시 3분]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반문(반문재인)'으로 불리며 각을 세워온 비주류 박주선 의원이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현역 국회의원은 그가 처음이다.
박 의원은 2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이 제대로 된 혁신으로 변화하기를 마지막까지 기다렸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라며 "새정치연합을 떠나 한국정치를 전면 개혁하는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서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패에 책임 있는 분들의 처절한 자기성찰과 반성은 실종됐고, 면피용 혁신으로 오히려 계파 기득권만 더 강화됐다"라며 "폐쇄적인 당 운영으로 충언과 비판마저 봉쇄되는 사태를 바라보면서 '더 이상 새정치연합의 변화는 불가능하고 미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라고 탈당 이유를 설명했다.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정국'에서 사실상 판정승을 받으며 주도권을 얻은 게 탈당을 결심한 요인 중 하나라는 의미다. 박 의원은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청산"을 주장하며 문 대표 퇴진을 촉구해 왔다. 문 대표가 물러나지 않으면 자신이 탈당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히기도 했다.
탈당을 앞두고 문 대표에게서 "연락 받은 적이 없다"라고 밝힌 그는 "굳이 그분이 저를 만류하기를 기대하며 고언한 게 아니다"라며 "백척간두에 놓인 당을 회복 시키기 위해 비판해 왔지만, 그것이 공허한 주장으로 끝을 맺게 돼 아쉽다"라고 말했다.
독자신당 추진하며 천정배 등과 연대 시도할 듯
이날 오후 2시 15분께 탈당계를 제출한 박 의원은 앞으로 중도개혁과 민생실용을 기치로 내건 독자 신당을 창당한다는 계획이다.
새정치연합을 '낡은 정당' '강경투쟁 정당' '무능 정당' 등으로 규정한 그는 "낡은 정치세력을 해체하고 거대 여당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정치세력을 창조해야 한다"라며 "건전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융합하는 중도개혁·민생실용정당을 만들어 새로운 수권대안정당 건설에 나서겠다"라고 강조했다.
내년 1월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목표라고 밝힌 박 의원은 "그동안 (새정치연합 소속 현역 의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라며 "제가 먼저 탈당하고 신당 건립을 위한 작업에 본격 돌입하면 참여할 의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취재진이 구체적 인원을 묻자 "굳이 여기서 숫자를 밝힐 필요는 없다"라면서 "(호남권을 포함해) 수도권까지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국민희망시대' 회원들을 중심으로 창당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당직자·당원 출신인 국민희망시대 회원들이 지난 7월 집단 탈당을 선언할 때 박 의원이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 예약을 돕기도 했다.
야권 내 다른 신당 세력과의 연대에도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가 신민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천정배 무소속 의원도 내년 1월 창당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그는 "우선 독자적으로 신당 추진에 나서겠다"라면서도 "천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의 방향도 저와 같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함께 (창당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동지라고 생각한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탈당 3번에 '박근혜 지지' 소동까지... "어차피 나갈 사람이었다"
박 의원의 탈당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2000년 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되자, 탈당 뒤 전남 고흥·보성에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1년 뒤 민주당에 복당한 박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광주 동구에 출마해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재기했다.
그러나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전직 동장 투신자살 사건 등으로 얼룩진 광주 동구에 무공천하기로 결정하자, 재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지난해 3월 민주당이 '안철수 신당'과 새정치연합으로 합당하는 과정에서 합류했지만, 1년 6개월 만에 또 다시 탈당을 선언했다.
박 의원은 향후 복당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게 "한 번은 당에서 제가 지장이 된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물러났고, 그 다음에는 출마하려는 지역구가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되는 바람에 탈당했다"라며 "(일각에서는) 저를 '열매만 따먹고 날아가는 철새'라고 하지만, 오히려 당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헌신·봉사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한편 박 의원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지지' 소동으로 야권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였던 박 대통령이 나를 직접 만나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DNA가 달라 새누리당에 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의원은 "당시 한 지지자가 내게 수면제를 10알 먹여 기절한 채 산사로 끌려갔는데, 그때도 (지지자들에게) '(새누리당에) 간다고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라며 "하늘을 우러러 추호도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결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2년 12월 10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무소속인 나로서는 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국가와 호남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의견을 묻고 있던 중이었다"라며 "현재 박 후보 지지를 반대하는 내 지지자 등 30여 명이 저를 전남 산속으로 끌고 와 기자회견을 못하게 한다, 물리적·현실적으로 박 후보 지지를 못하게 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새정치연합은 당장 박 의원의 탈당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래 전부터 탈당을 예고해온 데다가, 동조하는 의원도 별로 없다는 게 당내의 중론이다. 한 당직자는 "(박 의원은) 이번에 공천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예감하고 스스로 (당을) 나간다고 하는 것"이라며 "당에서는 별로 주목하지도 않는다"라고 전했다.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박 의원의 탈당은) 이미 여러 차례 예고된 일이라 별 감응이 없다"라며 "다만 수차례 탈당과 복당을 되풀이해온 박 의원이 정치 말년에 또 다시 선택한 탈당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의원의 탈당은 호남 민심의 왜곡이고, 당이 재집권할 수 있도록 혁신하고 단결하라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을 정면으로 훼손한 것"이라며 "박 의원의 초라한 개인 정치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민심의 싸늘한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