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8월 30일)을 맞이해 캔디(Kandy, 스리랑카)에서 캔디 인권사무소 (Human Rights Office Kandy) 주최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강제실종자의 가족들, 같은 시기에 고통받은 정치범들의 가족들, 법대생들, 인권활동가들 등을 포함하여 2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강제실종'은 간단히 말해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가해자가 국가라 실종자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한다. 특히 스리랑카에서는 강제 실종이 국내 형사법에 따른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
1989년부터 27년간 지속된 스리랑카 내전은 실종자 수 많은 나라 2위에 스리랑카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내전이 끝남과 동시에 '강제실종'이 사라질 줄 알았으나, 불행히도 현재까지도 '강제실종'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실종자가 많은 나라
스리랑카의 강제실종이 멀게 느껴지는가? 강제실종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정부의 남영동 대공분실, 삼청 교육대 등이 바로 강제실종의 현장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진우(임시완)가 당한 것도 강제실종이다. 후에 진우 모는 아들의 행방을 알게 되지만, 실제의 경우에는 행방을 알지 못한 채 실종 상태로 남거나, 서울대학생 고 박종철처럼 죽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행사장으로 가니, 입구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기나긴 세월을 같은 심정으로 함께 싸워왔기 때문인지 서로가 익숙한 듯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작년 행사부터 올해 행사까지 다시 일 년을 자식의 생사를 모르고 보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참담한 듯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 한 곳을 응시한 채 조용히 행사의 시작을 기다렸다. 실종자 가족들을 제외한 다른 참여자들이 그 침묵을 대화로 채워나갈 뿐이었다.
캔디 인권사무소의 직원인 루실 아베이콘(Lucille Abeykoon)에 의하면, 올해 이 행사를 통해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추모하는 한편 정부에게 'UN 강제실종협약(정식명칭은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을 비준할 것', '이 범죄에 대해 죄를 인정하고 보상금을 지불할 것', '마지막으로 국내 형사법에 따라 강제실종을 범죄로 인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가족이 사라진 사람들의 고통
실종자의 가족들이 행사장 단상에 마련된 곳에 촛불을 밝히는 것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행방도,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길게는 20년 넘게 사라진 이들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닌 가족들은 이날 행사에도 어김없이 가방에서,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참여한 많은 가족들을 대표해서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은 4명은 사라진 가족의 사진 또는 사건 파일을 한 손에 들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 중, 2년 전에 저녁을 사갈 테니 기다리라는 전화를 끝으로 남편이 사라졌다는 마유리 이노카 (Mayuri Inoka)는 눈물을 머금고 "나는 여전히 내 남편이 저녁을 사들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중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야기의 주인공도 내용도 각기 달랐지만 모두 현재 그 주인공이 사라졌고, 여전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
행사를 지켜보며 이 행사를 주최한 캔디 인권사무소 대표인 난다나 마나퉁가(Nandana Manatunga) 신부이 "실종자의 가족들이 더 이상 눈물지으며 가만히 앉아 있기만을 바라지 않았기에 이 행사를 시작했다"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행사를 마무리하고 참가자가 모두 돌아간 후에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자리한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행방을 알지 못한 채 현재, 한날 한 장소에 모여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강제실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평상복 차림의 젊은 남자 두 명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나란히 앉아 자리를 지켰다. 그 사람들이 범죄수사과(Criminal Investigation Department, CID)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올해 1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감시 아래 내 의견과 감정을 말해야 한다는 사실에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는 걸 보고도 씁쓸함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