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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방랑자 엘베. 그는 몇 년 전 허리 추간연골에 탈이 나고부터는 모든 일을 접고 카메라 2대를 메고 프랑스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째 지금 지구촌 순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방랑자 엘베. 그는 몇 년 전 허리 추간연골에 탈이 나고부터는 모든 일을 접고 카메라 2대를 메고 프랑스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째 지금 지구촌 순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1

지인 작가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불쑥 떠난 여행. 저는 페이스북을 통해 간간히 그녀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미에서 남미로 향하는 노정이었습니다.

부산에서 화물선을 타고 중미로 떠났던 그녀는 22개월 뒤 마침내 항공으로 서울로 되돌아왔습니다. 자칭, '여행거지'가 되어서입니다. 그녀의 말을 되새김 해보니 거지는 내 것인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또한 내 것이 아닌 것도 딱히 없는 사람입니다. 거지야말로 최근 우리가 지향하는 공유경제의 실천가들인 셈이지요.

'거지가 도승지를 불쌍타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는 '주제를 모른다'는 뜻으로 인용되긴 하지만 원뜻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불우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남을 동정'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겼습니다. '거지'를 자처하는 그녀를 통해 거지가 '도승지'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그녀가 서울에서 한 첫 번째 일은 자신의 짐들을 정리해서 벼룩시장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난 미련이 없어졌다. 사물에 대한 미련이다. 나의 것이라고 했던 것이 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난 이제 사람에게 미련이 많아졌다."

여행작가 강미승은 이렇게 22개월 길 위에서 닦은 도력으로 한순간에 도승지의 위상을 거지 아래로 뒤집기 했습니다. 

'소유'보다 '향유'라는 쉐어링의 마법 주문(呪文)을 알아버린 것입니다.

#2

지난 일요일(9월 20일) 그녀가 왔습니다. 지난해 12월 여행에서 돌아온 뒤 두 번째 모티프원 방문이었습니다.

그녀가 타고 온 차량은 쏘카(SoCar)였습니다. 2000년 자동차로 인한 환경문제를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미국의 카쉐어링 서비스, 집카(Zipcar)와 같은 개념으로 2011년 제주에서 시작된 카쉐어링서비스 브랜드입니다.

질긴 소유욕을 극복한, 차 없는 '거지'의 그녀에게 30분부터 10분 단위로 차량을 대여할 수 있는 이 공유시스템은 딱 어울리는 이동수단이었습니다.

그녀는 두 사람과 동행했습니다. 한 사람은 수십 년간 우정을 공유하고 있는 중, 고등학교 친구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길 위에서 동행인으로 만난 프랑스인 친구였습니다.

 제가 길 위에서 배운 것은 짐이 무거울수록 여정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여행꾼들은 그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행거지'를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엘베, 여행작가 강미승,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자유를 택한 박경아
제가 길 위에서 배운 것은 짐이 무거울수록 여정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여행꾼들은 그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행거지'를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엘베, 여행작가 강미승,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자유를 택한 박경아 ⓒ 이안수

프랑스 친구는 길 위에서의 우정을 기억하며 그녀를 찾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기존의 일을 놓고 세계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엘베(Rvé Around)씨는 신뢰 깊은 친구가 있는 이 나라에서 구태여 다음 행선지에 안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국의 동해안과 남해안 그리고 서해안까지 돌고 나니 벌써 몇 개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의 문턱에서 문득 '거지'가 가장 두려운 것이 추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겨울이 오기 전에 따듯한 남쪽나라를 수소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엘베는 출국을 하루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몇 개월 언어의 장벽으로 입을 열지 못했던 한을 풀듯 수많은 한국 경험을 쏟아놓았습니다. 말이 넘어가면 순서가 그에게만 머물고 있는 대화를 의식한 그의 친구가 몇 번 그의 입을 막았지만 그의 말은 그녀가 막은 손가락 사이를 뚫고 나왔습니다.

"도대체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요. 모두가 일만해요. 저녁 7시에도 일, 새벽 2시에도 일이에요. 심지어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그 밥을 먹으면서도 일을 해요. 한국 사람들은 인생이 '일'이라는 질료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 같아요. 보세요. 제 친구의 전화벨은 오늘도 여러 차례 울리잖아요. 오늘은 일요일이란 말이에요." 

엘베는 프랑스에 돌아가면 바로 집을 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에 오를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일요일 오후의 나를 흔들어놓고 떠났습니다. 그들을 태우고 떠나는 쏘카의 꽁무니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아. 소시지의 케이싱(casing)속에는 고기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 고기반죽 속에는 소금과 양념도 들어가야 해. 엘베가 몇 개월 우리의 리듬을 지켜본 뒤 충고한 것처럼 우리는 인생이라는 케이싱 속에 '일'만을 다져넣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싶어." 

엘베는 모티프원을 떠나기 전 방명록을 펼치고 말했습니다.  

"안수씨의 딸이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하니 영어가 아니라, 불어로 글을 남길게요. 내가 당신에게 무슨 욕을 했는지 알고 싶다면 프랑스의 따님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엘베의 충고대로 둘째딸 주리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Reçu par homme au sourire intelligent. Un plaisir à l'écouter, mais je suis sûr à vivre ici cerné par autant de livres. Sa culture est nettement plus logue que sa barbe que j'envie !! Je regrette d'avoir coupé la mienne. J'espère avoir l'occasion de revoir cet endroit calme et passionnant.
Toutes mes amitiés
 Rvé (ami de Miseung) 

지혜로운 미소를 가진 남자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나도 이렇게 많은 책에 둘러싸인 이곳에 꼭 살아야지. 그의 소양은 내가 탐내는 그의 수염보다 더 긴 게 확실하다!! 내 수염을 깎은 것이 후회된다. 조용하고 흥미로운 이곳에 다시 오길 고대하며.

우정을 담아
엘베(미승의 친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여행자#엘베# RVE#강미승#박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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