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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유쾌하다. 즐겁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학자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유쾌하다. 즐겁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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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글을 쓸 때가 가장 두렵다.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의 불이 들어오고 커서가 깜빡거리는 빈 화면을 마주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마치 걸음마부터 다시 배우는 아이가 된 것처럼 말을 고르고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쓰고 싶은 글은 겁이나 가장 맨 뒤로 미뤄놓는다.

앞으로 쓰게 될 세 편의 리뷰는 그런 작품들이다. 읽을 때는 감탄사가, 덮고 나서는 여운이, 그리고 기어이 뭔가를 쓰게 만든다. 그 중 첫 번째로 <봉고차 월든>을 소개한다. 사실 이 책의 저자는 내가 가장 닮고 싶고 부러워하는 글 솜씨를 가지고 있다.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소개할 때도 유머를 잃지 않으며 솔직해져야 할 때는 다 내보인다.

그렇기에 그가 한 체험도 그의 문학적인 재능도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여기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 알래스카에서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하다가 듀크대 대학원에 진학해 봉고차 안에서 소비하지 않는 삶을 실험한 켄 일구나스의 책이 내 손 안에까지 들어오게 된 걸 거다.

소비하는 시대, 가져야만 행복한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는 삶. 더 크고 더 비싼 걸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삶.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건 더 많은 걸 갖고 쓰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고 잃어야 한다는 걸 알지 못 한다는 점이다. 그걸 대학생이었던 켄 일구나스는 일찍이 깨닫는다.

원하는 걸 돈을 내기도 전에 가질 수 있는 사회. 하지만 많은 청년들은 자신이 빚을 진 걸 모르고 산다. 높은 이율로 돈을 빌려 쓰는 것만이 빚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휴대폰을 갖기 위해 할부로 약정을 하는 것도 빚이요, 낮은 금리이긴 하지만 등록금을 대출받는 것도 빚이라는 것인데 그걸 잊고 산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이 책을 잃기 전까지 한 번도 휴대폰 약정과 학자금 대출이 빚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뉴욕주립대에 재학하고 있을 무렵 자신이 2만7000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친구는 6만 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있었다. 그 돈을 갚기 위해서는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하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또 다른 빚을 지고 일평생을 그것을 갚는 것으로 대신해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학교로 돌아가거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혹은 몸이 아프거나 단순히 게을러서 대출금 상환을 1~2년 유예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같았다. 대출금을 상환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시점에 빚은 이미 두 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중략) 조시도 처음에는 희망적이었다. 대학 성적이 아주 좋았으니까 말이다. (중략) 조시는 냉정한 현실에 눈을 떴다. 그토록 성적이 뛰어나봤자 자신은 이상적인 학위를 얻는 데 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흔해빠진 수천 명의 문과 졸업생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학자금 대출을 먼저 다 갚기로 하고 알래스카로 떠난다. 가까운 쇼핑몰조차 자동차로 몇 시간 거리인 그 곳은 아무것도 갖춰진 게 없었다. 즉 돈을 쓸 일이 없었다. 9달러에 가까운 낮은 시급으로도 그는 꽤 많은 돈을 모아 빚을 갚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 했다. 그래도 그는 이미 깨달음은 얻은 후였고 그 후 봉고차에 살아가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나씩 버려가며 그는 분노를 느꼈다. '쿨'하다고 생각한 소비가 그에게 진짜 '쿨'한 것들을 보지 못 하게 했으니까.

"별들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분노에 찌릿해졌다. 이제까지 누군가가 내 유산을 몰래 훔쳐갔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 같았다. 알래스카에 오지 않았다면 진짜 하늘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 평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자 의문이 생겼다. 만약 내가 인생의 초반 4분의1 동안 진짜 하늘을 못 보고 살았다면 또 어떤 느낌, 어떤, 어떤 광경이 문명이라는 더러운 구름에 가려져 있는 것일까."

빚 지지 않고 살겠어요, 봉고차에서 살지언정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통해 저자는 빚을 다 갚았지만 배움에 목이 말라있었다. 이번에는 타협을 했다. 남들처럼 똑같이 집을 얻고 등록금을 내고 생활하려면 또 한 번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는 대신 봉고차를 개조해서 살면서 빚을 지지않고 졸업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사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 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따라하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다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가 봉고차에서 생활한 시간은 솔직히 인간다운 삶이라 부르기 힘들다. 먹을 것을 아끼는 건 돈을 아낄 수는 있어도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 생활한다는 것도 장기적으로 그의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그건 그가 체험을 끝낸 후 밝힌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걸 항상 잊지 않았다. 그리고 소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져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더 이상 봉고차 안에서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험은 앞으로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데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저는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사람은 단순히 빚이 없거나 커다란 소름끼치는 봉고차 안에서 돈을 아끼며 산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자기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동안 자신을 묶어두었던 그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켄 일구나스 저/구계원 역/문학동네 / 2015년 06월 22일 / 408쪽 /153 x 224 (㎜)



봉고차 월든 -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2015)


태그:#봉고차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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