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그림을 붙이자우리 집은 말 그대로 '우리 집'입니다. 삯집이 아닌 우리 집입니다. 도시에서는 한 번도 우리 집이지 못했지만, 시골에서는 우리 집을 누리기에, 이 집에서는 벽이고 바닥이고 온통 아이들 그림으로 가득합니다. 나도 곁님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아이들하고 함께 그림을 붙입니다. 우리 꿈을 그림으로 그려서 붙입니다. 사랑스레 그린 그림을 붙입니다. 우리 그림을 우리가 늘 바라봅니다. 벽에 새 그림을 붙이자고 하니 두 아이는 서로 붙이겠다고 해서, 그림 두 점을 붙이기로 합니다. 즐겁지? 재미있지? 좋지? 여기는 우리 집이니까 우리 마음껏 논단다.
빨래를 널 적에빨래를 널 적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빨래 그림자 때문에 호박알이 덜 굵을까 싶어 빨랫대를 슬슬 옆으로 옮깁니다. 해가 움직이는 결에 맞추어 빨랫대가 움직입니다. 빨래를 널 적에 풀내음을 한껏 들이켭니다. 빨래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십니다. 여기에 풀내음과 꽃내음까지 고요히 받아들입니다. 마당에 빨래를 널기에 우리 곁님과 아이들 옷가지는 우리 집에 드리우는 모든 아름다운 숨결이 깃드는 옷을 새롭게 입을 수 있습니다. 빨래를 다 널고서 빨래 곁에 섭니다. 또 호박꽃과 호박알 곁에 앉습니다. 빨래랑 함께 해바라기를 하면서 따사로운 바람결을 즐겁게 맞이합니다.
서로 똑바로 바라보기작은아이가 나를 봅니다. 나도 작은아이를 봅니다. "아버지 어디 가?" "응, 서울에 일이 있어서 다녀와야 해." "서울에?" "응." "혼자 가?" "응, 오늘은 혼자 가." "언제 와?" "하룻밤 자고." "하룻밤 자고?" "응." "알았어. 잘 다녀와." "고마워. 보라도 누나하고 집에서 사이좋게 잘 놀아." "응." 새벽 일찍 짐을 꾸려서 조용히 집을 나서는데 작은아이가 부시시 일어나서 배웅을 해 줍니다. 배웅하는 작은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바깥일을 보는 동안 아이 얼굴빛과 마음을 내 가슴에 새기면서 기운을 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당에서 책읽기마당은 우리 놀이터입니다. 아이들 놀이터요, 어른한테도 놀이터입니다. 해바라기도 하고, 손님도 맞이하며, 때때로 책을 들고 평상에 앉아서 바람을 쐬는 쉼터입니다. 평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마당 한쪽에 그대로 둔 풀이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베푸는 노래를 듣습니다. 우리 집 마당이기에, 농약바람이 아닌 따사롭고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마당이기에, 이 마당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다가 작은 그림책 하나를 들고 바닥에 털썩 앉아서 함께 들여다보면서 읽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맨발이 되어 가만히 지켜보다가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수박 한 조각이랑한창 무덥던 여름에 수박 한 통을 읍내에서 장만해서 낑낑거리며 집으로 들고 왔습니다. 올여름에 아이들한테 수박을 몇 번 못 먹여서 미안하다고 느끼지만, 아이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올여름에는 여름 내내 집에서 얼음과자를 만들어서 먹었거든요. 후박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마당에 빨간 접이책상이랑 걸상을 놓습니다. 네모난 받침접시에 수박을 썰어서 올립니다. 수박 한 조각을 집기 앞서 이 멋지고 예쁘며 고마운 수박으로 우리 몸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아버지가 수박 노래를 부르는 사이 작은아이는 수박 속살에 살짝 손을 댑니다. 어서 먹고 싶지? 그래, 얼른 먹자.
저 구름이야함께 들길을 달리면서 구름을 바라봅니다. 나는 나대로 구름이 어떤 모습인가 하고 읽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구름이 어떤 무늬인가 하고 읽습니다. "저기 봐! 저기. 토끼 구름이야!" "저 구름은 고양이 같아!" 들바람을 마십니다. 푸른 빛깔이 차츰 빠지면서 노란 빛깔이 천천히 물드는 들에서 흐르는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바람을 마십니다. 새파란 바탕에 하얀 구름이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그림으로 흐르는 바람을 마십니다. 함께 들길에 서면 들을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 하늘을 보면 하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마주하는 대로 우리 이야기가 되고, 함께 껴안는 대로 우리 삶이 됩니다.
너희 키로는 안 보일까우리 집 무화과를 따려고 아이들하고 우리 집 무화과나무 앞에 선다. 그런데 아이들은 무화과나무가 어느 나무인지 알아보기는 하지만, 무화과알이 어디에 어떻게 맺혔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이들 키높이로는 너무 높은가? 아이들은 아직 고개를 확 젖히고 높다란 가지를 올려다보기는 어려울까? "무화과 어디 있어? 안 보여!" "보일 텐데. 잘 살펴봐." "그래도 안 보여." "그러면 고개를 들어 봐." "고개를? 음, 아, 저기 있다! 그런데 너무 멀어. 손이 안 닿아." 손이 안 닿도록 머니까 그곳에 무화과알이 맺히는지 처음부터 생각을 못 할 수 있겠네. 아버지가 무등을 태우면 너희 손도 닿고 무화과알도 잘 보이려나.
바지랑대 세우는 아이바지랑대 세우기는 어른이 혼자 해도 되지만, 아이한테 맡길 수 있습니다. 어른이 혼자 하면 '일'이고, 아이가 스스로 하면 '놀이'이며, 어른이 아이한테 맡기면 '심부름'입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는 몸짓'이 사뭇 다르게 흐릅니다.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면 고단하고, 짜증을 내며 시키는 심부름이라면 툴툴거릴 테지만, 신나게 하는 놀이라면 재미있으면서 기쁩니다. 그리고, 스스로 노래하며 하는 일이라면 살림을 올망졸망 가꾸는 새로운 웃음이 피어납니다. 사진 한 장을 찍는 자리는 언제나 '웃음마당', 곧 웃음이 피어나는 마당입니다.
모래로 빚은 사랑사진은 사진기 하나를 빌어서 우리 마음을 즐겁게 가꾸면서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멋진 놀이요 삶이라고 느낍니다. 즐거운 마음이라면 언제나 즐겁게 일하거나 놀면서 즐거움을 듬뿍 싣는 사진을 찍습니다. 기쁜 마음이라면 늘 기쁘게 살림을 꾸리거나 여미면서 기쁨이 담뿍 깃드는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부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부릅니다. 서로 따스하고 살가운 숨결이 되어 넉넉한 사랑으로 부릅니다. 자, 바로 여기를 보셔요. 활짝 웃어요. 함께 노래하면서 '너를 사랑해' 하고 속삭여요. 놀이터 모래를 두 손 가득 그러모아서 사랑꽃이 핍니다.
촛불 밝히는 책어두움을 밝히면서 배웁니다. 새롭게 알려고 하기에 배웁니다. 책 한 권을 손에 쥐어 이야기 한 자락을 새롭게 마주하려고 합니다.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난 책순이는 엊저녁에 미처 못 본 책을 이른 새벽부터 다시 읽고 싶습니다. 어린 동생은 꿈나라에서 신나게 노는 이무렵, 초 한 자루에 불을 밝혀서 촛불에 기대어 책을 읽습니다. 촛불은 책순이 둘레를 밝히고, 촛불은 책 한 권을 밝히며, 촛불은 마음 한곳을 밝힙니다. 초 한 자루는 책 한 권 읽을 만한 빛을 넉넉히 베풀고, 어느새 햇살이 차츰 퍼지면서 동이 트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