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신광태 면장님께 감사패 증정을 하겠습니다."2500여 명의 병사들이 참여한 행사. 느닷없는 사회자의 호출에 난 어안이 벙벙해졌다. 돌이켜보자, 이번 행사에서 내게 감사패를 주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또 내가 패를 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수상한 점은 있다. 초청된 기관사회단체장들이 앉은 자리에서, 한 병사가 내가 면장임을 두 번이나 확인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뿔싸! 깜짝 이벤트였구나!
즐거우니까 축제다. 이기자 페스티벌 이모저모
지난 2일, 3일간의 일정으로 '2015 이기자 페스티벌'이 시작됐다. 벌써 12회째다. 이 행사는 지난 2003년 기획됐다. 군 장병들을 위한 축제 개최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해 나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축제 기간, 수천 명의 병사들과 가족, 면회객들로 (축제가 열리는)사창리 일대는 들썩인다. 외출외박도 허용된다. 지휘관의 책임 하에 음주도 가능하다. 병사들이 1년 동안 손꼽아 기다려온 날이다.
프로그램 편성 또한 인기가수를 불러들이는 소모성 이벤트가 아닌 병사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마당을 조성했다. 사단장과 함께하는 연주, 개별 장기자랑, 민군화합 건강 달리기 대회, 줄다리기, 씨름, 축구 등 다양하다.
"여기는 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죠?"수십 개의 부스 중 병사들이 길게 늘어선 곳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원판을 돌려 맞추는 코너다. 동행한 주임원사에게 물었더니 피식 웃는다.
"휴가증이 걸려 있어서 그래요."그랬구나. 옆에 마련된 커피바리스타에서 1천원을 내고 동료 전우들이 만든 커피를 마셨을 때 참여티켓을 준다. 운이 좋으면 1천원으로 휴가증을 얻을 수 있는 기횐데 누가 마다하겠나. 모은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으로 쓰인단다.
"여기 주방장 누구예요? 내가 먹어본 라면 중에 제일 맛있습니다."반합라면 코너. 라면을 군 식기인 반합에 끓여 파는 곳이다. 같은 라면이라도 용기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반합에 끓인 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 강한 가스 불에 반합을 올려놓고 라면을 끓인다. (반합이 두텁기 때문에)열이 떨어지는 속도가 늦어서일까. 라면 특유의 느끼함보다 담백한 맛이 강하다.
행사 전, 난 이 코너 축소를 건의했었다. 라면으로 배를 채운 사람들 때문에 시가지 식당가 이용이 줄어들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기우였다. 식사보다 체험 또는 간식으로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박스만 사자""그렇게 많이? 뭐하게?"건빵판매 코너. 1봉지에 550원, 50개들이 1박스가 2만5000원이다. 사무실에 비치했다가 민원인들이 방문했을 때 한 봉지씩 선물로 주면 좋아할 거라 했더니 아내는 '군사도시에선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샀다. 김정수 27보병사단장이 건빵을 사서 평소 친분이 두터운 친구들에게 추석선물로 보냈더니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머님, 아드님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늠름하지 않습니까!"사단장이 아들 면회 온 어머님께 건넨 말이다.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껏 치켜세우자 어머님은 자랑스럽다는 듯 그윽한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본다. 사단장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어찌 대견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실 사단장은 그 병사를 모를 것이다. 1만 명이 넘는 병력들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나. 이 정도면 사단장은 고단수인 거다. 병사들에게 존경과 가족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김정수 사단장만의 노하우다.
감사패 의미
'지역상인 여러분, 이기자 페스티벌 기간 동안 많은 군인들이 찾을 겁니다. 국토방위에 고생하시는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따듯하게 대해 주셔서 그들이 우리 지역을 고향 같은 이미지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페스티벌 개최 2일 전, 사창리 전 상가에 직접 쓴 협조문을 돌렸다. (그럴 리 없겠지만)음식값 문제나 불친절 시비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면장님,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우리 집은 용사들에게 10%할인을 해 줍니다."최근 짜장면 집 문을 연 황승철씨는 병사들이 찾았을 때 자발적으로 음식 값의 10%를 깎아 준다고 말했다.
"상인들에게 보낸 협조문 때문 아닐까?"면장으로 취임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지났다. '이기자 페스티벌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라는 혼잣말에 아내는 '당신이 상인들에게 보낸 협조문을 부대장님이 높이 평가한 듯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감사패 의미는 앞으로 민과 군의 발전적 가교역할을 해 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