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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의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조상님께 차례상을 지내는 일 외에 많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있다. 나는 음식 준비를 같이 거들 능력이 부족해 돕는 정도 외에는 여가 활용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 본다. 어느 해는 김기덕 영화만 십여 편, 다음 해는 구할 수 잇는 홍상수 영화 몽땅. 올해는 모처럼 책을 읽으려고 도전하다가 결국 두 편의 영화와 드라마 <어셈블리(2015)>에 빠지고 말았다. 영화는 <협녀(2015)>와 <그랜토리노(2008)>다. 우연히 본 영화지만 둘 다 복수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스스로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 스토리도 일치하다. 물론 이 두 편을 본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미생>을 꼽는데 이견은 없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오픈 프라이머리다, 안심공천이다 뜨거운 공천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본 <어셈블리>는 매우 훌륭한 정치교과서다. 어느 드라마가 더 우수한가를 꼽으라면 주저함 없이 <미생>이지만 그런 비교는 부질 없다. <어셈블리>를 흥미롭게 본 이유 중의 하나는 처음 접하는 정치드라마라 서기도 하지만 중간에 나오는 '맞수토론', '국회 내의 찬반토론', '인사청문회' 등 다양한 토론이 담겨 있어서다. 민주주의의 꽃은 토론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내게 정치를 둘러싼 음모와 밀실 야합(이런 것을 드라마에서는 정치공학이라 부른다)이나 주인공 진상필 의원의 극적이고 아름다운 정치 행보도 좋았지만 토론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의사결정 과정의 공부가 더 끌린 탓이다.

구구절절이 감동적인 진상필의 토론 발언을 다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데 그 중에서 두 가지 정도만 소개한다. 그라마 후반부에 실패한 사람들 돕기 위한 패자부활의 상징인 '배달수법'을 놓고 보수파와 진상필은 마지막 충돌을 피하지 못한다.

여당내 반청와대파 강상호 의원이 말한다.


(능구렁이 같은 말투, 경상도 사투리를 적절히 넣어) "사회적 갈등이요? 그거 다 경제가 어려워서 생기는 겁니다. 좀 전에 홍 의원께서 1조 원이라는 돈을 푼돈처럼 말씀하셨는데 그건 아니지요. 솔직히 그 돈을 기업에 '투자'해보세요, 일자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불쌍한 사람들에게 용돈 주듯이 주머니에 낑겨 넣어준다? 이거는요,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매한가지입니다. 차라리 그럴 돈이 있으면 '투자'를 해야지요. '투자'를 해서 '겡제'(경제)를 살려야된다 이말입니다.

기업투자 가난 물붓기 드라마 한 장면
기업투자 가난 물붓기드라마 한 장면 ⓒ 유동걸

이 말을 듣고 마지막으로 진상필 의원이 발언에 나선다. 갑자기 질문 하나만 하고 내려간다고 하니 의장은 질문을 하지말고 토론을 하라고 부추기는데, 강상호 의원에게 '룰라'를 아냐고 물으니 강상호 의원, 가소롭다는 듯이 일어나 자기 오른쪽 엉덩이를 처내며 그룹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를 부른다. 주변에 웃음이 터지고 진 의원은 한심하다는 듯이 그 <룰라> 말고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를 언급한다. 진작에 대통령 룰라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툴툴대면 자리에 앉는 강의원. 진상필 의원은 브라질 대통령 룰라가 했던 질문 하나를 던져주고 내려가겠다고 한다.

"아까 강상호 의원이 기업에 투자해서 경제를 살리자는 말씀, 예,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근데요, 없는 사람들한테 돈을 주는 게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하신 말씀, 동의가 안되서요. 제가 룰라가 했던 질문, 제가 대신 강 의원께 해드리겠습니다.

(진상필 목에 힘을 주어 더 큰 목소리로) 어째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합니까? 예? (이 질문에 장내 숙연해지면서 사람들 울리는 가슴을 진정하느라 애쓴다.) 패자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게, 그게 어떤 투자보다 더 가치 있는 투자라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어셈블리 19화 배달수법 국회 본회의 찬반토론 중에서)

이어 간곡히 호소하면서 노력하지 않고 여심히 일하지 않고 경기에 패배한 사람을 보듬자는 취지가 아니라 배달수씨처럼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갑근세까지 꼬박꼬박 냈지만 그럼에도 길로 내몰린 사람을 돕자는 법이라는 걸 강조한다.

하나 더 소개하면 이런 대목도 있다.

"제가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아시다시피 저 원래 용접공이었습니다. 저 용접 엄청 좋아합니다. 왜냐하면요, 용접은 붙이는 거거든요. 그 어떤 쇳덩어리가 와도 다 녹여서 붙이는 거거든요.

저는요, 정치도 용접같은 거면 좋겠습니다.

경상도 전라도도 붙이고
잘 사는 사람도 못 사는 사람도 붙이고
승자하고 패자도 붙이고
그렇게 붙이고 붙여서
서로 하나가 된
그런 나라를 만드는게 정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배달수법도 그런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어셈블리 20화 배달수법 최종 투표를 놓고 벌인 주제 토론 가운데서)

정말 한 편의 시같은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 연설은 분열된 한국정치와 그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는 이정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드라마의 취지를 살려 토론과 교육 자료 활용을 고민하던 차에 전화가 왔다. 거짓말처럼 우연은 영화에서 멈추지 않았다. 10년 전 원탁 토론을 처음 공부하던 시절에 내게 토론을 배웠던 제자가 연락을 해왔다.

거두절미하고 요지는 희망제작소에서 시민원탁토론 노란테이블 시즌2를 기획하는데 운영을 도와달라는 취지였다. 주제는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추석 연휴 내내 본 드라마의 핵심 아니던가. 기꺼이 수락하고 짧은 글로 홍보를 돕기로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입니다.
시민사회단체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요.
희망제작소가 한국정치의 불판을 갈아보기 위해 새로운 기획을 했습니다.
세월호 국면에서의 노란테이블에 이어 시즌2를 준비했네요.

노란테이블의 진행을 도울 사람을 찾습니다.
진행자로서 어려우면 참가자로 나가셔도 좋습니다.

<어셈블리>의 한 장면을 더 소개합니다.

노동자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치와 인생에 환멸을 느낀 규환은 국회에서 살아가는 정치인들을 인간쓰레기로 단정합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인간의 숨결을 느끼게하는 정치를 실천하는 보좌관 최인경은 수긍을 하면서도 정치불감증이나 정치혐오를 경계합니다. 부재자 투표 외에 선거조차 한 번도 하지 않는 젊은 규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그나마 네가 재벌집 아들하고 똑같이 가진 게 그거 한 장인데 그걸 버리다니"
"아니, 찍고 싶은 놈이 있어야 찍죠?"
"좋은 놈이 없으면, 덜 나쁜 놈을 찍으면 되잖아. 그래야 제일 나쁜 놈이 당선 안 되지~"
"덜 나쁜 놈도 나쁜 놈은 나쁜 놈이잖아요. 뭐하러 그럽니까?"
"플라톤이 한 이 말을 꼭 기억해주세요 김규환 씨~.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제일 저질스러운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두말하지 않아도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정치는 작금의 역사전쟁을 비롯 교육 현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한겨레 토요판에 격주로 글을 연재하는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의 글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아는만큼 보인다고 정치도 알고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 정치, 깨어 있는 시민이 바꾸지 않으면 결국 저질의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지요.
시간과 역량이 되시는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주변에 알려주시고 참여가능하신 분들은 황현숙(010-9000-4281)님께 연락 바랍니다.

http://www.makehope.org/%eb%aa%a8%ec%a7%91-%eb%88%84%ea%b0%80-%ec%a2%8b%ec%9d%80-%ea%b5%ad%ed%9a%8c%ec%9d%98%ec%9b%90%ec%9d%b8%ea%b0%80-4/



#어셈블리#국회#노란테이블#희망제작소#원탁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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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교사로 토론교육 운동을 통해 토론의 전사를 키워내왔다. 오랜 세월 토론 공부의 성과를 모아 토론의 전사1~10 시리즈를 기획 집필하고 공부를 사랑하라. 강자들은 토론하지 않는다. 질문이 있는 교실(한결하늘) 등을 출간하며 교육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가고 있다. 서울의 고등학교 명퇴 후 현재 산청의 지리산고등학교에서 기간제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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