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과 살인은 심리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많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란 말도 있다. 만약 한국에서도 총기 소유가 허용된다면?
지난 3일, 부산의 실내사격장에서 총기탈취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4시간 만에 범인이 붙잡혀서 2차 범행은 없었지만,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은 권총 단 한 자루 때문에 온통 난리가 났다. 기본적으로 총이라는 것 자체가 인명 살상용으로 특화된 물건이고, 실제로 그 어떤 흉기보다도 '성공률(?)'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이를테면 총기류를 이용한 자살 시도의 성공률은 85%지만, 다른 수단을 통한 자살 성공률은 2% 정도라고 한다).
총기와 관련된 사건·사고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인 미국에서는, 지난 1일에도 오리건주의 한 대학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9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범행 직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20대 중반의 범인은 방탄복을 착용한 채 권총과 소총에 장시간 총격전을 벌일 수 있을 만큼의 많은 탄약을 소지한 상태였다. 미국 경찰은 총격 현장에 있던 총기 6정을 포함해 범인 소유의 총기 14정을 회수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동안 15번이나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는데, 오리건주 사건 직후에는 심지어 "(총기 참사가)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하기까지 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면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를 명확하게 말해야만 서로 오해를 막을 수 있을 만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총기 참사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1982~2014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주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 - 세계 총인구 중 4.4%, 총기 보유량은 42%버락 오바마는 지난 1일(현지시각) 연설에서 "미국은 몇 달마다 이런 대형 총기 사건이 일어나는 지구 상의 유일한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특히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다수의 전문가가 공통으로 지적하듯이) 미국인들이 총을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총인구에서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4%에 불과한데, 전 세계의 민간인이 소유한 총기 중 미국인의 보유량은 무려 42%에 달한다.
미국인들이 가진 총기의 수는 자그마치 2억7천만 정인데, 이는 민간인 100명당 88정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세계 1위). 매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약 60~70% 정도가 총기를 이용한 살인이라고 하며, 최근까지 미국인의 사망원인 중 교통사고에 이어 두 번째가 바로 총기 사고였다.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212일 동안 모두 210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고, 매일같이 총기 사고가 발생한 올해에 사상 처음으로 총기 사고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추월할 게 거의 확실시 된다.
결국 미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이제 총기 사고가 될 것이고, 점점 더 빈번해지는 추세를 볼 때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대체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미국은 총기 규제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으며, 며칠 전 오바마가 직접 말한 대로 총기 난사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매일같이 90명 넘는 미국인이 총기 사고로 인해 숨지고, 이 가운데 약 60명은 총을 이용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 10~30대 사망원인 1위 '자살'2013년 한 해 동안 미국의 총기 사고 사망자는 3만3600여 명이었다. 2001년 9·11 참사 이후 테러로 희생된 미국인이 약 3400명이니까, 지난 십몇 년 동안 테러로 희생된 미국인보다 단 1년 동안 총기사건으로 숨진 미국인의 수가 10배나 더 많다.
산수만 해봐도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듯이, 적어도 미국에서는 테러로 죽을 확률보다 일상생활 중 총 맞아 죽을 확률이 100배 이상 높은 셈이다.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삶에 가장 큰 위협은 테러가 아니고 총기인 셈이다.
한편 지난 4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에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자살 사망자 수는 7만2천여 명이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이라크 전쟁 사망자 수는 약 3만9천 명이고,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수는 1만5천여 명이다.
결국, 이라크 전쟁 사망자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한국의 자살자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한국에서는 전쟁보다도 무서운 게 자살이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은 10년 넘게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그것도 약간 높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서 OECD 평균의 2.5배에 달하고, 매일같이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국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대한민국의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라는 점이다. 최근 수 년간 계속 1위에서 변화가 없었고(작년에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1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운수사고'였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듯싶다.
총기와 자살, 미국과 한국의 미래를 좀먹는 내부의 폭탄미국의 인구는 약 3억2천만 명이고, 한국은 5천만 명 가까이 된다. 미국에서는 총기사고로 매일 90명이 죽고, 한국에서는 자살로 매일 40명이 목숨을 잃는다. 내전이나 치안부재 후진국을 제외하고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 중에서 그 어떤 나라도 미국만큼 총기사고 사망자가 많지 않으며(두 번째 많은 국가보다 미국의 인구 100만 명당 총기사고 사망자 수가 거의 4배에 육박한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치명적으로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을 동시에 기록하진 않는다.
미국인들은 교통사고보다 총기사고로 가장 많이 죽고, 한국의 10대·20대·30대는 자살로 가장 많이 생을 마감한다. 세계 최대 군비 지출국인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테러나 전쟁보다도 자국내의 총기를 막지 못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매일 불안에 떤다. 오바마도 인정했듯이, 말 그대로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적극적인 총기 규제 정책을 펼쳐서 이후 7년간 살인은 42%, 자살은 57% 줄인 호주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미국은 돌아가고 있다.
지난 8월 26일 <뉴욕타임스>가 총기 문제와 관련한 사설에서 지적한 바대로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미국인 모두 알고 있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살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다들 높은 자살률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겠지만,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한국인 모두 알고 있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전혀 없어 보인다.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한 주요 전쟁 사망자 수의 2~5배나 더 많은 국민들이 자살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정부는 내년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사업 예산을 삭감해버렸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자살률이 3배나 높아졌고, 지금도 역사상 최악의 '자살공화국'이다. 그래서 올해까지만 해도 지속적으로 자살예방사업 예산을 늘려왔다. 예전부터 계속 예산을 증액해 오다가 사실상 내년에 처음으로 감액하는 셈이다. 상식적으로, 전혀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인데 항상 늘려왔던 예산을 갑자기 줄이는 이유를 납득하기는 어렵다. 뭐가 잘못됐는지 알면서도, 미국이 총기 규제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거나 한국이 자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건, 결국 비슷한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arthurjung.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