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혼자 '한 달 네팔여행'을 다녀왔다. 10박 11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올랐고, 어떤 날은 할 일 없이 골목을 서성였다. 바쁘게 다니는 여행 대신 느리게 쉬는 여행을 택했다. 쉼을 얻고 돌아온 여행이었지만, 그 끝은 슬펐다. 한국에 돌아오고 2주 뒤 네팔은 지진의 슬픔에 잠겼다. 그래도 네팔이 살면서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임에는 변함이 없다. 30일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 기자 말
까마귀 소리에 눈을 떴다. 오전 5시, 드디어 아침이다. 자기 전부터 애타게, 정말 애타게 기다린 아침이 왔다. 새벽녘 추웠던 방도, 방 앞 전신주에 앉아 쉴새없이 울어대던 까마귀들도 이젠 다 괜찮다. 드디어 이 방을 나갈 날이 밝았으니까. 다행이다.
여기는 네팔 카트만두의 한 게스트하우스. 어제 체크인한 이 방은, 골목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 바로 옆에 진갈색 화장대와 다홍빛 의자가 놓여 있었고, 침대 발 밑엔 빨간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플 그 자체. 듣던대로 '강추할 곳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숙소였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1층 벽엔 한글로 적힌 투어리스트 버스 안내문도 붙어있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쌌다. 하룻밤에 800루피(한화 8800원).
어지러운 타멜 골목에서 이곳을 찾아 헤매던 내게 길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여기 게스트하우스 사장이었다. 인연이라면 기막힌 인연. 배가 불룩 나온 퉁퉁한 체격에 위 아래로 하얀 옷을 입은 사장은 대뜸 "미스터 김 소개로 왔냐"고 물었다. "아니, 한국 여행자들이 추천해서 왔어요." 내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그는 누가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너한테만 '스페셜한 가격'에 주는 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라고 오른손 검지를 자신의 입 앞에 갖다 댔다. 그의 팔목에선 굵은 금팔찌가 짤랑거렸다.
"너한테만 800루피에 주는 거야. 짤랑.""비싸요. 다른 사람들은 600루피에 묵었다고 하던데...""이봐 친구~ 그건 아주 아주 옛날 가격이라고. 짤랑."내가 들었던 가격보다 비쌌지만, 앞뒤로 매달린 10kg이 훌쩍 넘는 가방들이 그냥 여기에서 쉬자고 징징거렸다. 그래, 이 예산에 다른 데 간다고 특별히 다를 것 같지도 않아.
그렇게 하루치 방값을 내고, 이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난 '괜찮았다'. 부실해 보이는 문고리도, 여기 저기 담뱃불 자국이 보이고 색이 누렇게 변한 변기도(물론 엉덩이를 대고 싶진 않았지만), 안 닫히는 한쪽 창문도 '다 괜찮았다'.
'호텔방 온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인도에선 이보다 더한 방에서도 잤잖아.'헐렁한 문고리에 고장난 창문... 그건 약과였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여기까지 모든 것은 순리대로 이뤄졌다. 침대에 걸터앉는데 머리맡에 놓인 베개에 눈이 갔다.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손은 베개 쪽을 향했다.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더 뒤돌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베개 안을 들여다 본 순간, 쿨한 척하며 간신히 유지해온 내 평정심은 실 한 오라기 마냥 끊어져버렸다. 당장 방문을 열고 나가 다른 숙소를 구하고 싶었다.
베갯잇 안엔 그간 봐왔던 '하얀' 베개솜, 더러워졌어도 침 흘린 자국 몇 개가 고작인 베개솜 대신 '갈색의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한두 군데 얼룩이 아닌 '모두 다' 갈색인 베개솜. 맞은편 침대 위에 올려진 베개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젠장. 오후 10시가 넘은 이 시간에 나갈 수도 없다. '어차피 잠만 잘 거...' 베개를 한쪽에 밀어놓고 눅눅한 이불 위에 누웠지만 눈앞에 '갈색 베개솜'이 아른거린다.
'벌레나 쥐도 아니고 그냥 베개솜이잖아, 내일 버스 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빨리 자자. 근데 베개솜이 이 정도면, 축축한 이불하고 매트리스는 어떻다는 거지….'위로와 번민이 어둠 위로 겹겹이 쌓였다. 여행지에서의 첫날밤은 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법이지만, 잠들기도 전에 깨고 싶어진 적은 처음이다. '자야 한다, 아니 잘 수 없다, 자야 한다, 아니 잘 수 없다'를 반복하던 난 몸을 웅크린 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침대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한 '칼잠' 자는 자세로 누웠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새벽 추위를 피해 축축한 이불 안으로 들어가 대자로 누워있다.
길었던 밤이 지나고, 드디어 포카라로 가는 아침. 먼지 쌓인 인도를 정성스레 비질하는 여인들을 지나 버스가 일렬로 줄지어 선 도로에 도착했다. 나는 잠을 못 자 퉁퉁 부은 얼굴로 길거리에서 파는 찌아(밀크티) 한 잔을 사먹었다. 쭈글쭈글한 얇은 플라스틱 컵에 든 차를 홀짝이는데,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그 다음은 노란 스쿨 버스, 다음은 오토바이, 다시 자전거, 자동차... 여느 도시처럼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따뜻하고 달콤한 찌아 기운이 온 몸에 퍼지면서 피로가 스르륵 녹아내렸다.
천천히 네팔을 여행하는 방법... '어깨동무' 하고 있는 집들
"allo? allo? (여보세요? 여보세요?)"벌써 4시간 반 째. 버스는 전화도 안 터지는 산길을 달리고 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버스로 7~8시간 정도 걸리니 이제 반 왔다. 내게 티켓을 판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에어컨도 나오고 와이파이도 터지고 핸드폰 충전도 할 수 있으며, 물까지 한 병 주는! 좋은 버스'라고 했는데... 출발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는다. 도심이나 휴게소에서는 되지 않을까 했는데,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전화도 안 터지는데 와이파이가 될 리 없지.
좌석마다 콘센트도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불량이다. 어쩐지 너무 좋다 했어. '네팔 가서 인터넷 안 할 거니 연락하지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도로 곳곳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화장실에 가고, 밥을 먹느라 한 시간에 한 번씩 서다 가다를 반복했다. 그래, 이럴 땐 그저 맘 편히 느긋하게 가는 게 최고지.
버스 밖 산길 풍경은 우리네 시골같다. 연보라빛 꽃들이 밭고랑을 덮고 있고, 길 중간 중간 슬레이트로 지은 가게가 보인다. 그 앞에선 미소 가득한 네팔 사람들이 어울려 오후를 보내고 있다.
하나 색다른 것은 네팔의 집들은 벽을 같이 쓴다는 점이다. 집 옆에 새 집을 지을 경우, 일정 공간을 띄워 놓는 게 아니라 집끼리 붙여서 '합벽 건물'을 짓는 것이다. 공사비를 줄이기 위함인지, 공간을 더 넓게 쓰기 위함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달리는 버스에서 바라본 건물들은 대부분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안식월 여행지로 네팔을 선택한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여행했던 인도의 '레'는 동네 어디서나 히말라야 설산이 보여 생경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곳은 사회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로도 유명한 라다크 지역이었다. 그 풍경이 너무 황홀해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사진을 보며 '다음엔 저 설산 더 가까이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안식월 여행지로 '세계의 지붕' 네팔을 정해놓고 있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그 설산이 차창 밖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오랜 버스 이동에 지친 마음을 달래듯,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시시콜콜 정보>- 숙소에서 버스 티켓 사도 괜찮을까? : 나라마다 버스 티켓을 어디에서 사는 게 괜찮은지가 갈린다. 경험상 인도와 네팔에서는 숙소에서 사도 괜찮다. 반면, 라오스의 경우 숙소에서 사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버스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팔의 화장실은 유료 : 화장실이 공짜인 한국인 입장에선 의아하지만, 네팔의 많은 화장실들이 사용료를 받는다. 가격은 보통 10~20루피(110원~220원) 정도이다. 미리 잔돈을 준비해놓는 게 좋다.- 환전은 카트만두에서 : 포카라 환율은 매우 안 좋다. '공항보다 안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 가급적 환전은 포카라로 떠나기 전 카트만두에서 하는 게 좋다. 거리 환전소 보다는 숙소나 한인 식당에서 환율을 잘 쳐준다. 타멜 근처에 있는 '제이빌'이라는 여행사도 환율이 좋기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