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섭 테마개발과장 ②에서 이어집니다그 때만해도 최 과장은 광명동굴 유료 전환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광명동굴 안에 조성한 '광명와인동굴'이 '국산와인 메카'가 되는 대박을 터뜨릴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례 통과는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다. 지난한 동굴 내부공사가 테마개발과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료 전환 재개장일은 2015년 4월 4일로 결정됐다. 남은 기간은 5개월 남짓. 그 기간 안에 공사를 끝내야 했다. 마음이 급한 것처럼 일도 빠르게 진척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공사 설계를 하고, 회계과로 넘겨 입철과정을 거치다보니 실제 공사기간은 60일 남짓이었다. 테마개발과 전 직원은 60일에 모든 것을 걸고 공사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개장 날짜에 맞춰 공사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매일 회의를 하면서 남은 날짜를 카운트다운 했어요. 진짜 할 수 있어? 60일 남았어, 59일이야. 우리는 할 수 있어. 이러면서 남은 날짜를 센 거죠."최 과장은 온 몸의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고 그때를 떠올린다. 시설공사는 더디게 진행됐다. 내부공사가 끝나야 거기에 준비한 콘덴츠를 채워 넣을 수 있는데, 시간 여유가 없다보니 공사를 하면서 한쪽에서 콘덴츠를 채워 넣는 상황이 반복됐다. 개장 닷새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도 마무리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4월 4일, 광명동굴은 예정대로 문을 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개장 준비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방문객들에게 내보이기에 손색이 없는 상태였다. 입장료가 절대로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개장 첫날, 최 과장 뿐만 아니라 양기대 시장을 포함함 광명시 공무원들은 광명동굴 방문객 현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첫날 입장객 수는 광명동굴 유료 전환 성공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4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광명동굴을 찾은 유료 방문객은 8천 명을 넘었다. 입장료 수입은 3천만 원을 기록했다. 출발이 좋다. 이 정도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최 과장은 안도했다. 개장 한 달이 넘으면서 광명동굴을 찾는 관광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계기가 있었다. 5월 3일, 광명동굴이 유명 TV 프로그램인 <런닝맨>에 소개된 것이다. 어린이날인 5월 5일, 광명동굴 진입로 1.7km는 광명동굴을 찾는 관광객 차량으로 꽉 메워졌으며, 매표소 앞은 입장권을 사려는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날 광명동굴 방문객은 1만4천여 명이었다.
광명동굴 개장 6개월 만에 유료 방문객은 74만 명을 넘어섰다. 입장료 수입은 30억을 넘었고, 광명와인동굴에서 국산와인 2만6천여 병이 팔리면서 판매금액이 4억7천만 원을 기록했다.
<런닝맨>에 소개된 광명동굴, 유료 방문객 74만 명 넘어 최 과장은 가끔 광명동굴 앞에서 동굴로 들어가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들을 보면서 유료 재개장을 앞두고 불면으로 지새우던 날들을 생각한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누구에게도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스트레스를 삭여야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린다.
꼬박 3년이었다. 짧다면 짧지만, 3년은 그에게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지금이야 광명시 공무원들이 테마개발과가 광명시청 최고의 엘리트들만 갈 수 있는 부서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지만, 그가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가 폐광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인 것은 그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거의 쉬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그건 테마개발과 직원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광명동굴에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건 주말과 공휴일이다. 7월 15일부터 8월 31일까지 오후 9시 30분까지 야간개장을 실시했다.
추석연휴에도 광명동굴은 문을 열었다. 이런 상황이니 최 과장을 비롯한 테마개발과 직원들은 주말과 공휴일에 쉬기는커녕 더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최 과장에게 가장 불만이 많은 사람은 당연히 그의 아내다. 아내의 건강이 좋지 않다. 그래서 그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신경을 쓰기는커녕 이른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이어지고, 주말에도 쉬지 않으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집사람이 저더러 시청과 결혼했다는 말을 여러 번 했죠. 미안하죠. 집사람에게 미안하고, 애들한테도 미안하고. 애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모를 정도로 일에만 미쳐서 살았으니까. 사람들은 공무원은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내가 공무원이 돼 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최 과장은 1987년, 광명시청 사회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사법고시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포기한 것을 가장 아쉬워한다. 그래도 대학에 다닐 때 4년 내내 장학금을 탄 것은 지금도 자랑스럽다.
처음부터 내 길이라고 여기고 시작한 공직생활이었으니 천직이라 여기는 건 당연했다. 아내가 일에 미친 그에게 "퇴직하면 황혼이혼을 각오하라"는 협박(?)을 해도 그는 손에서 일을 놓을 수가 없더란다. 지난 28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으랴.
"폐광을 개발해서 광명시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까지 활성화하는 효과를 본 것은 대단한 거죠.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 외국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 올수록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광명동굴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조경제 롤 모델이잖아요."광명동굴을 개발 업무를 하면서 최 과장은 '동굴 전문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테마개발과 직원들과 현장에서 열심히 일한 기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죠. 그렇게 부딪혀야만 새로운 관광지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니까. 우리가 만들어낸 기적이 머무르지 않고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 광명동굴이 세계문화유산이 돼 영원히 빛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직원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