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만들어진 신문이 <경인일보>의 전신이다. 그런 <경인일보>가 인천 언론의 효시이며 진보지를 표방한 <대중일보>의 역사를 독식한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창간 년도가 42년, 55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났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경인일보>의 인천 주주들이 주도해 창간한 <인천일보>도 창간 70주년을 표방해도 무방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인천 언론의 효시로 알려진 <대중일보>에서 일한 이훈기 전국언론노동조합 OBS지부 지부장은 <경인일보>의 <대중일보> 지령과 창간일 승계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관련기사 :
<경인일보>의 느닷없는 <대중일보> 승계?).
이 지부장의 집안은 3대에 걸쳐 71년째 언론에 종사하고 있다. 조부 이종윤씨는 일본 도쿄고등공예학교를 졸업한 후 오사카마이니치신문에 근무하며 인쇄기술을 습득했다.
이후 인천 중구 인현동에 선양사라는 인쇄소를 개업했다. 해방 후 <대중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대중일보>의 뒤를 이은 <인천신보> 부사장 겸 편집인 등을 지냈다.
선친 이벽(李闢)씨는 1947년 <대중일보> 기자로 시작해 <인천신보> 취재부장, <동양통신> 인천 특파원, <경기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경기일보> 편집국장 재직 시 유신정권에 의한 언론 통폐합이 이뤄졌고, 그때 언론계를 떠났다.
이 지부장은 1991년 <인천일보> 공채 2기 기자를 시작으로 25년째 경인지역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유신정권에 의해 강행된 언론 통폐합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경인일보>의 <대중일보> 지령과 창간일 승계 문제만 나오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고 전했다. "40년 전의 일임에도 유신독재가 휘두른 칼날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인천 지역사회 침묵해선 안 돼"최근 인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경인일보>의 <대중일보> 승계 문제에 대해 이 지부장은 먼저 인천지역 오피니언과 시민사회가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고 했다.
"술자리나 사석에서 많은 사람이 '<경인일보>의 <대중일보> 승계는 어불성설'이라고 말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 지역사회가 언론권력 눈치만 보고 있다. 시민사회와 오피니언들이 <대중일보> 승계 문제에 침묵하면서 인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이 지부장은 <경인일보>의 자기성찰과 반성도 주문했다. <경인일보>의 전신인 <경기신문>은 유신의 최선봉에 설 것을 다짐하는 등, 헌법을 유린한 유신독재를 미화하고 찬양했다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만이 역사 왜곡은 아니라고 했다.
"<경기신문>은 유신 과업의 최선봉에 설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대중일보>를 계승한 <경기매일신문>은 '불편부당'과 '정론직필'을 지켜온 올곧은 언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인일보>는 언론 통폐합 등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대중일보> 승계를 주장하려면 언론 통폐합으로 아픔을 겪은 유족이나 지역사회에 공개적으로 사과라도 해야 했다.""<대중일보>는 인천의 자산" 이 지부장은 해방 이후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복간보다 빠르게 창간된 <대중일보>는 인천의 자산인 만큼, 인천지역 언론인들이 <대중일보>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일보>는 해방 이후 어느 언론보다 일제 잔재 청산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고, 죽산 조봉암의 글도 몇 차례 실었다. 한글날엔 모든 지면을 한글로 내는 등, 당시로써는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 지면을 구성했다. 여기다 여성 기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등, 진보지를 표방했다."이 지부장은 지금이라도 인천 지역사회가 <대중일보> 계승 사업을 진행하고 <경인일보>의 인천 언론사 왜곡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경인일보>가 지금처럼 <대중일보>를 독식하고 역사를 왜곡한다면, 불매운동 등의 저항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지부장의 집안은 인천 지역사회, 언론인들과 함께 <대중일보> 계승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선친의 이름을 딴 '이벽 언론인상' 제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