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대 광명시장이 광명와인동굴 조성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이곳이 대박을 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와인 한 방울 생산하지 않는 광명시가 '국산와인 메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광명와인동굴 때문이다. 광명와인동굴은 대한민국에서 국산와인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 되면서 전국 와인생산자와 판매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광명와인동굴에서 4월 4일부터 10월 6일까지 6개월 동안 팔린 국산와인은 2만 6000여 병이며, 판매금액은 4억 6800만 원에 이른다. 광명와인동굴은 존재조차 희미했던 국산와인을 새롭게 조명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만일 양기대 시장이 와인동굴 조성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광명와인동굴은 여전히 폐광의 볼품없는 수평갱도 가운데 하나로 남아 개발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와인동굴은 전체 길이가 194m이며 높이와 폭은 3.5m로 광명동굴 입구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다. 이곳은 세 구간으로 나뉜다. 와인시음장, 와인셀러, 와인레스토랑이다. 와인동굴을 처음 조성할 때는 지금처럼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 높이와 폭은 고작 1m 남짓이었다. 가늘고 긴 터널 같은 수평갱도를 확장해 와인동굴로 조성한 것이다.
와인동굴은 양 시장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광명동굴 내부온도가 일 년 내내 12도로 일정하다는 사실에 착안, 와인동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광명동굴 안에서 와인동굴로 가장 적당한 장소를 찾았고, 수평갱도가 이어진 현재의 와인동굴이 최적지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수평갱도의 높이와 폭이 1m 남짓이었기 때문에 확장공사를 해야 했다. 이 공사를 담당한 사람이 바로 이영권 도로시설팀장이다. 한데 이 팀장은 처음부터 광명동굴이 미덥지 않았다. 동굴 내부가 단단한 바위(경암)으로 이뤄져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해도 이 팀장은 믿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어요... 스위스 가서 생각이 바뀌었죠"
토목직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폐광이 아무리 한때 수도권 최대의 금속광산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버려진 쓸모없는 공간일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채굴을 하지 않고 버려진 폐광은 풍화작용으로 내부가 약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폐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를 대비해 동굴 안에 들어갈 때면 꼭 안전모를 썼다. 양 시장은 안전모조차 쓰지 않고 수시로 폐광에 들어갔지만 그는 안전모를 절대로 잊지 않았다.
어둡고 습한 폐광은 천장에서 계속 물이 떨어졌다. 차가운 냉기가 감돌아서 기분까지 나빠졌다. 그는 이런 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양 시장이 못마땅했다. 그 때문에 가능하면 동굴에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한데 그런 그에게 와인동굴 확장공사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내키지 않았어요. 시장님 눈에는 동굴이 보물로 보이는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그냥 폐광으로만 보였거든요. 저는 잘 모르는데 전문가들이 확공을 안 하는 게 좋다, 건드리면 위험하다, 풍화가 너무 많이 진행됐고 물도 많이 떨어지니 잘못 건드리면 동굴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겁을 주는 거예요. 그러니 내키겠어요. 공사를 맡고 토요일마다 동굴에서 회의를 하는데 시장님은 안전모도 안 쓰고 들어갔지만 저는 꼭 안전모를 썼어요. 위험하다고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잖아요. 동굴이 무너져 죽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이 했어요."동굴에 들어가는 것도 찜찜해 하던 그는 동굴 확장공사를 하라는 지시가 못마땅했다.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양 시장에게 밝혔지만, 폐광 개발에 푹 빠진 양 시장이 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와인동굴 조성계획은 이미 확정됐고, 공사만 남은 상황이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동굴 확장공사를 하려면 사업계획을 세우고 실시설계를 해야 한다. 예산도 필요한데 얼마를 세워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의 머릿속은 더 복잡했다.
이 일은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불만이 쌓여갔고, 시장이 원망스러웠다. 그게 2012년 10월 즈음이었다.
동굴확장 공사에 부정적이던 그의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찾아왔다. 2013년 2월, 장기근속 25년을 맞이해 해외연수를 가게 된 것이다. 10박 12일 일정으로 영국과 스위스 등을 포함한 7개국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마침 큰 딸이 고3이라서 아내와 큰 딸이 빠지고 작은 딸과 함께 갔다.
이 여행에서 그는 관광강국 스위스를 만나게 된다. 산악지대가 70%인 스위스가 관광강국이 된 것은 얼음과 만년설로 덮인 산악지대에 동굴을 뚫어 철도를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팀장은 스위스에서 산악철도를 타고 융프라우에 올랐다. 그의 눈앞에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는 그곳에서 산악철도를 놓기 위해 스위스 사람들이 바위를 뚫어 만든 동굴의 의미를 생각했다.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그 희생은 스위스가 세계적인 관광강국이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때 이 팀장은 폐광을 생각했다. 그가 추진해야 하는 동굴 확장공사가 불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어차피 피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이라면 자신감을 갖고 하자. 해보자. 스위스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것은 없다.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결심을 하고 귀국했다. 생각을 바꾸니 일을 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기왕에 하는 것, 잘하고 싶었다. 누가 아나, 와인동굴이 근사하고 멋진 공간이 된다면 그걸 만들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될지. 그는 마음을 다졌다. 2013년 3월이었다.
처음 계획은 동굴의 높이와 폭을 2미터로 확장하는 것이었으나 계획 입안 과정에서 3.5미터로 넓혔다. 공간을 여유 있게 활용하려면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공사 진행한 11개월 동안 하루도 맘 편히 못 잤어요"
2013년 10월, 동굴확장 공사 설계를 끝냈다. 11월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급경암이라 너무 단단했어요. 풍화가 많이 진행돼서 돌이 쉽게 깨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공사 진척이 너무 느렸죠. 공사기간을 7개월 정도로 예상했는데 11개월 이상 걸렸어요."하루 작업량을 2m로 예상했다. 하지만 광산개발에 참여했던 최고의 업체가 달려들어 작업을 하는데도 공사는 쉽지 않았다. 하루에 1m조차 확장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바위가 단단하다는 것은 동굴이 절대로 무너질 염려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공사의 가장 큰 걸림될이 되었다. 결국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더 많은 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광명시의회는 광명동굴 개발을 반대하면서 관련 예산을 삭감하기 일쑤였다. 양기대 시장은 개발을 추진하고, 시의원들은 예산을 깎아대니 중간에 낀 공무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시의회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해도 개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꾸 예산을 깎아대는 것도 모자라 경기도에서 내려온 특별교부세조차 예산에 반영시켜주지 않았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예산이 예상보다 늘어나자 이 팀장은 공사업체와 계약을 할 때 차수계약을 했다. 세워진 예산 범위에서 공사를 하고, 예산을 다시 세워 공사를 하는 일종의 편법이었다. 만일 광명와인동굴이 국산와인의 메카가 되면서 국산와인 판매에 엄청난 기여를 할 줄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작업에 애를 먹다보니 참 힘들었어요. 대신 동굴이 무너질까봐 겁을 먹었다가 워낙 암질이 좋으니까 무너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 부담이 없어졌어요. 공사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다행이었죠."동굴 확장공사는 4명이 한 조가 돼서 이뤄졌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점보 드릴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바위를 깬다. 깨낸 돌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그냥 운반할 수 없어 동굴 안에서 바위를 잘게 자르는 작업을 한다. 그런 작업이 12시간씩 2교대로 진행됐다.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작업을 했으나, 80m를 확장하는 데 4개월이나 걸렸다.
공사업체는 전국에서 암벽을 깨는 작업을 많이 해봤지만 광명동굴처럼 어려운 곳은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공사업체가 더 이상 못하겠다면서 손을 뗐다. 이 팀장은 공사업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사업체가 상당히 고전했어요. 경제적인 손해도 봤죠.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고 있어서 자신 있다고 했는데, 공사가 예상보다 많이 어려웠거든요. 시간이 많이 걸리니 돈이 많이 들고, 예상보다 경비가 많이 나오니 결국은 손을 뗀 거죠."
이 팀장이 동굴 확장공사를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건 '안전'이었다. 동굴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동굴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계속 제기하는 상황에서 공사 도중에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개발이 전면 중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굴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 명단을 작성해서 일일이 체크를 했죠. 몇 시에 누가 들어가서 무엇을 하는지 항상 확인했어요. 도로에서 하는 작업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동굴은 폐쇄된 공간이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불가능하잖아요. 어두워서 안 보이는 게 많아서 늘 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이 팀장은 공사가 진행되던 11개월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잠을 자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중압감, 누구도 모른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만 해도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단다.
2014년 10월, 드디어 공사가 끝났을 때 그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고 없이 공사가 잘 마무리됐으니 책임을 완수했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동굴 확장공사 경험도 쌓았으니 이제는 어떤 공사도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영권 도로시설팀장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