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강력한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잘못을 감싸며 화제가 되고 있다.
샌더스와 힐러리는 14일(한국시각) 미국 CNN방송이 주최한 2016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대선후보 첫 TV 토론회에서 정면 충돌했다. 처음으로 공식 토론회에서 마주한 선두주자 클린턴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샌더스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뜨거운 공방을 펼쳤다.
그러나 예상 밖의 장면이 나왔다. 사회자는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임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공적 업무를 처리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클린턴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투명하게 업무를 처리했다"라며 "공화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의 혈세로 (이메일 스캔들 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나를 공격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곧이어 샌더스가 손을 들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모두가 클린턴을 거세게 몰아세울 것으로 예상했고, 힐러리의 굳은 얼굴로 샌더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샌더스는 모두의 예상을 깨는 발언을 쏟아냈다. 오히려 샌더스는 "국민들은 그놈의 이메일(damn emails) 논란을 듣는 데 지쳤다, 언론도 문제가 있다"라고 클린턴을 감쌌다.
샌더스는 "이제 제발 중산층을 살리고,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토론에 집중하자"라고 강조했다. 뜻밖의 발언에 클린턴은 환하게 웃으며 "나도 그렇다, 정말 고맙다"라고 먼저 악수를 청했고, 샌더스가 화답하면서 객석을 가득 채운 민주당원 청중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정치인이었던 '약자' 샌더스가 오히려 '강자' 클린턴의 약점을 감싸는 이 장면은 토론회의 하이라이트였다. 미국 언론도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샌더스 돌풍에 힘을 불어넣었다.
샌더스·힐러리 악수에 청중들 '기립 박수'샌더스와 힐러리의 화기애애한 악수로 민주당 토론회는 인신공격이나 네거티브가 없이 품격 있는 정책 토론으로 달아올랐다. 샌더스는 "소수가 너무 많이 차지하고, 다수가 너무 적게 갖는 카지노 자본주의는 안 된다"라며 "미국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로부터 배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빌 클린턴 정부가 금융규제를 너무 완화하는 바람에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라며 "의회가 월 스트리트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월 스트리트가 의회를 규제하고 있다"라고 비판하며 강도 높은 금융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샌더스는 클린턴이 상원의원 시절 찬성했던 이라크 전쟁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외교적 실패"라고 비판했다. 이에 클린턴은 "이미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이 문제를 25차례에 걸쳐 토론했다"라고 반박했다.
힐러리는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나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하면서 나의 외교적 판단을 높이 평가했다"라면서 "내가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면서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등 외교적으로 많은 성공을 남겼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샌더스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총기 규제에 대해 전면적인 찬성을 경계했다. 이에 클린턴은 "샌더스는 지난 1993년 신원 조회를 통과한 사람만 총기 소유를 허가하는 '브래디법'의 통과를 무려 다섯 차례나 반대했다"라며 "총기 규제에 너무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샌더스는 "예를 들어 (자신의 지역구) 버몬트주에서 정신 이상자가 합법적인 총기 판매점에서 총기를 구입해 미친 짓을 저질렀다면, 그 총기를 판매한 곳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은가"라고 반박하며 제한적인 총기 규제를 주장했다.
토론은 클린턴, 인기는 샌더스가 이겼다 미국 언론은 클린턴의 저력을 확인했지만, 샌더스의 돌풍을 실감한 토론회였다고 평가했다. 클린턴은 노련한 정치인답게 차분하고 세련된 토론을 펼치며 유력 대선주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CNN은 "클린턴의 멋진 밤(big night)이었다"라고 평가했고, <뉴욕타임스>도 "클린턴의 풍부한 정치 경험을 보여줬고, 샌더스보다 우세한 토론회였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인기는 샌더스의 차지였다. <워싱턴포스트>는 "토론회가 시작되고 끝나는 순간까지 샌더스가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라며 "샌더스가 발언할 때마다 구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는 트래픽이 엄청나게 발생했고, 이는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특히 클린턴을 두둔한 샌더스의 '이메일 발언'은 앞으로 인터넷에서 수십억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할 것"이라고 평가했고, 예상대로 이 장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샌더스는 페이스북 설문조사에서도 85%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토론회 승자로 꼽혔다.
최근 이메일 스캔들로 지지율이 흔들리던 클린턴이 이번 토론회에서 막강한 저력을 확인했고,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도 강력한 돌풍을 증명하면서 대선후보를 향한 민주당 대선은 더욱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