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스스로 별칭을 '빅풋(BigFoot) 부부'라고 붙였습니다. 실제 두 사람 모두 '큰 발'은 아니지만, 동네 골목부터 세상 곳곳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리 이름을 붙였지요. 내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대한 발자국이 된다고 믿으며 우리 부부는 세상 곳곳을 우리만의 걸음으로 여행합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든 여행 영상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 말바르셀로나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1시간 20분이면 도착하는 작은 도시, 헤로나(Gerona)에 다녀왔습니다. 카탈루냐어로는 '지로나'(Girona)라고 하고, '히로나'라고도 읽기 때문에 도시를 여행하는 내내 도대체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참 난감한 곳이었지요. 하지만 오랜 역사가 도시 곳곳에 고스란히 숨 쉬고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헤로나는 오냐르 강(El río Oñar)을 사이에 두고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나뉩니다. 기차에서 내려 조용히 도시 풍경을 비추며 흐르는 오냐르 강을 건너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헤로나 여행은 시작됩니다.
스페인의 옛 정취를 간직한 소도시
헤로나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이베리아 반도의 어원이 된 민족인 '이베로인'이 세운 도시입니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아왔던 곳이지만, 반도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던 곳인 만큼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아도, 골목골목 천천히 걸으며 도시가 지닌 옛 향기를 느끼는 것 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우리 부부가 헤로나를 여행했던 날은 토요일. 헤로나 구시가지의 중심거리라 할 수 있는 리베르타트 거리에는 오전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상점과 카페들이 늘어선 거리를 따라 장이 섰기 때문인 듯합니다. 큰 장은 아니지만, 이 도시에 사는 이들은 토요일이면 이곳에 나와 일주일간 가족이 먹을 소시지를 사고, 꽃을 구경하며, 거리에서 파는 추로스 한 조각으로 요기를 했겠지요. 북적이는 토요일 오전 헤로나의 거리는 흥겹고 자유롭습니다.
노천장이 서서 북적이는 리베르타트 거리 주변은 9~15세기에 걸쳐 유대인이 살았던 지역입니다. 구시가지의 좁은 통로들과 계단에는 유대인의 주거지였던 흔적들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옛 거리, 옛 건물 풍경이 잘 살아있구나' 정도입니다. 그것이 유대인 주거지의 흔적인지 아닌지를 알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이 유대인들이 살았던 곳이고, 여전히 많이 거주하는 곳이란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게 하나 있습니다. 종교가 곧 생활인 유대인들의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이 거리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지역은 유대인 거리로도 불리지만, 주변 건물들은 헤로나 중세 건축물의 전형이라고 할 정도로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잘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좁은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스페인의 옛 정취를 느끼기에는 그만인 곳이지요.
옛담도 보고, 옛집도 보고 집집마다 예쁘게 장식해 놓은 꽃들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아주 독특한 정면의 대성당과 마주하게 됩니다.
넓은 계단 위로 보이는 대성당은 유럽의 고딕 양식 성당과는 좀 달라보이는데요, 수수한 듯 보이지만 이 지역 특유의 카탈루냐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옛 로마 사원 자리에 세워진 헤로나의 대성당은, 이후에 자리잡은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비교해도 결코 매력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지요.
원래 이곳에 있던 성당은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717년에 모스크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가 785년에 헤로나를 탈환하면서 다시 성당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하네요.
성당 오른쪽에 있는 팔각형 종탑은 헤로나를 수복한 샤를마뉴 대제의 이름을 따서 '샤를마뉴의 탑'으로 불리는데, 16세기에 추가로 지어진 것입니다.
내부는 다른 유럽 성당에 비해 매우 어둡습니다. 그래서 사진에 담기엔 참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진찍는 걸 그만두고 천천히 걷거나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장엄한 성당이 주는 느낌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416년에 귈렘 보필에 의해 만들어진 본당의 회중석(會衆席, 성당 입구에서 제단 사이에 있는 신자들이 앉는 공간)은 그 폭이 22m나 되는데,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다음으로 규모가 큽니다. 고딕 양식의 성당 중에서는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또 은과 에나멜을 입혀 만든 14세기 제단에는 귀한 보석들이 박혀 있고, 그 뒤로는 '샤를르망의 의자'라 불리는 대리석 의자가 있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성당 내부가 워낙 어두워 제단을 장식한 보석들의 화려함도, 샤를르망 의자의 위엄도 제대로 느끼기는 좀 힘들었어요. 대신 성당 곳곳에 이를 자세히 촬영한 사진과 설명 글이 화면에 게시돼 아쉬움을 덜 수 있었습니다.
헤로나 대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은 11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지창조 태피스트리>입니다. 중앙에 그리스도가 있고 주변에 아담과 이브, 하늘과 빛, 동식물을 비롯한 만물의 창조 과정이 원을 그리며 묘사돼 있습니다. 이 태피스트리는 '보물관'에 보관돼 있지요.
이외에도 성 베아투스 데 리에바나의 <요한 계시록에 관한 소고> 10세기 경 복사본과 14세기에 만들어진 <페레 엘 세레모니오소 조각상>도 보물관에 보관된 중요한 유물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우리 부부가 방문한 이 날에는 대성당의 입장이 무료인 대신, 보물관은 입장 불가였습니다. 대성당에서 제공한 화면을 통해서만 태피스트리를 비롯해 보물관의 유물을 볼 수 있었던 게 좀 아쉬웠어요.
헤로나에는 아주 잘 보존된 '아랍 목욕탕'도 남아 있습니다. 건축물의 형식이나 모양은 아랍 스타일이지만 실제로는 무어인 지배시기 이후인 12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무어인의 후손인 부유한 사업가와 수공업자들의 노력으로 국토회복전쟁 이후 5세기가 넘도록 손상 없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한 여행서는 이 아랍 목욕탕을 "아름다운 팔각형 등불이 비치는 목욕탕"이라고 묘사하고 있었는데, 정말 표현 그대로였습니다. 목욕물이 담긴 팔각형 탕 위에는 햇살이 그대로 들어오도록 뚫려 있는 팔각형 지붕이 있어, 마치 목욕탕 중앙에 커다란 '햇살 등불'이 켜져 있는 것 같은 신비로움이 느껴졌어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헤로나는 성벽 주변으로 고고학의 거리가 이어져 있습니다. 1809년 프랑스 군대가 7개월간 이곳을 점령하고 있을 때, 손상된 성벽을 복원한 것을 제외하고는 로마인들이 쌓아올린 그대로 성벽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니, 참 놀랍지요.
성벽을 따라 이어진 고고학의 거리는 마을의 북쪽, 갈리간츠 성당(St. Pere de Galligants) 부근에서 시작되는데요, 옛 수도원 건물인 이곳은 현재 도시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헤로나 시에 존재하는 로마 건축 양식의 건물 중, 가장 훌륭하다는 갈리간츠 성당의 내부 모습도 보고 도시의 오랜 유물도 관람할 겸 박물관 입장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겁니다. 안내를 보니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휴관. 점심 시간에는 문을 닫는 박물관이라, 뭐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어요. 과거 이탈리아 여행에서, 특히 나폴리나 시칠리아 같은 남부 지역 도시들에서 참 많이 겪은 일이었지요.
박물관도 이른바 '시에스타(Siesta, 낮잠)'에 들어간 겁니다. 갈리간츠 성당에서 발걸음을 돌려 헤로나 사람들이 종교적 애착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산트 펠리우 성당(St. Feliu)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성당 앞의 노천 카페만 여유로운 낮 시간을 즐기며 겨울 햇살을 받기 위해 모여든 마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어요.
두 동양인만 빼고 시에스타에 들어간 도시
문을 연 성당과 박물관을 찾아 헤매는 두 동양 남녀 외에는 헤로나의 모든 이들이 '시에스타'에 들어간 듯 보였습니다.
시에스타(Siesta)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 국가와 라틴 문화권의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낮잠 풍습을 말합니다. '낮잠'이라고 하지만 꼭 잠을 자는 시간은 아닙니다. 한낮에는 높은 기온과 식곤증 등으로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해둔 일정한 시간에 낮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거지요.
스페인의 경우 2005년 12월 관공서는 시에스타를 폐지했다고 합니다.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나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름난 도시들은 시에스타 때문에 여행이 불편한 경우는 잘 없습니다. 관공서뿐만 아니라 상점이나 관광 명소들이 시에스타로 문을 닫는 경우가 잘 없거든요.
하지만 헤로나 같은 작은 도시에선 여전히 시에스타 풍습을 아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길 양쪽으로 갖가지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거기엔 토요일 오전의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오후 2시가 넘어서자, 무슨 마술을 부린 듯 인적 드문 거리가 돼버렸습니다. 상점들은 문을 굳게 닫았고, 오전에 열렸던 노천 시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낮잠에 빠진 듯, 거리엔 정적마저 감돕니다.
예쁘고 독특한 소품들이 전시된 가게에 눈이 갔지만 그곳 역시 문을 닫았습니다. '이곳도 2시부터 4시까지 쉬려나...'했는데, 입구에 붙어있는 영업시간을 보고 우리 부부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오전 10시 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1시 30분까지 영업을 한 뒤 3시간 반 동안은 시에스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 다시 문을 열고 저녁 8시까지 영업합니다. 하루 중 가게 문을 여는 시간은 총 6시간.
"구아우 (Guau, 와우)!"저도 지방 소도시에서 5년간 조그마한 소품 가게를 운영했었습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데도 친구들에게 "배짱이다, 니가 공무원이냐, 장사는 그러면 안 된다"라며 온갖 훈계를 들었는데,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해도 정녕 부러웠네요.
어쩌면 시에스타에 익숙한 헤로나의 소비자들은 이곳 물건이 꼭 필요하다면 문 여는 시간에 찾아 오겠죠. 그리고 나와 경쟁 관계에 있는 헤로나의 모든 가게들이 비슷한 시간 만큼 영업하고, 시에스타를 꼬박꼬박 지키고 있으니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그리 손해볼 일도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장사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친구들이 성화해도 배짱부리며 하루 9시간 영업을 한 제가 뭐라 할 말은 아니지만, 장사를 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밥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니 가게 안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먹 듯 밥을 먹었습니다. 장사를 하는 5년 내내 소화 불량이 따라다녔습니다. 1시간 정도 가게도 문을 닫고 점심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배짱 좋은 상상을 했었지요.
스페인을 비롯 시에스타를 풍습으로 둔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이제는 국가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이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심하지 않은 범위라면 어느 직종이건 어떤 계층이건 여유로운 점심 시간을 공평하게 즐길 수 있다는 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사실 돈과 시간을 들여 멀리까지 온 여행자에게 '시에스타'는 참 불편하고 난감한 시간입니다. 입장을 할 수 있는 곳도 제한되고, 잠들어버린 도시는 영상에 담아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시에스타를 한두 번 겪게 되면, 여행자로서 그것 또한 즐기는 법을 알게 됩니다.
그냥 현지 사람들과 비슷하게 움직이면 됩니다. 분주히 돌아다닐 때는 같이 돌아다니고, 그들이 시에스타에 들어가면 그때 같이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며 쉬면 되지요. 우리 부부도 갈리간츠 성당과 산트 펠리우 성당이 시에스타에 들어간 것을 본 오후 2시 넘어서야 간단히 점심을 먹었습니다. 커피도 마셨고요.
그리고 낮잠에 들어 더 고요하고 아름다운 오냐르 강가는 오전과는 다른 느낌의 풍경이었습니다. 헤로나에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11개의 다리가 있다고 하는데, 빨간 철제 건축이 눈에 띄는 다리는 에펠탑을 만든 회사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철제 구조물 때문인지 에펠탑의 느낌이 폴폴 풍깁니다.
헤로나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영화 박물관'(Museu del Cinema)입니다. 간판과 외벽을 보면 이곳이 재미 넘치는 박물관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영화 감독인 토마스 마욜의 개인 수집품을 전시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기엔 영화 역사를 관통할 만큼 전시품의 규모가 방대합니다.
그동안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이탈리아 토리노의 영화 박물관을 가본 적이 있는데, 토리노의 박물관에는 미치치 못하지만 규모가 비슷한 프랑크푸르트의 영화 박물관보다는 좀 더 흥미로웠습니다. 2000년 전 중국의 그림자 연극에 쓰인 소품 등 영화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작품부터 시대별 영화 제작 도구까지 전시돼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직접 시연해보고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전시품도 알찹니다.
우리 부부가 시청각실에 들렀을 때는 '존 F. 케네디'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명화뿐 아니라 아마추어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면서 평소에도 다양한 영화 관련 행사들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지방의 소도시에 삽니다. 헤로나의 오냐르 강처럼 도시의 중심을 아름답게 가로지르는 강이 있습니다. '천년의 고도'로 불리는 역사 깊은 도시입니다. 그래서였는지 대도시인 바르셀로나 여행에 나흘간 빠져 있다가 헤로나에 도착했을 때는 왠지 모를 안도감과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요. 제 경험으로는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같기도 하지만 조금씩 다른 삶을 사는, 세상의 수많은 풍경들이 있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거겠지요.
작고 아름다운 스페인의 소도시, 헤로나에서의 하루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동영상도 한 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