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을 기다려온 만남이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이 20일 오후 3시30분(북한 시간 3시) 금강산에서 꿈에도 그리던 혈육과 감격적인 첫 상봉을 했다.
남측 상봉단 96가족 389명과 북측 96가족 141명은 이날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의 '단체상봉'으로 2박3일간의 상봉 일정을 시작했다.
이날 금강산호텔 2층에 마련된 상봉장에는 우리측 상봉단 389명이 가족별로 96개의 테이블에 앉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북측의 가족들을 기다렸다. 양복과 한복을 차려 입은 북측 가족들이 상봉장에 들어서서 각자 정해진 테이블을 찾아가자 상봉장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체상봉'으로 2박3일간 일정 시작 남측 여동생 이흥옥(80)씨는 북측 오빠 리흥종(88)씨가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들어서자 한눈에 알아보고 "오빠!"를 외치며 달려 나갔다. 이날 상봉장에는 흥종씨가 2살 때 두고 떠난 딸 이정숙(68)씨도 함께 나왔다. 흥종씨가 딸을 알아보지 못하자 동생 흥옥씨가 "오빠 딸이야, 딸"이라고 알려줬다. 눈시울이 붉어진 흥종씨는 그제서야 딸을 올려다 봤다.
북측 상봉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채훈식(88)씨는 동갑내기 부인인 이옥연씨를 65년 만에 만났다.
부인 이씨는 1950년 8월 징집돼 전선으로 나가던 시기에 '잠깐 안동 훈련소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던 남편을 기다리며 65년 동안 남편을 기다렸다. 혹여 남편이 찾아올까봐 이사도 하지 않았다. 고령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이씨는 남편 채씨의 목소리를 행여라도 놓칠까봐 연신 남편에게 귀를 기울였다.
이들 부부의 아들인 채희양씨는 "아버님 생사가 확인되기 전부터도 아버님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저는 제주(祭主)가 되어도 아버님을 대신해 술을 따랐다"고 말했다. 이제 65살이 된 아들은 북녘의 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해 직접 농사 지어 수확한 햅쌀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북에 사는 여동생 김남동(83)씨를 만나기 위해 온 우리측 최고령 김남규(96)씨는 귀가 어두워 가족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동생 남동씨가 오빠의 두 손을 꼭 잡고 "남규 오빠가 옳은가?"라고 물었지만 남규씨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남동씨가 "(고향인) 사천 초가집에 아직 사느냐"고 오빠에게 묻자, 남규씨의 딸 경숙씨가 아버지를 대신해 "사천에 새로 집 지어서 이사했어요"라고 고모에게 알려줬다.
남동씨가 "북측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의사로 쭉 일하고 있다"고 하자 조카 경숙씨는 "남측에 있는 내 딸도 의사다"라고 답했다.
상봉단 중에는 북한 최고 수학자였던 고(故) 조주경(1931∼2002년)씨의 아내 림리규(85) 씨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리규씨는 남한에 사는 동생 임학규(80), 조카 임현근(77), 시동생 조주찬(83)씨를 만났다.
누나를 만난 학규씨가 "지금 누이가 몇이우?"라며 묻자 리규씨는 "나 여든 여섯이야. 근데 등본에 여든 다섯이야"라고 차분하게 답했다. 학규씨가 다시 "많이 안 늙으셨어, 누이"라고 말하자 리규씨는 같이 온 아들을 소개했다.
시동생 주찬씨가 형수 리규씨에게 "아들 철민이가 지금보니까 나를 닮았어, 형수"라고 말하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5남매 가운데 학규씨의 누나인 리규씨만 인민군에 붙잡혀 북에 남게 돼 이산가족이 됐다. 리규씨의 남편 고 조주경씨도 서울대학교 재학 중 인민군에 의해 납북됐다.
이날 단체상봉은 5시30분까지 2시간 남짓 진행됐다.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는 우리측이 주최하는 형식의 환영만찬이 마련돼 있다. 남북의 가족들은 함께 모여 우리측에서 제공하는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다.
이틀째인 21일에는 오전 개별상봉(9시30분~11시30분), 공동 중식(오후 12시30분~2시30분), 2차 단체상봉(오후 4시30분~6시30분) 등 3번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이산가족상봉 큰사진①] 긴 기다림, 짧은 만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