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이 똑같은 길을 걷다보니 낯설기만 했던 인도나 한국이나 사람살이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익숙해진 북인도 코사니의 시골 풍경이 내가 자란 어린 시절의 고향 길이나 다름없이 다가온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아낙네들은 가축들에게 먹이를 준다. 어제 저녁 나뭇가지를 쳐서 한 짐 준비해둔 나뭇잎들을 소와 염소에게 나눠 주고 있다.
아침 준비가 한창인 어떤 집에서는 흰 머리의 할머니가 쭈글쭈글한 손으로 어린 손녀의 머리를 빚어주고 있다. 손전화기 시계를 보니 이제 여섯시 반이다. 오늘은 학교에 가질 않는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의 아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 큰 딸아이가 여럿 있는 제법 큰 집에서는 라디오 혹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로 요란하다. 여자들이 아침 준비를 할 무렵 남자들은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가며 집 앞 의자에 걸터앉아 할 일없이 하품을 하거나 두 눈을 끔뻑거리며 칫솔질을 한다. 저만치 외딴 집에서는 잠에서 덜 깬 꼬맹이의 앙앙 울어대는 소리와 야단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뒤엉켜 들려온다.
길가 집 발발이는 밥값이라도 하겠노라 깽깽깽 짖어대고 온갖 새들은 때늦은 자명종처럼 심란하게 목울대를 흔들어 댄다. 그렇게 히말라야 설산이 바라 보이는 북인도 올드 코사니의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여행길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작별을 의미한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길 따라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듯 오늘은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좀 더 깊숙한 신작로 길로 접어든다. 낯선 인도 땅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무작정 걷고 또 걷는다. 그 길에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어린 시절의 신작로 길을 만난다. 비포장 길로 걸어들어 가면서 나는 점점 과거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 길목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빼닮은 아이들과 내 친구들과 이웃들을 만난다.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다소 넓게 펼쳐진 차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어디쯤에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차밭 저만치 지붕이라 할 것 없이 겨우 비 가림만 하고 있는 외딴집에서 여자 아이 둘이 빨래를 하며 깔깔깔 웃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의 그 맑은 웃음소리에 홀려 길을 벗어나 언덕 아래로 내려섰다. 그 집에서 한 사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기를 높이 쳐들어 찍어도 되냐는 몸짓을 보였더니 자신의 집으로 내려오라는 손짓으로 흔쾌히 반긴다.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내 옆에는 서너 살쯤 된 어린 아이가 쪼그려 앉아있다. 녀석은 강아지를 껴안고 사진기가 낯선지 자꾸만 시선을 피한다. 그 모습이 어린 시절 낯가림이 심했던 우리 집 아이들과 닮아 있다. 그 앞에는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젊디젊은 아낙네가 방아를 찧고 있다. 절구통이 따로 없다.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맨땅에 파놓은 구멍에 밀을 넣고 절구질을 하고 있다.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세 살쯤 돼 보이는 어린 아이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착 달라붙어 있다.
힘겨운 절구질을 하면서도 그녀는 사진기를 들이대자 슬며시 웃어준다. 저만치에는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열 두어 살쯤 먹어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빨래를 하고 있고 열 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한쪽에서 비누질을 하며 머리를 감고 있다. 그리고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장난기 가득한 남자 아이가 사진기 앞을 오락가락하다가 낯가림 없이 얼굴을 들이대며 앞니 빠진 웃음을 내보인다. 아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빨래하던 여자 아이들은 수줍게 웃어가며 호기심 가득한 곁눈질로 나를 슬금슬금 훔쳐본다.
북인도 코사니 사람들은 모두가 잘 웃는다. 화를 내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며칠 전이었다. 가텀씨와 함께 채식전문 식당인 요기레스토랑에서 요구르트 종류인 라씨를 마시고 있는데 바로 코앞에서 연식이 오래된 다 낡은 승용차가 앞차를 쿵 소리가 나도록 들이받는 일이 있었다.
그 낡은 승용차안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앞 차를 들이받은 접촉사고를 냈는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차 문을 열고 나와 하하하 웃었다. 물론 앞차 운전자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뒤차 주인에게 바락바락 화를 내지 않았다. 자동차 번호판이 약간 찌그러진 자신의 승용차를 둘러보며 그저 침통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내가 월세로 살고 있는 숙소 앞집에는 늘 두 손 모은 웃음으로 '나마스테' 인사를 나누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며칠 전에는 작은 아이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칭얼거렸다. 하지만 젊은 엄마는 나무람 없이 아이를 놀려대며 연신 웃고 있었다.
손방아를 다 찧고 난 아낙네가 겨를 걸러내기 위해 키질을 한다. 밀가루 양이 많지 않다. 오늘 하루 식사 분량이나 나올까 싶다. 이 집 아이들은 모두 일곱 명이다. 우리 형제도 일곱이다. 지금은 막내가 50줄을 바라보고 있지만 40여 년 전, 5남 2녀 우리 일곱 형제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내에게 물었더니 자신의 아이들은 둘인데 절구질하고 있는 젊디젊은 여자가 아내라고 한다. 나머지 아이들은 삼촌네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겨우 비바람막이 벽과 지붕을 얹힌 판잣집에서 열 한 식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발목에 차고 있는 장식물이 눈에 잡힌다. 발목에 찬 장식물이 매일 같이 절구질을 하여 일용할 양식을 챙겨야 하는 그녀의 벗어날 수 없는 족쇄처럼 다가온다.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이들 가족의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다시 한 번 되 뇌였다. 하지만 이들 가족이 사진 찍는 내내 거부감 없이 호기심 어린 웃음을 내보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아침 햇살처럼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를 뒤로 하고 다시 신작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한 여자 아이가 옥상 계단을 오르다가 낯선 이방인인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본다. 머리에 히잡을 두른 것을 보아 무슬림 집안의 아이 인 듯싶다. 집 앞에는 다리를 저는 할아버지가 보이고 그 옆에 개 두 마리가 묶여 있다.
무슬림 아이에게 사진기를 높이 들어 보이자 오르던 계단에서 잠시 멈춰 선다. 나는 연속해서 셔터를 눌러대며 아이의 표정을 사진기에 담는다. 무슬림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한 발을 외로 꼬며 마치 모델처럼 포즈를 취한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져 있다. 아이는 집 마당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옥상으로 올라간다. 나는 그 아이와 거리를 좁혀 다가가 활짝 웃어 보라는 표정을 지었더니 그때서야 수줍게 웃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옥상 아래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의 엄마가 화를 버럭버럭 내며 힌두어로 뭐라 뭐라 해가며 아이를 나무란다. 묶여 있던 개들이 나를 향해 심하게 짖는다. 아이의 표정은 다시 굳어지고 사진기를 피해 급히 계단 아래로 내려선다.
무슬림 아이의 집 길 건너 편 언덕 위 자리한 집안에서도 큰 소리가 들려온다. 사내의 윽박지르는 소리다. 부엌 쪽을 향해 뭐라 뭐라 고함을 지르고 부엌을 들락거리는 아낙네가 뭐라 뭐라 대꾸하는 것 같았는데 남자의 날선 목청에 눌려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좀 전에 집 마당에서 오락가락 하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방안에서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엄마 아빠의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달 가까이 나는 대부분 코사니 아이들의 웃는 표정들을 담아왔다. 인도에 와서 오늘처럼 아이들의 슬픈 표정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보통의 여행자들이 그러하듯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표정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곳 올드 코사니에서 사나흘 정도 머물렀다면 분명 인심 좋고 웃음 많은 인도 사람들의 표정만을 담아냈을 것이었다. 그 사진 몇 장으로 이들의 행복과 불행을 함부로 저울질 했을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혼쭐이 났던 무슬림 아이의 표정이 아프게 다가와 자꾸만 뒤돌아본다. 멀리 무슬림 아이가 옥상에서 빗자루 질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를 향해 사진기 초점을 맞추자 옥상 난간에 몸을 숨긴다. 청소를 하지 않고 사진만 찍고 있었다고 엄마에게 혼난 모양이다. 그럼에도 못내 아쉬운지 아이는 다시 고개를 내밀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본다. 사진기를 거두고 손을 흔들어 주자 녀석이 머뭇거리며 손을 흔들까 말까 하는 몸짓으로 옥상 난간 뒤로 숨어 얼굴만 빼꼼 내밀고 바라본다.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산책길을 되돌아 나오는데 신작로 길과 아스팔트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나를 알아보고 가볍게 손을 흔든다. 처음 만났을 때는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내가 다가서면 환한 미소로 사진을 찍어 달라 요구했던 노동자들이었는데 이제는 별 감흥 없이 인사를 주고받는다.
맨 처음 사진기 앞에 섰을 때처럼 환한 웃음도 없다. 저들의 손짓에는 더 이상 사진 찍기와 낯선 나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힘겨운 노동일을 하면서 간이침대도 없는 천막의 맨땅에서 담요 몇 개로 생활하는 저들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것이 슬프다. 누군가의 아픔에 무감각해져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스팔트 노동자들과 가벼운 눈인사로 헤어져 매끈한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그 길 위에 개구리 한 마리가 자동차에 치여 사지를 쩍 벌린 채 처참하게 죽어 있다. 삶과 죽음은 한순간에 담기는 사진이나 스치는 바람과 같다. 삶은 바람처럼 흘러가는 끝없는 여행길이다. 삶의 여정이 끝났을 때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바람에 스친 흔적만 남게 될 뿐이다
그 흔적조차 망각의 강물에 휩쓸려 가뭇없이 사라질 것이다. 망각의 강물에 행복과 불행 아픔과 슬픔 기쁨조차도 다 쓸려갈 것이다. 저 강가, 갠지스 강의 화장터에서 나오는 한 줌의 재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다. 살아있기에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 해가며 기쁨과 슬픔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