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장은 1학년 1명, 2학년 1명, 6학년 1명으로 전교생이 총 3명이다. 6학년생 최바다(13)군은 1학년 때부터 동갑내기 학급친구가 없었다. 바다는 '학교 밖' 친구를 찾아 지난 2010년 '더불어 입학식'에 참여했다. 그 때 전남 여수 여안초등학교에 다니는 진도현(13)군을 만났다. 같은 '나홀로 학년'의 두 친구는 서로에게 친구가 돼 줬다.
1학년이었던 최바다군과 진도현군은 어느새 6학년이 돼 '더불어 졸업식'에서 다시 만났다. 5년이란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인사를 건네거나 안부를 물을 법도 한데 두 친구는 처음 보는 사이인 것처럼 서먹해 했다. 도현이가 엄마 원순복(45)씨에게 "입학식에서 만난 친구야"라고 살짝 귀띔을 해줬을 뿐이다. '더불어 졸업식'을 통해 5년 전처럼 2박 3일 간 동고동락을 하게 될 두 친구는 다시금 서로에게 '학교 밖' 친구가 돼 줄 수 있을까.
"동갑내기 친구도 만나고 좋은 경험도 쌓게 해주고 싶어"
지난 21일 낮 12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더불어 졸업식'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나홀로 졸업생'이 모였다. 올해 8회를 맞은 '더불어 졸업식'은 바다나 도현이처럼 학교 안에선 혼자 졸업을 맞을 농어촌 지역 초등학생들을 모아, 함께 졸업하고 여행하며 전국의 '학교 밖' 친구를 만들어 주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올해는 전남 신안, 경북 영천, 충북 단양, 강원도 양양 등에서 온 '나홀로 졸업생' 13명과 아이들의 엄마, 선생님, 후배들까지 총 27명이 '더불어 졸업식'에 참가했다. 행사는 2박 3일로 진행된다. 첫날 일정은 대한문에서 3일 동안 함께 다닐 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3~4명이 짝을 지어 한 조를 이루고, 조마다 아이들을 인솔하는 선생님이 배정됐다. 강원도 양양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윤태근(13)군은 조원들끼리 소개를 하는 내내 엄마 김승오(38)씨 뒤에 숨어 있었다. 재작년 '더불어 졸업식'에 참여한 뒤 이번이 두 번째라는 김승오씨는 "평소 낯을 많이 가리는 태근이가 동갑내기 친구도 만나고 좋은 경험도 쌓게 해주고 싶어 다시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낯을 가리는 태근이와 달리 서로 장난치기 바쁜 아이들도 있었다. 전남 여수 여안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제 진도현군과 진현호(11)군이다. 현호는 5년 전 '더불어 입학식'에 이어 졸업식도 형을 따라 서울에 왔다. 무리에서 떨어져 주최 측에서 나눠준 행사 일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학생도 보였다. 강원도 정선에서 온 고지윤(13, 정선 벽탄초)군은 마치 하나의 일정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듯 일지를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옹알스' 공연 시작되자 어색함도 허물어져
27명을 태운 버스는 대한문에서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로 향했다.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팀 '옹알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조를 나눈 뒤에도 어색함이 풀리지 않았는지 가운데 한 자리씩을 띄우고 앉았다.
'옹알스'의 공연이 시작되자 어색함의 '벽'도 거짓말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트박스 공연을 할 땐 너도나도 공연에 몰두해 박수 소리가 커지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옹알스'가 입으로 분 풍선으로 푸들을 만들어 나눠주려 하자 전북 정읍에서 온 장영주(13, 도학초)양이 재빨리 손을 들어 풍선을 차지하기도 했다.
"제가 여러분 나이에 마술을 시작했고, 지금 이렇게 꿈을 이뤄가고 있다. 여러분들의 꿈도 파이팅!"공연의 열기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들을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됐다. "비트박스 '대박'이었지?" "완전 쩔어" 등의 말들이 아이들 사이 오갔다. '옹알스'가 떠나기 전 건네준 선물인 문구세트, 중학생 1학년용 참고서, 동화책 또한 만족하는 눈치였다. '더불어 입학식'에도 참여했던 전남 고흥에서 온 민유진(13, 녹동초 소록도분교장)양은 "입학식 때 받은 것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다.
'옹알스' 공연을 보고 발동이 걸린 민유진양은 에버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말이 터졌다. 같이 온 두 살 어린 김결(11, 녹동초 소록도분교장)양과 같은 조가 되지 못해 내내 어두운 기색이었던 얼굴빛도 활기를 되찾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티 익스프레스(놀이기구)'를 못 타서 후회돼요. 이번에는 꼭 탈 거예요."민양은 흥분을 감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녹동초 소록도분교장 곽충섭(45) 선생님도 "두 아이 부모님이 소록도병원에서 일하셔서 연차를 내기가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왔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정말 좋네요"라며 미소를 띠었다.
첫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급속도로 친해진 아이들놀이기구를 타며 아이들을 급속도로 친해졌다. 충북 단양에서 온 노정훈(13, 별방초)군은 자기 조 친구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친구들의 이름을 조금이라도 빨리 외우기 위해서다.
"<명량> 봤어? 난 텔레비전에서 해주길래 봤는데."
정훈이에게 같은 조 신현빈(13, 위도초 식도분교장)군이 말을 걸었다. 어느새 둘은 나이도 성별도 같아서인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에버랜드 안에서 이동하는 내내 어깨동무를 놓지 않았다.
정훈이는 학교에서 말이 없는 친구였다. 학교에 또래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정훈이가 다니는 별방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4명이지만 6학년은 정훈이 뿐이다. 현빈이도 마찬가지다. 현빈이가 재학 중인 위도초 식도분교장은 전교생이 3명이다. 동갑내기 친구가 없었던 둘이 빠른 속도로 친해질 수밖에 없던 이유다.
저녁 식사를 할 때도 현빈이는 정훈이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짬뽕을 후루룩 넘기는 현빈이에게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느냐고 물으니 "모르겠다"며 순진하게 웃어넘긴다. 무슨 얘기를 나눴건 사실 두 친구에겐 중요치 않다.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웃음이 흘러넘친다.
야간퍼레이드를 보고 오후 10시께 숙소인 케빈 호스텔에 도착했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숙소 내 레크레이션이 준비돼 있었다.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끊일 줄 모른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 어색함에 침묵하던 아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가도 시간이 가는 게 못내 아쉬운 사이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