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교육감님 안녕하십니까.
보육대란이다 국정교과서다 안녕하지 못한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안녕의 인사를 전하기도 송구스럽지만 교육감님께서는 안녕하신지요. 저는 안녕하게 이 세월호 시대를 살지 못하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이렇게 일면식 없는 교사가 교육감님께 글월을 올리는 까닭은 최근 존치 문제가 갈등을 빚고 있는 단원고 교실 보존에 대한 간절한 호소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누구나 공감하듯이 세월호는 무능과 부패를 속에 품은 대한민국의 상징입니다. 그 세월호 속 단원고의 262명 희생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학생이 남아 있는 이 시간,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교실이 사라질지 모르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교실에 한 번이라도 가서 시대의 비극과 고통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살아남은 자들이 역사적 고통을 기억하고 별이 되어 떠난 학생과 선생님들을 추모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떠나간 아이들의 숨결과 깔깔거림과 수런거림이 그대로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세월호 참사 교훈을 되새길 미래의 교육 공간입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아 점점 잊혀가는 세월호처럼 단원고 교실마저도 사라진다면 세월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더욱 빨리 잊힐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빨리 잊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잊지만 의미 있는 사건에 대한 기억은 역사 속에 남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스럽든, 수치스럽든 의미 있는 역사 유물과 기록을 후손에게 남기듯이 말입니다.
기억은 상처 받은 인간이 자신을 인간이게 하는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영화 <나쁜 나라> 속에 나오는 한 단원고 생존 학생의 울부짖음처럼 '한 존재가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지면 바로 이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도 잘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교육감님의 중재가 절실하고 의지가 중요합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바람도 있지만 재학생 가족의 요구도 있으니 학교와 당사자들 간에 해결하라는 말은 교육청과 교육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이해 관계가 첨예한 당사자들은 힘도 약하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스스로 갈등을 풀기 어렵고 그러기에 교육감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서셔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교육감님께서 2006년 제33대 통일부 장관 재임 때에는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셨듯이 이번 어려운 자리에서도 당사자들이 만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난한 토론과 협상의 자리를 마련해주십시오. 단원고 학생들은 가족들만의 아이, 부모님들만의 아이들이 아니라 이미 온 국민의 아이, 이 나라 슬픈 역사 속의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원고와 세월호를 잊는 순간 우리가 각성해야할 대한민국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쁜 나라는 더 나쁜 나라가 됩니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시면 무책임한 교육감은 더욱 나쁜 교육감이 되십니다.
저는 세월호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 이재정 교육감님께서 나쁜 나라의 나쁜 교육감의 상징이 되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교실 존치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주시어 국민 말고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나쁜 나라>의 현실 속에서 좋은 교육감이, 능력 있는 교육감이 되시기를 눈물로 호소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고통의 기억을 잊은 인간에게 인간다움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548일의 날에
유동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