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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수 공연예술팀장 ①에서 이어집니다.

동굴 공연장에서 문화예술 공연만 한 것은 아니다. 변 팀장은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영화와 3D영화를 상영했다. 동굴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폐광에서 상영된 어린이 만화영화 <뽀로로의 대탐험>. 영화가 상영되던 이 곳이 '동굴 예술의 전당'으로 멋있게 변신했다.
폐광에서 상영된 어린이 만화영화 <뽀로로의 대탐험>. 영화가 상영되던 이 곳이 '동굴 예술의 전당'으로 멋있게 변신했다. ⓒ 윤한영

 폐광은 어른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공간이었다. 동굴에서 최초로 3D 영화가 상영되던 날,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다.
폐광은 어른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공간이었다. 동굴에서 최초로 3D 영화가 상영되던 날,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다. ⓒ 윤한영

그는 2012년 10월 13일을 확실하게 기억한다. 그 날, 동굴에서 세계 최초로 뽀로로 영화를 상영했기 때문이다. 영화 관람은 당연히 무료였다. 아무나 들여보낼 수 없어서 사전에 신청을 받아서 30가족을 선정했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뽀로로의 대탐험>. 동굴 안은 어린이들이 지르는 즐거운 비명으로 가득 차 들썩였다.

이후 이곳에서 3D 영화상영도 이어졌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 상영은 폐광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공간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변 팀장이 그 바탕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변 팀장은 2012년 9월 21일, 광명동굴 개발을 전담하는 테마개발과가 신설될 때까지 광명동굴 공연을 담당했다. 현재 동굴 내·외부의 공연은 정소정 동굴문화팀장이 담당한다.

테마개발과가 신설됐다고 변 팀장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정 팀장은 문화 관련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초짜'라 변 팀장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변 팀장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정 팀장의 '구원 투수'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신영희, 심수봉, 박남정, 유미리, 존박, 박현빈, 심신, 왁스, 김범룡, 양하영, 걸스데이, 주현미, 팝핀현준 등등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동굴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광명동굴에서 열린 음악회
광명동굴에서 열린 음악회 ⓒ 윤한영

그는 2006년 10월부터 지금까지 광명시청에서 예술공연 업무를 담당해왔다. 그가 기획한 공연만 해도 몇 백 건이 넘어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행정직 공무원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하는 건 광명시청에서 그가 유일하다. 다른 자치단체에서 이런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외부에서 영입한 문화예술 전문가로 착각하기도 한다.

양기대 시장 역시 변 팀장은 문화예술공연 분야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다. 그건 광명시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전문가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친다. 예술 공연 업무를 좋아해 오래 하다 보니 많이 알게 되었을 뿐이란다.

"저는 절대로 제가 전문가라는 생각을 안 해요. 공연을 하면서 섭외 요청이 들어오고, 프로그램이나 콘셉트를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자문해달라고 하면 제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알려주는 것뿐이에요. 다들 그걸 착각해서 전문가라고 하더라구요."

행정직 공무원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 10년 "전문가라 착각"

 변성수 예술공연팀장
변성수 예술공연팀장 ⓒ 윤한영

동굴 공연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공연 예산 확보가 어려웠다. 폐광 개발 반대로 돌아선 광명시의회 때문이다. 시의원들은 동굴에서 공연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관광객들이 오게 만들려면 좋은 공연을 많이 해야 하고 그러려면 아낌없는 투자가 필요한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였다.

시의원들은 의회가 열리면 예산 문제로 변 팀장을 추궁하곤 했단다.

"변성수 팀장, 동굴에서 자꾸 공연을 하는데 우리가 거기서 공연을 하라고 예산을 줬습니까?"

그는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시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테마개발과가 신설돼 그가 하던 동굴 공연 업무가 정소정 동굴문화팀장에게 넘어간 뒤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가 문화예술 공연 예산 일부를 예술의 전당 공연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동굴 예술의 전당도 우리 광명시 문화예술 인프라인데 문화예술 공연을 총괄하는 팀장이 거기만 뺄 수 없지 않느냐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어요. 동굴 예술의 전당을 만든 건 시민들을 위한 건데 거기에 맞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맞잖아요. 시장님이 거기에서 공연을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진짜로 하고 싶었거든요."

그가 광명시 철산2동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90년 11월 21일이다. 어렸을 때 무척이나 가난했던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그가 공무원이 된 건 돈을 벌고 싶어서였단다. 공무원이라면 '박봉'의 대명사였던 시절에 어린 그의 눈에 비친 공무원들은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대접도 잘 받는 사람이었다. 공무원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일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변성수 공연예술팀장
변성수 공연예술팀장 ⓒ 윤한영

지금은 광명시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 공연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는 청소년 분야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 업무를 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문화청소년과에 지원했는데 자리가 나지 않아 예술 공연 업무를 맡게 된 게 시작이었다.

그는 그 분야의 문외한이었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문용어도 낯설었다. 하지만 기왕에 하는 것,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때까지 오페라 공연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 뮤지컬도 마찬가지였죠. 팝페라가 뭔지, 갈라가 뭔지도 몰랐어요. 하나씩 둘씩 차근차근 배워나갔죠. 공연도 무지 많이 봤어요.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꾸 보니 조금씩 보이면서 이해하게 되더라구요."

처음에는 업무를 따라가는데 급급했지만, 3년쯤 지나니 여유가 생기더란다. 그러면서 달라지는 자신이 보였다. 그리고 예술문화공연의 의미도 되새기게 되었다. 진정한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10년 가까이 같은 일을 하니 그도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

"저도 사람인데 지겨울 때가 있죠. 가끔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싫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도 일은 해야 되잖아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무대에 올리고 나면 뿌듯해지면서 마음이 확 풀리는 거예요. 보람이 앞서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거죠. 만약에 이런 걸 느끼지 못했다면 진즉에 다른 부서로 갔을지도 몰라요."

그는 광명시가 문화예술 인프라를 잘 갖추고 좋은 문화 콘텐츠로 채운다면 어디다 내놔도 손색이 없는 문화경쟁력을 갖춘 도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광명동굴과 연계해서 보다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 난타를 공연하는 전문공연장이 있잖아요. 거기에 중국관광객들이 많이 오잖아요. 문화가, 공연이 관광 상품이 된 거잖아요. 광명동굴 예술의 전당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고, 새로 공연장을 만든다면 그것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광명시는 지리적인 조건이 아주 좋잖아요. 인천 국제국항에서 30분이면 오잖아요."

중국관광객들이 서울 관광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들러서 광명동굴을 둘러보고, 공연 전용장에서 공연을 보고, 광명전통시장에서 장을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광명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변성수#광명동굴#동굴 예술의 전당#양기대#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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