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개의 국민투표소 '이어달리기'>박근혜 정부 노동개혁, 국민의 의사를 묻는다. '을'들의 국민투표소 "우리들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다." 투표소 선물하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18대 대통령선거 전국투표소 수 1만3542개소). 사연을 글로 적어 보내주시고(필수는 아닙니다), 선물 받으실 분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선물을 받으신 분이 다시 주변 지인들께 선물해 주실 수 있도록 소개 부탁드립니다. - 국민투표 실행본부(www.votechange.kr)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열린 경찰의 날 7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경찰 통수권자이므로 사실상 명령이었다.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세력에게 엄정한 법 집행을 해주기 바란다."슬퍼졌다. 간곡하게 묻고 싶어졌다. 헌법 정신을 알고서 하는 말인가. 법 집행이 어디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지 정녕 알고 있단 말인가. 헌법 정신을 혹시 당신의 정신머리라 착각하고 있지는 않나. '짐이 곧 법'이라는 정신머리가 어찌 국민 주권을 명시한 공화국 헌법과 맞닿을 수 있는가.
나는 전태일의 심정으로 항의하고 싶어졌다. 법전이 있다면 끌어안고 "헌법을 준수하라!"고 호소하고 싶어졌다. 괴이한 장면이다. 당신도 나도 헌법 정신이 구현되는 나라에 살고 싶다 말하다니.
당신이 '얼빠진 국정교과서'로 포장하려는 아버지 박정희는 헌법 정신을 짓밟은 독재자였다. 우리 헌법은 독립운동과 4.19 혁명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하는데, 독립운동가 때려잡는 일본군 장교였던 자, 4월 혁명 짓밟고 쿠데타를 일으킨 자가 누구였던가. 군림의 시절 노동자의 삶은 벼랑 끝이었다. 오죽하면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법전을 끌어안고 몸을 불살랐을까.
아버지를 꼭 닮았다. 욕인데 칭찬으로 듣겠지.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당신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나락으로 내몰린다. 법을 어기는 자본가는 법 집행으로부터 자유로운데, 법을 지키라며 항의하는 노동자는 법 집행의 몰매에 신음한다. 쉬운 해고가 '노동개혁'인가. 쉬운 해고로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있단 말인가.
'헬조선의 재앙'을 '헬스 조선의 개혁'이라 말하는 자들이야말로 헌법 부정 세력이다. <을들의 국민투표>는 그 언어도단과 갑질의 실체를 묻고자 제안되었다. 그래 봐야 소용없을 거라 말할 텐가. 타인이 쉽게 해고되는 사회에선 나도 쉽게 해고된다. 아버지가 쉽게 잘리는 사회에서 아들, 딸의 노동이 건강할 리 없다. 그래서 투표했다. 헌법 부정 세력에 참으로 엄정한 '주권 집행'이 절실하지 않은가. <씨네21 통권 1027호, '아버지를 닮았다, 욕인데 칭찬으로 듣겠지'>
편지가 되어버린 시, 당신에게 띄웁니다
당신에게 띄웁니다.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밥벌이인 영화주간지에 원고랍시고 겨우 마감했더랬죠. 그날 밤, 고상함을 상실한 어느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술을 한 잔 걸치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눈치 없는 시인이었습니다. 자수했지요.
"형이 쓰라고 해서, 마지못해 쓰기는 했는데, 쓰라는 대로 쓰지는 못했다. 마음에 들어도 할 수 없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할 수 없다. 배를 쨀 것이면 배를 내밀겠는데, 서로 떨어져 있으니 말로만 배를 내밀겠다. 자, 째시오."그는 미안하다더군요. 배를 째지는 않겠다더군요. "오늘 목요일인데, 나는 월요일부터 집을 나와 <을들의 국민투표>에 필요한 봉투를 부치고 상자를 만들고, '미안한 전화들'을 돌리느라 네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통화했습니다. 그는 통화하느라 일을 하지 못했고, 나는 통화하느라 술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말이 길어지자 나는 밖으로 나왔고, 그도 밖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밤하늘엔 별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시인은 제안했습니다. '내가 지금은 시를 쓸 겨를이 없으니, 네가 시를 써다오.' 내겐 그렇게 들렸죠. 막무가내더군요. 그리하여 시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란, 지금을 부수는 말입니다. 지나간 미래를 반추하고, 오지 않은 과거를 예견하는 말입니다. 얼토당토않은 기준을 세웠다 부수는 일입니다.
윗글에서 소개한 '을들의 국민투표'는 사회운동이라기보다는 어설픈 한 편의 시입니다. 웃기는 일이죠. 형용모순입니다. 가능한 일인가요? 그래서 뭐가 달라진답니까? 그래 봐야 저들은 꿈쩍도 않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나는 전화를 끊고 "혁명하고 자빠졌네" 대신, "시 쓰고 자빠졌네"라고 중얼거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시'란 얼마나 근사한 것입니까. 심지어 시인이 내게 시를 써달라 읍소하다니.
나는 술에 취해 시를 쓰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깨고 보니 '가나다라마바사아'라고 쓰여 있더군요. 깨고 보니, 시를 쓰라는 얘기가 아니라 편지를 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씁니다. 이것은 편지가 아니라, 편지가 되어버린 시입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라는 점에서, 일방적이 추궁이라는 면에서, 왜 당신인지 말하지만 왜 당신이어야만 하는지를 말하지는 않는다는 까닭에 억지라면 억지요, 시라면 시가 되겠죠. 짧다는 점에서도 이 편지는 시에 대한 편견에 부합합니다. 당신에게 띄웁니다.
'쉬운 해고'를 '노동 개혁'이라 말하는 이들류가헌 갤러리 박미경 관장님께이것은 '시'이므로 당신을 왜 좋아하는지 구구절절 말하지는 않으렵니다. 당신은 '사진'의 의미와 가치를 아꼈던가 봐요. 때문에 '사진하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사진쟁이들이 주목하는, 말로는 할 수 없어 사진으로 담아야 했던 대상과 장면 또한 눈여겨보았습니다. 내면의 속삭임을 귀담아들었고, 타인의 삶과 갈등에 관한 발언으로써의 사진 또한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초고압 송전탑 강행으로 신음하는 강정마을과 밀양의 '사진적 목격'이 혹여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더랬지요. 한겨울 얼음 바닥에 온몸을 내던졌던 해고노동자들의 오체투지 현장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호소하는 광화문 광장에 찾아와 미안해하던 마음을 기억합니다. 따뜻한 차와 어묵탕을 건네어 주었더랬죠.사진으로 담아야 하는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을 수밖에 없는 참담함을 똑같이 귀하게 여긴 공간이 '갤러리 류가헌'이고, 그 사람이 박미경입니다. 하여 편지를 띄웁니다. 제 친구의 말대로라면 그 연대의 몸짓이야말로 시입니다.나는 류가헌 갤러리에 '쉬운 해고'를 '노동개혁'이라 지껄이는 이들의 거짓을, '헬조선의 재앙'을 '헬스조선의 건강한 미래'라 칭하는 자들의 언어도단을 사실 그대로 알리고,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판단하는 '을들의 국민투표함'을 선물하려 합니다.어쩌면 이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운동입니다. 허나 무모하지 않을 바에 무엇하러 시를 쓰며, 무엇하러 미래를 말할까요. 어떤 사진은 찍고 싶지 않은 내일이 있기에, 찍고 싶지 않은 오늘을 찍습니다. 저는 오늘과 같은 내일은 찍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보내는 투표함을 받아주십시오. 소박한 투표소를 설치해 주세요. 번거로운 일입니다. 허나 류가헌을 찾는 관객들이 삶과 노동의 주인이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분이시잖아요.이렇게 쓰고서 나는 고개를 숙인다. 이런 글이란, 이런 편지란, 이런 시란, 쓸모없는 짓일지 모른다. 다시 전태일을 생각해 볼까. 사람을 아끼고 노동의 귀함을 알았던 앳된 청년, 뜨거운 불 속에 '근로기준법'을 끌어안고 뛰어들었던 그 사람을 떠올리면 나는 한 마리 작은 벌레. 전태일은 스스로 불기둥이 되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쳤다.
나는 '전태일 정신'이야말로 우리의 헌법 정신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45년 전의 외침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는 건 우스울지 모른다. 아프게도 그 비웃음이 '갑'들의 입에서만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을'들의 입에서도 흘러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해 하며, 나는 다시금 고개를 숙인다. 그러므로 더 포기해야 할까. 더 양보해야 할까. 더 밀려나야 할까. 더 울어야 할까. 더 죽어야 할까.
['을'들의 #국민투표 영상뉴스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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