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해 비위를 저질렀다면 정상참작을 받아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또한, 만약 공무원이 함께 근무하던 동료에게 포도 한 상자를 선물했다면 이것도 뇌물이 될까?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이 지난 1일 발행한 청렴 편지 제9호가 이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청렴 편지는 비리 적발 사실 등의 내용을 담은 소식지다. 경기도 교육청은 공직사회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3월부터 매월 1일 전 직원에게 업무포털 내부메일로 청렴 편지를 발송하고 있다.
청렴 편지 제9호에 따르면 비록 상급자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해 저지른 비위라 할지라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또 함께 근무하던 동료라 할지라도 직무와 관련이 있다면 뇌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다음은 청렴 편지 내용이다.
원장 지시 따라 유령 직원에게 월급 지급한 행정실장 공립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 원장은 자격이 없는 자신의 친언니를 '야간돌봄 강사'로 채용하고는 급여 지급과 4대 보험 처리를 위해 실제 근무하지는 않지만, 자격이 있는 자신의 딸이 일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이른바 유령직원을 만든 것이다. 딸이 다른 곳에 취업한 뒤에는 또 다른 유령 직원을 만들어 자격 없는 친언니를 계속 고용했다. 이 유치원 행정실장은 이게 위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전부 다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원장 지시를 거부할 수 없어 매월 급여를 지급했다. 이 사실이 발각된 후 행정실장은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감봉 등의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원장은 파면당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포도 한 상자씩 선물한 교감 교감 B씨는 같이 근무했던 동료 두 명에게 포도를 1상자씩(한 상자에 2만 원) 선물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포도 상자를 곧바로 되돌려 주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 공무원 행동강령 상 인사·감사·상훈평가 등 직무관련자에게 금전, 부동산 또는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3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상적으로 제공되는 간소한 선물은 예외로 하고 있는데, 동료들은 어째서 2만 원밖에 하지 않는 포도를 재빠르게 돌려준 것일까? 그것은 두 상자를 합한 값이 4만 원으로, 허용 범위인 3만 원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B 교감은 인사 청탁 등의 고의성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별다른 처벌 없이 '구두주의'만 받았다. - 청렴 편지 제9호 중에서비리 사실 공표 '청렴 편지' 직원들 반응은?
청렴 편지 제9호에는 이 밖에도 학부모로부터 금품 300만 원을 받은 교장의 부조리한 행위를 신고한 제보자에게 보상금 600만 원을 지급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동안 청렴 편지를 수신한 직원들은 "좋은 정보를 받아서 유익했다"는 반응이다. 경기도 교육청 직원 A씨는 "아리송한 직무강령을 상세하게 알려주어서 유익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직원 B씨도 "경각심을 가지게 해준다"라고 덧붙였다.
청렴 편지를 담당하는 경기도교육청 김거성 감사관은 2일 오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편지를 보내면 직원들 3분의 1 정도가 읽은 것으로 확인된다.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을 알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답장이 온다"라고 반응을 전했다.
이어 김 감사관은 "교육청 입장에서는 치부를 보여 주는 것 같아 부담스럽긴 하지만, 문제를 덮는 것보다는 공개해서 고치는 게 더 중요하므로 앞으로도 계속 청렴 편지를 보내 부패와 비리를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