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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인 '수원 사람들의 독립운동'이 수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9월 11일 시작한 전시회가 11월 8일 마무리 된다. 깊어가는 가을에 광복 70주년을 재조명하고 수원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독립운동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원사람들을 통해 광복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봤으면 한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수원이 3.1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난 곳이며, 수원사람들은 일제의 탄압과 수탈에도 비밀결사조직과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식민지배체제에 철저하게 항거하였고, 일제말기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도 의열투쟁으로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는 의미 있는 전시인 것이다.

 수원박물관, '수원 사람들의 독립운동' 특별기획전
수원박물관, '수원 사람들의 독립운동' 특별기획전 ⓒ 한정규

1부 전시는 '일제의 조선침략과 수원의 국권회복 운동'이란 주제이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원은 한양과 삼남을 잇는 경기남부 최대의 도시로 경부선 철도 개설과 함께 빠르게 일제의 침투가 시작된 곳이다. 일제에 의해 지역경제가 잠식되자, 수원사람들은 의병에 가담하여 일제에 항전하였고, 김제구, 임면수, 이하영 등이 근대교육을 통해 애국계몽운동 및 국채보상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 국권회복에 나섰다.

2부 전시는 '수원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의 함성'이란 주제이다. 의병전쟁과 자발적인 국권회복운동에도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렇지만 식민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일제의 수탈과 탄압에 맞서 3.1운동을 통해 끈질기게 일제에 대해 항전했다. 수원은 3.1운동이 가장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일어난 곳이다. 방화수류정에서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수원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었던 김세환 등은 지속적으로 수원의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을 이끌었다.

 '수원 사람들의 독립운동' 특별기획전
'수원 사람들의 독립운동' 특별기획전 ⓒ 한정규

3부 전시는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선 수원사람들'이란 주제이다. 독립운동의 확산을 막기위해 일제의 탄압과 수탈은 더욱 악랄하게 계속되었고,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하였다. 그럼에도 수원사람들은 불굴의 전사처럼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수원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통학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구국민단', 수원고등농림학교와 조선인 학생들이 조직한 '조선개척사', '독서회' 등 학생들의 비밀결사, 박승극, 변기재, 공석정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하며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광복의 순간까지 저항하고 투쟁이 이어졌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하여 대륙침략을 본격화 하였다. 이어서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을 위해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해 '황국신민화' 정책을 통해 조선의 민족적 정체성을 말살하려 하였다.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한 통제와 수탈 속에서도 수원 사람들은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항전하였다.

'수원예술호연구락부'는 예술연구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도 하였다. 조선 민중의 반일 의식과 독립 의지의 표현으로 '수원극장 화장실 낙서', '수원읍 북수정 공중변소 낙서', '장안문 계단 낙서', '나석균 낙서사건' 등 '타도 왜놈의 비, 남차랑아 우리 지사를 잊지마라, 한 독립지사 모한지비, 타도 일본 타도 왜놈, 대한제국만세비'와 같은 반일낙서 사건이 이어졌다.

 1920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3.1운동 민족대표 48인의 사진
1920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3.1운동 민족대표 48인의 사진 ⓒ 한정규

최근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적 만행에 대해 반성은커녕 역사 왜곡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미화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100여 년 전 제국주의로 회귀하는 등 역사적으로 퇴보하는 것을 보면 대단히 우려스럽고 경계해야 한다. 용서와 화해는 과거 일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과로 시작되는 것이다.

1970년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브란트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희생된 유태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 유태인들에게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구한말 부패하고 타락하고 무능한 정치로 인해 일제의 참혹한 식민지배를 받았다. 일제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숭고하게 희생된 많은 독립투사들과 끝까지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삶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반성이 없는 용서는 절대 있을 수 없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원박물관#광복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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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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