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해리스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유명한 공립학교 교사이자 철학자였다. 1889년부터 1906년까지 미연방 교육국장으로 근무한 그는 현재와 같은 미국의 학교 시스템을 규격화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주역이었다. 나이가 같은 아이들을 한 학년으로 묶어 반으로 나눈 뒤 한 교실에 몰아넣고 가르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해리스는 "학생 100명 가운데 99명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걷고, 이미 굳어진 관행을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과학적인 교육은 개인을 로봇처럼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학교는 바깥 세계와 단절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해리스가 주창한 학교 교육은 대다수 학생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교육과정(curriculum)과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라는 '합법적인' 삼중 통제 장치가 관리 시스템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법정문서' 같은 국가교육 과정이 보이지 않는 '총사령관'이다.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가 아이들과 교사의 정신을 겨냥한 '개인화기'다.
아이들은 살아있는 '삶'이 거세된 교과서로 '가짜 책 읽기'를 한다. 교사용 지도서는 국가교육과정에 따른 수업 계획과 실행과 평가를 교사들에게 '풀세트'로 제공한다. 주체적인 분석과 비판이 사라진 교실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은, 근대 의무학교 교육 시스템의 철학적 근거를 놓은 독일 철학자 피히테가 강조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갔다.
'학생독립운동의 날' 86년 후 국정화 확정 고시라니
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에서 중학생(당시는 중·고등학교가 통합됨)들의 민족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조국을 위한 외침이 들불처럼 번진 그 날을 우리 역사는 '학생독립운동의 날', '학생의 날'로 부른다.
그로부터 86년이 흐른 2015년 11월 3일, "독재자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우리 정부가 세계사를 포함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정부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공안 검사' 출신의 황교안 국무총리는 정확히 오전 11시에 발표회장 카메라 앞에 섰다. 이례적으로 대형 티브이 모니터에 피피티(PPT) 슬라이드를 띄웠다. 국정화 추진의 배경과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기 위해 리허설까지 했다고 한다. 국정제는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한다. 이 발표를 명실상부한 대국민 '선전전'이라 말하면 지나칠까.
황 국무총리는 국정화 추진 이유로 기존 검정 교과서들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전체 학교의 99.9%가 편향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편향되지 않은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다. 균형 잡힌 교과서로 아이들 교육을 바로잡겠다고 한다.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올바름을 판단하는가. '무엇'과 저울질해서 유지하겠다는 것인가.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의 '어두운' 역사가 학생들에게 '자학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한다. 긍정적인 역사를 서술해 민족적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혹시 그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방송인 김제동씨가 적실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국정화"하겠다고.
'마음의 국정화'는 무섭다. 이는 김제동씨만의 괜한 엄살이 아니다. 교과서 국정화로 교실에서 자율성과 다양성이 사라지게 되면 아이들은 소극적인 '저항'의 몸짓을 냉소주의로 표출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나의 역사'를 강조하는 국정 교과서가 분석과 비판과 활발한 토론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생각 한 가닥이 의식 속에 자리 잡은 냉소주의적 아이들은 소수다. 대다수 아이는 국정 교과서의 획일적인 서술을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국정 교과서가 얘기하는 역사적 '사실'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학생은 '균형'과 '중립'과 '올바름'을 가장한 교묘한 진술에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정신 세뇌 기제다.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자극적인 선전 문구와 역동적인 선동전을 통해 7000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최첨단 세뇌 정책을 펼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이다.
'부끄러움' 망각한 나치 독일, 국가주의 교육 때문미국 언론인 밀턴 마이어는 1954년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에서 유대인 600만 명의 학살 뒤에 100만에 이르는 나치 당원의 '광기'와 나머지 6900만 명에 이르는 평범한 독일인의 암묵적 동의와 참여가 있었다고 보았다. 이들의 '환상적인 조합'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밀턴 마이어와 대담을 나눈 한 지식인(언어학자이자 공학자)은 당시 '나치 교육'이 독일 국민이 인간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을 합리화하도록 도와주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무지했을 때보다 교육을 받았을 때 그런 합리화가 더 쉽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랬다. 히틀러의 '정신'은 시나브로 평범한 사람들 마음으로 파고들어 국가사회주의가 세상의 모든 악을 감소시키거나 근절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도록 했다. 마이어는 당시 독일인들의 애국주의적 '위선'이 국가나 국가 문화의 행위였음을 분명히 했다. 이 때문에 개인은 최소한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느끼지 않았으며, 그런 이유로 처벌받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마이어가 정확히 지적한 대로 그들은 '집단적 부끄러움'을 망각했다.
나치 치하 '문학' 교과의 주요 지침 중 하나는 "오로지 강력한 것만을 교육적으로 가치 있다고 간주함"이었다. 수업 주제는 "운명과 분투의 공동체로서의 국가. 생존공간을 위한 분투. 교련(육군·해군·공군). 영웅주의, 전쟁 시가(詩歌). 전설적 인물이자 도덕적 힘으로서의 세계대전 참전 용사. 국가사회주의적인 분투의 공동체. 지휘권과 동지의식"(277쪽) 들이었다.
역사와 생물학과 경제학의 프로그램은 문학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교과서가 아예 새로 써진 경우가 많았다. 나치는 국가의 입김이 미치기 힘들 것 같은 수학에도 손길을 뻗쳤다. 거의 모든 수학 문제가 탄도학이나 군사 배치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유대인 한 명이 500마르크를 12% 이자율로 빌려줄 경우"처럼 이자율 문제를 내 반유대인 정서를 조장했다. 튜턴, 로마, 슬라브 민족에 관한 인구 그래프 작성 문제를 내면서 "1960에 이들 민족의 상대적 크기는 얼마가 되겠는가? 거기서 튜턴 민족에게 어떤 위험이 감지되는가?" 따위의 문장을 통해 민족 감정을 자극했다.
2013년 우리 사회에 '역사 전쟁'의 서막을 연 교학사판 <고교 한국사>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스탈린, 김일성, 박헌영이 공유하는 인식이 (기존-기자 주) 역사 교과서 서술의 기본 프레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집필진 중 한 명이었던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가 일제 침략과 독립운동의 양분법으로 돼 있다고 비판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선의 선봉에 서 있다. 그들의 주장은 명확해 보인다. 일제 강점기를 침략과 침탈의 시기가 아니라 근대화와 자본주의화가 진행된 '발전기'로 보려는 것이다. 이명희 교수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일제 치하의 신사 참배와 같은 친일 행적은 선택의 하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의 싸움은 말 그대로의 '역사 전쟁'이다.
'다양성'과 '전체주의' 사이의 싸움
역사는 지나간 과거사가 아니다. 소설 <동물 농장>과 <1984>로 유명한 소설가 조지 오웰은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장기 집권을 위한 프로세스의 하나로 보는 일부 논리가 터 잡고 있는 곳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역사 쿠데타'로 보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맞다. 나는 이에 덧붙여 좀 더 본질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싶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김제동씨가 말한 "마음의 국정화", 곧 '정신 쿠데타'를 위한 프로젝트다. 그것은 '올바른 역사' 대 '그른 역사'의 싸움이 아니다. 애오라지 '민주주의의 다양성 교육' 대 '전체주의의 획일성 교육' 사이의 싸움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에서 소외되고 기록에서 제외된 역사의 패배자들을 '당분간'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나치 치하의 국정 교과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국가가 선별한 밝고 화려한 역사만 보게 될 것이다. 부당한 왜곡이 뒤따를 것이다.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의 '진압 대상'이 되고, 백범은 '테러리스트'로 격하될 것이다. 국가가 기획한 획일주의의 망령이 교실을 지배하면서 아이들의 정신은 시나브로 망가질 것이다. 마침내 역사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괴물'들이 나올 것이다.
철학자 고병권은 민주주의가 동의를 조직하는 일이 아니라 이견을 제출하고 차이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를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말을 하지 못하는 자로 간주하여 온 사람들이 '불합의'를 주장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했다. 국정 교과서는 그런 '불합의'와 '이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국체와 정체를 규정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제2항에서는 국가 권력의 원천을 밝혀 놓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그렇다. '민주주의(democracy)'는 '사람들(demos)'을 위한 '권력(kratia)'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지도자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가장 훌륭한 위정자는 백성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지만 최악의 위정자는 백성과 다툰다"고 말했다. 주권자이자 대한민국 권력의 뿌리인 국민과 다투는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자인가, 자신만의 '왕국'을 지키려는 독재자인가.
덧붙이는 글 | 정은균 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