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광장, 태평양, 화우. 한 번쯤 언론을 통해 들어보았을 법한 국내 최고 로펌으로 일컬어지는 법률 사무소 이름이다. 대형 로펌들은 삼성, 현대, 기아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외국계 기업의 M&A(기업 인수합병), 구조조정, 인사 노무를 비롯해 지적재산권, 특허권 등 법적 분쟁을 해결한다.
특히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인수 노무 분야의 분쟁을 해결하는 일은 거꾸로 노동자의 권리를 크게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일터>는 지난 10월 19일 앞서 소개했던 로펌들과 달리 변호사 1명이 운영하는 작은 법률 사무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소장으로 일하는 김현정씨를 만났다.
특별한 철학으로 운영하는 법률 사무소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ㄷ법률사무소에서 소장으로 근무하는 현정입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법조인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벌써 6년이 지났네요."- 다른 법률 사무소와 다르게 직함이 소장인 이유가 있나요?"저희는 일반 사건이 아니라 노동인권전문 사건들, 그중에서도 노동조합과 관련된 부당해고, 해고 무효 확인 소송, 체불임금,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의 사건을 주로 맡아요. 그렇다보니 일하는 노동자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이 직함을 달고 있어요."
- 처음부터 특별한 사무소인 줄 알고 오셨나요?"아니요. 처음엔 이럴 줄 몰랐어요. 면접 볼 때 여기는 일반적인 사건은 맡지 않고 노동자들 사건을 주로 맡는 사무실이라고는 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저는 어디를 가나 다 똑같은 사건만 맡을 수는 없으니까 특색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특별한 느낌이 있었어요. 채용 공고가 나서 전화를 했었는데 대개 다른 사무실은 직원이 전화를 받는데 여기는 변호사님이 직접 전화를 받으시더라고요. 그리고 마치 저를 모시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irony)하게도 필요 이상으로 너무 친절하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면접을 봤는데 다행히 마음을 놓았어요."
- 어떤 점 때문에 의심을 풀게 되었을까요?"변호사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권위적일 것 같은데 변호사님이 너무 수수하시고 마인드가 보통 분들과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때 이런 분과 함께 일한다면, 일하면서 배울 게 많겠구나 생각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저를 대하실 때 나는 변호사고 너는 직원이다 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본인을 항상 낮추세요.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하시고요. 그런 부분이 존경스럽고 그래서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은 현정씨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처음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오~ 좋은 데서 일한다' 이런 반응이었어요. 가족들은 지금도 많이 자랑스러워하세요. 저희 일 특성상 집회에 참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친구들도 처음에는 '빨갱이?' 이런 얘기도 하더니 지금은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높게 평가해주는 것 같아요."
- 6년 정도 일했으면 관성에 빠지거나 일이 지겨울 법도 할 것 같은데 슬럼프 같은 건 없었나요?"지난해에 회의감이 크게 왔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번 회의감이 몰려오고 나니까 안 좋은 이야기를 듣거나 접할 때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령 저희 사무실에 오시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저희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힘들 때가 있어요.
보통 '변호사를 산다'고 하잖아요. 너는 내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그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하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그런 태도를 보일 때 정말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일부 그런 분들 있는데, 정말 그럴 때는 회의감도 느끼고 화를 참을 수가 없어요.
조합원들이 저런 분들을 믿고 따를 텐데, 철저하게 속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그러면 변호사님은 또 그런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제가 노동조합에 대해 왜곡해서 생각할까 봐 안타깝게 생각하고요. 몇 사람 때문에 노동조합 전체를 왜곡해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게 저로서는 허탈해요. 의욕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저런 분들을 위해 제가 열심히 일해서 재판에서 이긴들 뭐가 달라질까 하는 고민이 들어요."
변호사 사무실의 하루- 변호사가 아닌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일과가 대략 어떻게 되나요?"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해요. 퇴근 시간 잘 지키는 게 사무실 방침인데 일의 특성상 갑자기 사건을 맡게 되거나, 급하게 뭔가를 제출해야 할 때는 퇴근이 늦어져요. 재판은 여러 가지 기한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안 그러면 재판 결과에 불이익이 있거든요.
출근해서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진행 중인 사건을 검색하는 거예요. 상대측에서 어떤 자료가 제출되었는지, 판사님이 명령을 내린 게 있나 그런 걸 파악해야 해요. 재판 기일이 잡혔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재판에 제출할 서면을 검토하고, 제출할 서류들도 챙기고요. 재판 전에 준비해야 할 자료들을 법원이나 검찰청에 가 받아오기도 하고요.
또 신문기사도 많이 봐요. 사건 준비하면서 많은 사업장을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보게 되더라고요. 여기는 현재 상황이 어떤지 그런 것들. 일을 하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 기사들 접하다 보면 대형 로펌들 얘기가 많이 나올 텐데 그럴 땐 어떤 생각이 들어요?"기사에서만 접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맡고 있는 사건이 거의 대부분 김앤장, 태평양, 화우 이런 곳과 싸우는 거예요. 대기업 사건은 더욱 그래요. 그렇다 보니 소위 대형 로펌에 대해서는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적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솔직히 없는 것 같아요."
- 재판 관련 업무 외에도 사무실 살림 꾸리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아무래도 사무실 특성이 있다 보니까 입사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풍요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월급도 넉넉하지는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생활이 안 될 정도는 아니고, 또 돈은 쓰기 나름이니까요. 돈만 따진다면 지금까지 이 일은 못 했을 것 같아요."
- 함께 일하는 사무실 식구와 관계는 괜찮으세요?"저희 사무실은 항상 억울하거나 부당함을 많이 겪은 분들의 사건을 맡기 때문에, 이겨야 하는 일, 그렇지만 이겨봐야 본전인 일을 하죠. 그래서 마음이 아주 힘들어요. 얼마 전까지 웃으면서 같이 상담하고 재판 준비했던 분들이 분신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요.
변호사님이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업무 시간 외에는 연락을 안 하시는데 전화가 오면 겁부터 나더라고요. 또 누가 돌아가셨나. 그래서 초반에 일 시작 했을 때는 전화벨이 울리면 덜컥 겁부터 나고 공황장애 같은 게 올 정도로 힘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서로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 지금껏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내담자가 있나요?"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사건인데, 처음에는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일하는 것도 기계적으로 일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쌍용차 사태 때 관련 영상이나 책을 접하고 한상균 당시 쌍용차 노동조합 위원장 사건(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계획에 반대하며 77일 동안 점거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 편집자 말)을 맡으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현장에 있던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크게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아, 내가 몰랐던 것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사건마다 개인적으로 감정 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저희 사무실의 특성이 저에게도 흡수되는 그런 느낌이었죠."
- 일하면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지금 진행하는 소송들이 좋은 성과를 얻어서 판례로 남기면 뿌듯할 거 같아요. 기존에 저희에게 불리했던 판례가 있다면 뒤집었으면 좋겠고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법이 자리 잡는 데 일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무언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엇이든. 제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중 하나라도 작게나마 변화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일하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얻은 것도 많아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느끼고,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고요. 앞으로는 다 같이 웃으면서 살았으면 해요."
덧붙이는 글 | 재현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쓴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