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깜짝 발언으로 새누리당 내부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물갈이' 공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진박(진짜 친박)'과 '가박(가짜 친박)'이라는 신조어로 박 대통령을 향한 충성도를 감별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프다는 조어)'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진박'은 확고한 사명감으로 임기 말 정부를 옹위하며 마지막까지 청와대의 의중을 잘 헤아릴 세력을 말한다. 최근 박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곧 '진박'인 셈이다.
반면, '가박'은 박 대통령의 공천으로 의원이 됐지만, 이후 정부의 국정운영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세력을 뜻한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시간이 흐르며 박 대통령과 멀어진 친박계 의원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진박'과 '가박'의 구분은 최근 여당 내부를 뒤흔들고 있는 물갈이론과 닿아있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지난 8일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 상가에서 TK(대구·경북) 지역의 물갈이 필요성을 공론화했고, 박 대통령은 이틀 뒤 "진실한 사람들만이 (총선에서)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당부했다.
특히 친박계 현직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이 내년 4월 총선에 뛰어들 채비를 본격 갖추면서, '진실한 사람' 위주로 대대적 물갈이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인 2012년 19대 총선 때도 현역 의원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물갈이를 단행한 바 있다. 결국 '박근혜표 전략공천'에서 선택받으려면 '진박' 안에 포함돼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기운 느끼면 '진박', 유승민 부친 빈소 들르면 '가박'?이런 가운데 카카오톡 등 SNS에서는 진박-가박 구별 기준이 담긴 출처 불명의 글이 나돌기도 했다. 이른바 '진박과 가박 자가진단법'으로, 20개의 항목 중 5개 이상이면 가박으로 분류된다. 항목은 "5.16은 쿠데타다" 등 박 대통령의 의중과 거리가 먼 내용 위주로 구성됐다.
이에 따르면, "사석에서 무대(김 대표)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지난 원내대표 선거에서 유승민을 밀었다"는 항목에 해당하면 진단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 유 의원의 아버지 빈소에 조화를 보내거나 조문 갔을 경우에는 2개의 항목에 해당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판단한다. 김 대표는 공천 방식을 두고 청와대와 갈등을 겪은 바 있고, 유 의원은 지난 6월 국회법 파동 이후로 사실상 '가박'이 됐다. 박 대통령은 유 의원의 부친상에 조화를 보내지 않았다.
이외에도 "나는 진실된 사람이다", "우주의 기운을 가끔 느낀다", "특정인을 만나면 가끔 혼이 빠질 때가 있다" 등 박 대통령의 발언을 풍자한 항목들이 눈에 띈다.
비박계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진박-가박 등 각종 친박 파생어가 속출하는 상황을 두고 "얼굴이 화끈거린다"라는 평을 내놨다.
김 의원은 12일 SBS 라디오 <한수진의 전망대>에 출연해 "진박-가박이 나온다는 자체가 너무나 부끄럽다, 지금 시대에 국민들께서 뭐라고 생각하실까"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또한 "결국 내년 선거는 국민에게 선택받고 유권자한테 심판 받는 것"이라며 "그것을 잊는다면 가짜 정치인"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쪽은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발언과 관련해 "경제와 민생을 향한 대통령의 뜻이다, 충정을 이해해 달라"라며 총선 개입설에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