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참으로 어마 무시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어요. 나는 역사를 모르진 않으니 혼이 없는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바른 역사'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베를린 역사투어'에 참여해보기로 했어요. 다른 나라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비교해보면 '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당신도 잘 아실 거예요. 베를린이란 도시는 하나의 '역사책'같아요.
그런데 거리 곳곳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지가 모두 '전쟁, 독재자, 억압, 폭력, 죽음'에 대한 것들뿐인 걸 보면 독일 사람들은 참으로 '부정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한 국회의원은 우리에게 '긍정적 역사관'을 가지라고 했는데 말이죠.
14일, '베를린 역사투어'를 하기 위해 약속된 장소로 나갔어요. '11.14'라고 쓰인 작은 관광가이드 깃발이 보였어요. 손바닥만한 깃발 아래 역사투어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미술가, 영화감독, 무대 디자이너, 사진가, 연극배우, 연극 연출가, 미디어 아티스트, 공공미술가 등 대부분이 예술가들이었어요. 물론 이번 투어 소식을 전해 들은 베를린 교민들도 이 자리를 함께 했구요.
희한하죠?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역사투어라니... 흔히 예술가들은 괴짜라는데 이번 투어는 뭔가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만 같았어요.
코스 1. 독재자의 학살 : 유럽 유대인들의 죽음 기념비 거리에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가득했어요. 인파를 헤치고 첫 번째 역사투어 코스인 '베를린 유대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도착했어요.
베를린의 주요 관광지이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로 꼽히는 이곳은 바로 과거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를 지도자로 뽑는 최악의 실수를 하는 바람에 수천,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사건을 기록한 '기억의 벌판'이라고 하더군요.
본격 투어를 하기에 앞서 가이드 분께서 우리에게 책을 나눠줬어요.
그런데 받은 책을 보니 책 가운데가 뻥 뚫려 있더군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도대체 이런 책으로 뭘 보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일단 우리는 이 책을 들고 첫 번째 투어코스인 베를린 유대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그것은 마치 '묘지들의 숲'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책을 들고 높이 서 있는 수천 개의 콘크리트 사이를 걸으면 걸을수록 한국의 역사가 떠오르는 거예요. 역사 속에서 희생 당한 한국의 망자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1948년 4.3 제주 민간인 학살, 1950년 노근리 민간인 학살, 1980년 5.18 광주시민학살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많이 부끄러웠어요. 독일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망자들에게 미안했어요. 그나저나 질문이 하나 있어요. 이번 국정교과서에 이런 역사들도 기록되는 건가요?
코스 2. 독일의 6월 : 노동자들의 저항 다음 코스는 베를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 '브란덴부르크 토어'였어요. 파리의 개선문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죠. 관광객들은 이 건물의 웅장함과 건축적 미학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사실 이 공간은 독일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다고 해요.
바로 1953년 6월 17일, 독일 동독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시간 연장과 임금 축소 등 무분별한 노동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파업 및 노동시위를 벌였던 곳이기 때문이죠.
그때 수많은 동독 노동자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동독 정부가 탱크까지 동원하여 수백 명의 목숨을 무참히 짓밟은 곳이 바로 이 곳 '브란덴부르크 토어' 앞에 놓여있는 길이에요. 벌써 40여 년 전 일이네요. 이런 저항들 덕분에 독일은 현재 전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가 되었어요.
이 거리 위에서 싸웠던 노동자들의 희생 이후 독일 정부는 그날의 노동자들의 저항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이 길 이름을 '6월 17일 거리'로 명명해서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어요. 한참 투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 한 통이 왔어요.
"Wow!(와우)" 이런 메시지와 함께 하나의 링크 주소를 독일 친구가 보내줬더군요. 링크를 열어보니, 한국 민중총궐기 시위대들을 한국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는 외신기사였어요. 독일 친구가 이 기사를 보자마자 놀라서 저에게 연락한 것이었어요. 베를린에 있는 타이완 국적의 친구도 타이완 신문에 보도된 비슷한 기사를 보내줬더군요.
"너네 나라 정부 대체 왜 이래?" 이렇게 묻는 독일 친구에서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요?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외신기사 속 민중 총궐기 사진들을 보니 어떤 노동자는 물대포를 온몸으로 맞고 있었고, 어떤 농민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어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어요.
좀더 나은 세상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엄마아빠 들이 보였거든요. 순간 베를린에서 역사투어를 하고 있는 내가 미웠어요. 한국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었어요.
그때, 함께 투어를 하던 한 미술작가분이 갑자기 땅에 종이를 펼치고 편지를 쓰기 시작하셨어요.
그녀에게 불쌍해서 대통령이 된 그녀가 온 국민을 불쌍하게 만든다. 삼년 내내 온 나라가 불쌍하다. 우리들의 불쌍함을 역사에 꼭 기록해야 한다. 당신만 아버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아버지가 있다. 우리 아버지가 기억하는 당신 아버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족보와 역사는 그렇게 다른 것이다. 코스 3. 독재자의 역사테러 : 히틀러가 태워버린 책세 번째 코스는 '바벨광장'이라는 곳인데 첫눈에 봐서는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는 광장이었어요. 그런데 허허벌판인 광장 위에 유독 한 공간에만 사람들이 둥글게 몰려들어 땅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우리 투어 팀도 그곳으로 가보니 땅 아래 웬 하얀 책장들만 있는 공간이 있더라고요. 책장만 있고 책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알고 보니 이곳은 과거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의 획일화와 세뇌를 위해 독일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책을 불태웠던 곳이래요. 책을 불 태워서 국민 영혼을 정화 시킨다니... 지금 들으면 참 터무니없는 이 말을 당시 독일 국민들은 철석같이 믿고 그의 지침을 따랐다고 해요.
당시 집안의 모든 책들을 거리로 압수해서 불을 태웠기 때문에 서재에 비어 있는 책장만 있었다고 해서 이 기념비를 만든 것이지요. 기념비 위에 내용이 도려내진 책을 올려놔 보았어요. 비어 있는 책장과 역사가 뜯겨나간 책. 뭔가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어요.
그곳에서 다시 미술가는 붓을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국민들의 혼에 대해서 말하는 당신은 교황이 아니다. 그냥 딸이다. 유신 귀신 접신 광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책 좀 읽어라. 그녀의 서재가 궁금하다. 코스 4. 철학의 계단 : 역사를 기억하다마지막 코스는 '홈볼트 대학'이었어요. 독일에 내로라하는 지성들을 배출해낸 역사적인 대학이기도 해요. 대학 안으로 들어가자 정면에 'Vorsicht Stufe(계단조심)'이라고 쓰인 계단이 보였어요. 이것은 안전을 위한 단순한 안내판이 아니라 200년의 훔볼트 대학 역사와 독일의 '역사적인 관용'과 '내적인 화해'를 기리기 위한 계단이자 하나의 기념비인 곳이었어요.
함께 투어를 했던 예술가분들은 갖고 있는 책들을 계단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어요. 계단의 끝에는 하나의 문장이 벽에 적혀 있었어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바로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테제 11번'의 한 문구였어요. 가만히 그의 문장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더니 함께 투어를 했던 배우 한 분이 계단 위를 오르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가운데가 뻥뚫린 책을 손에 들며 말했어요.
"누군가 내 기억들을 빼앗으려 한다 우리들의 말과 글을 훔치려 한다 여기 이처럼 참혹하게 도려내진 책들처럼"
"하지만 그들이 우리들의 언어를 거짓의 감옥에 가둔다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절을 함께 지낸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진실은 영원히 부활할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 시대의 증인으로서 잃어버린 기억들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들의 말과 글은 시간 속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빛의 언어 생명의 언어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역사는 기억에 대한 투쟁이다 그리고 나의 기억은 내 자신의 역사이다"그녀가 내뱉은 마지막 말은 무척이나 단단했어요. 한국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었어요.
홈볼트 대학에서의 이 짤막한 연극공연으로 오늘의 '베를린 역사투어'는 모두 끝이 났어요. 아니, 실은 이것은 일종의 싸움의 과정이었어요.
하루종일 베를린의 역사적 공간들을 걸으며 사진가는 사진을 찍었고, 미술가는 붓을 들었고, 영화감독은 영상을 찍었고, 배우는 연기를 했고, 작가는 글을 쓰고, 연출가는 연출을 했지요.
한국에서 역사를 검열하고, 예술을 검열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검열하는 것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어요. 철없이 나대지 말고 너도 당하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싸움이었어요.
"두렵지 않으세요?" 이번 투어에서 '그녀에게'라는 편지글과 홈볼트 대학에서의 연극 퍼포먼스를 연출한 한 연출가 분에게 저는 물었어요.
"연극하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동시대를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예술검열 문제로 저보다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분노, 슬픔, 울음'이 잠재되어 왔다고 했어요.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노'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는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요. 재생(再生). 우리는 다시 또 다시 살아야, 살아남아야 해요. 그럼에도 제발 다시 살자구요. 그러니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농민 아저씨, 사세요. 살아야 해요. 다시 농사지어야지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물대포를 맞은 노동자들도, 광화문의 세월호 희생자 엄마 아빠 들도, 그리고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 지옥 같은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도 다시 살아갑시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요? 하지만 한국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비극이니, 이 '비극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버둥치며 죽어라 밟혀도 역사의 '목격자'로서 '증언자'로서 다시, 또 다시 살아 '재생'(再生)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 다음 세대에게 똑똑히 전해줘야지요. 2015년,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덧불이는 글 : 이 '베를린 역사투어'는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분야의 예술가들이 11.14 민중 총궐기에 연대하기 위해 공동 기획한 퍼포먼스이다. 편지글과 연극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재엽 연출이 맡았고, 연극에서는 이소영 배우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