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반값등록금' 공약, 장학금 받기는 자꾸 까다로워져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39개 대학교 총학생회장들과 펼치는 반값등록금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었다.
이 무렵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는 정책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미국식 대학모델을 따라가는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상위권을 웃돌며 학생과 학부모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시위'가 빈번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은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정책을 내세우며 '국가장학금' 제도를 도입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넘은 현재, 국가장학금 절차는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아래 재단)은 지난 23일, '2016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 1차 신청·접수를 12월 16일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신청부터 재학생은 '2차 신청' 기간이 사라진다(신·편입생과 복학생은 2차 신청 기간인 2월 25일부터 3월 10일까지 가능하다). 대학생들은 12월 16일까지 반드시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더욱 까다로워진 건 신청 기간만이 아니다. 올해부터 재단은 국가장학금 지원에 앞서 가구원(가족) '정보제공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학생 본인과 가족이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공인인증서로 정보제공동의를 완료해야 한다. 절차가 더 번거로워진 셈이다.
물론 재단 측도 할 말은 있다. '소득수준을 더 엄밀하게 파악해, 국가장학금을 더 공정하게 지원하겠다'는 취지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떻게 지원되고 있을까.
'박근혜식' 반값등록금, 실제 반값 수혜자는 '3명 중 1명'교육부의 지난 1월 6일·20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4년 대학 재학생은 약 220만 명이며 국가장학금 수혜자는 약 122만 명이다(약 55.46%). 한편 국가장학금 제도 시행 이후, 2011년 등록금 총액 14조 원 대비 48.8%의 부담이 경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올해까지 정부와 대학의 노력으로 7조 원을 마련해, 등록금 부담 경감률을 '절반'에(50%) 맞춘다는 계획이다. 이런 경우 박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도 달성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절반'은 등록금 총액의 절반이지, 학생 개인 등록금 부담의 절반은 아니다. '박 대통령식' 반값등록금은 선택적 복지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장학금을 학생들의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한다. 그렇다면 수혜 대상자 122만 명이 실제로 장학금을 어떻게 나눠 갖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단이 학생의 소득수준을 심사하고, 국가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업무를 맡는다.
재단은 학생의 소득수준을(본인·부모·배우자의 소득과 재산까지 고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차상위계층·1~10분위로 분류한다. 이 소득수준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지급한다. 그 결과 2014년 5분위 이상(5~10분위) 학생의 등록금 부담 경감률은 23.4~48.5%로 '반값'에 못 미쳤다. 또한 한 해 재학생이 220만 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실제 등록금 부담이 반값 이상 경감되는 학생들은 3명 중 1명꼴에 못 미친다(29.7%).
그런데 5분위쯤 되면 '살 만할 것'처럼 얼핏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착시효과'이다. 장학금을 나눠 갖는 약 122만 명 즉 '55.46%'의 학생이, 재단의 기준에 따라 분위가 '세분화'됐다고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 부분에서 지난 10월 28일 김낙년 교수(동국대·경제학)가 낙성대연구소를 통해 공개한, '한국의 부와 불평등'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2010~2013년 한국의 상위 10%가 차지한 자산 비중은 66%였고, 하위 50%의 비중은 2%에 그쳤다고 보고한다. 교육부의 조사는 2014년이지만, 한국의 경제적 계층구조가 1년 사이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김 교수가 제시한 경향성을 적용하면, 2014년 국가장학금을 수혜 학생 중 최소 절반 정도는 하나같이 보유 자산이 상당히 낮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나머지 5~8분위 학생들(9·10분위는 지원 밖이다)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할 수 있다. 재단은 주택 보유 역시 소득으로 환산하는데, 기본 공제액을 딱 5400만 원까지로 설정해놓았다. 가령 서울 시내에서 4인 가족이 의식주 중 '주(住)' 하나라도 갖추면 소득 분위가 매우 높게 잡힐 수 있는 셈. 실제로 2014년 1분위의 연간 수혜금액은 최대 450만 원이지만(2015년 480만 원), 8분위의 연간 수혜금액은 최대 67.5만 원에 불과했다.
한국과 다른 독일, 등록금 폐지에 대학생 생활비까지 지급
선진국의 사정은 어떠할까. 대표적으로 노벨상 학문 분야 수상자 배출이 120회가 넘는 독일은 등록금이 없다. 1946년 22세 프랑크푸르트 대학생 카를하인츠 코흐가 소송을 제기해, 독일 전역에는 점차 수업료가 사라졌다. 현재는 등록금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또한 독일 대학생들은 국가로부터 '바푀크'(BAföG)라는 생활비를 지급받는다.
바푀크는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1년에 도입한 제도이다(폴란드에서 나치 독일의 범죄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한 유명한 일화로, 일본 아베 총리와 자주 대조되는 바로 그 총리이다). 바푀크는 '기회의 평등 실현'과 '교양사회'를 목표로 한 브란트 정부와, 1960년대 초부터 대학 개혁안을 스스로 만든 대학생들의 합작품이다.
당시 독일 학생들은 자신들의 완전한 경제적 해방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생활형편과 학업능력에 따라 장학금을 주는 전통은, '사회적 정의'에 맞지 않는다고 집요하게 비판했다. 또한 자신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행위를 자선(Charity), 지급받는 행위를 수혜(Benefit)로 취급하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독일 학생들의 대안은 '장학금'이 아닌 '연구 보수'였다.
학생의 본분은 연구이며, 연구는 국가의 총역량을 증대시키는 '사회적 노동'이므로, 국가는 오히려 마땅한 대가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반면 한국에서 학위는 사유재이자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매년 보고되는 70%를 웃도는 대학진학률과 입시경쟁이 잘 보여주지만, 일차적으로는 정부와 대학부터 교육을 사유재로 접근한다.
'2015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연평균 국공립 4773달러·사립 8554달러로(PPP)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여전히 높다. 또한 사립대학 비율은 87%에 달한다(김창인 <괴물이 된 대학> 중). 기자의 지난 16일 중앙대 '유럽사회와 문화' 수업 참관 당시, 김누리 교수는(독어독문) "독일과 달리 한국 정부의 대학 재정부담률은 매년 14~15% 수준입니다. 그것도 연구비 타 먹는 형식까지 포함해서요"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억압됐던) 국민적 교육열이 폭발했지만, 수요를 충족해줄 대학은 부족했다. 국가 재정도 부족했다. 결국 지방 토호들이 전국에 대학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체제가 2015년까지 유지되는 데 반해,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은(PPP) 세계 13위다. 이제 한국에서도 국가가 국민에게 '교육의 권리'를 위한 빚을 갚을 때가 아닐까. 독일 대학생들이 지난 20세기 중반에 던진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학문은 사회적 노동이다.'
참고한 자료 |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 상속세 자료에 의한 접근>(김낙년 / 낙성대연구소 / 2015.10.28) <2015 OECD 교육지표>(OECD) <대학 등록금은 OECD 두 번째로 높고 정부 지원은 두 번째로 낮아>(권형진 / 뉴스1 / 2015.11.24) <대학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주는 나라>(김누리 / 한겨레 / 2013.12.1) <유럽사회와 문화>(김누리 외 / 중앙대학교 2015-2학기 강의록) <괴물이 된 대학>(김창인 / 시대의창 / 2015 / 1만5000원) <인정투쟁>(악셀 호네트 / 사월의책 / 2011 /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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