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고 소나무에 죽는다."우리에게 소나무만큼 친근한 나무가 또 있을까. 동네 뒷산이나 마을 언덕배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소나무. 너무나 흔하디흔한 나무였지만 소나무가 주는 의미와 기상은 다른 나무에 비할 바 아니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존재인 소나무. 무리지어 숲을 이루거나 홀로 당당하게 들판에 서 있는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알고 있던 그 소나무인가 여길 정도로 소나무에 대한 여태까지의 인상은 확 달라진다. 친근하면서도 위엄 있고 엄숙하면서도 고요하며,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는 고귀한 자태를 지닌 것이 바로 우리네 소나무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자연미는 곧 소나무의 아름다움에 다름 아니다. 예부터 선조들은 무덤 주위에 소나무를 심었다. 더구나 왕릉에는 잣나무와 더불어 소나무가 가장 어울리는 나무로 취급되었다. 실례로 1428년에 태조의 능인 건원릉을 찾은 세종은 "능침에는 예로부터 송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 쓸데없는 나무를 뽑아버리고 송백을 심도록 하라"고 명했다.
지난 시월, 수원을 다녀왔다. 사도세자를 다룬 영화가 한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였다. 그동안 수원은 수어 번 다녀왔을 정도로 익숙한 도시였지만 정작 바로 지척에 있는 화성의 융․건릉에는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다녀오지 못했다. 해서 이번에는 꼭 가봐야지 하며 스스로에게 단단히 다짐을 줬다.
얼핏 평평한 야산으로 보이는 왕릉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금세 울창한 솔숲이다. 대개의 왕릉처럼 이곳의 소나무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잠시 상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예의 그 익숙한 풍경에 감동은 쉽사리 밀려오지 않는다.
그나마 그것도 잠시, 소나무 숲은 이내 활엽수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에 이르러서야 소나무는 다시 숲을 이루어 사방을 둘러싼다. 융릉에서 한참을 머물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대신 정조의 건릉으로 난 산길로 발길을 옮긴다.
이 산길은 호젓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대개 너르고 잘 닦여진 왔던 길로 익숙하게 다시 돌아갈 뿐, 좁다란 산길에는 애써 눈길을 주지 않는다. 홀로 걷는 맛, 무언가에 이끌려 숲 깊숙이 들어가자 길은 점점 신비로워졌다. 기어이 숲은 깊은 침묵을 만들어내고, 여행자는 점점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멀리서 보기에 쭉 뻗은 소나무들은, 가까이서 보니 하나같이 굽어 있다. 그 울창한 소나무 무리 속으로 햇살이 내리쬔다. 용의 껍질 같기도 하고 거북의 등 거죽 같기도 한 소나무 수백 그루가 햇살을 받자 수십, 수백 마리의 용이 꿈틀대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아니,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총주(투티)를 보는 것만 같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일제히 빚어내는 총주는 푸르고 푸른 숲의 의지이자 기상이다. 저 장한 나무줄기와 산들산들 불어오는 솔바람의 아름다운 협연에 숲은 이미 거대한 콘서트 장이 되어 버렸다.
때마침 나타난 경운기와 인부가 아니었다면 여행자는 아마도 숲의 포로가 되었을 것이다. 왕릉을 관리하는 인부도 잠시 경운기의 시동을 끄더니 소나무 숲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리고 잠시 후 솔숲 깊숙이 들어간 그도 곧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솔숲에 내리쬐던 햇빛에 땅이 꿈틀거린다. 건릉이 지척임에도 소나무 숲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자꾸자꾸 뒤돌아보다 다시 숲으로 돌아가길 몇 차례, 마침내 크게 스스로를 단념시키고 나서야 겨우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