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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에게 "밥 좀 해줘"라고 말했다. 남편은 화를 냈다. 그리고 우린 다퉜다.
남편에게 "밥 좀 해줘"라고 말했다. 남편은 화를 냈다. 그리고 우린 다퉜다. ⓒ pixabay

남편과 싸웠다. 언제나 그렇듯 사소한 일이다. 흔히들 '치약을 가운데부터 짜느냐, 끝에서부터 짜느냐'를 두고 싸운다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 우리 역시 너무 사소한 일이라서 싸운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로 싸우기 때문이다.

그날의 싸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 끼니'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사람인데 반해 남편은 '밥'을 꼭 먹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매일 아침을 거르고 하루 두 끼를 먹는 사람이다. 그 두 끼마저도 대강 해치운다.

한 달을 기준으로 할 때, 혼자서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일은 대여섯 번에 지나지 않는다. 주중에 남편은 대체로 밤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저녁을 함께 먹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나는 혼자 살았던(남들보다 일찍 독립한 편이다) 10여 년의 습관을 지금까지도 거의 지키고 산다.

문제는 우리가 유일하게 같이 밥을 먹는 주말이다. 주말이면 '밥' 먹는 문제로 싸우기 십상이다. 물론 남편은 '집밥'을 좋아하지만 많이 양보해주는 편이다. 그래서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겐 그나마의 외식마저도 귀찮은 날이 있다. 바로 그날처럼.

요리하기 귀찮았던 나는 "당신이 밥을 좀 해주면 안 되냐"라고 여러 번 말했고, 남편은 급기야 화를 냈다. "어제도 점심을 내가 했는데, 짜장 라면에 양배추와 양파를 넣고 볶아줬다, 오늘도 해야 하냐!"라고.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이 밥을 한 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그런데도 화가 났나 보다.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됐기에 우리는 그날도 싸웠다. 지금까지의 싸움이 그랬듯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 낮추다가, 사과하고 마무리 지었다.

대형마트 다니던 아버지... 타인에 헌신했던 시어머니

우리는 결혼한 지 1년 반쯤 된 신혼부부다. 연애하는 1년 동안은 잘 몰랐다. 우리가 정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너무나도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라왔음을. 각자의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가 얼마나 그들과 닮게 행동하는지를 결혼 후에 깨닫게 됐다. 우리가 부모에게 받은 것을 서로에게 기대하게 된다는 사실 역시 결혼 전에는 정말로 몰랐었다.

내 아버지는 요리와 쇼핑을 좋아하는 분이다. 아버지의 취미는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며 싸게 파는 물건을 사재기하는 일이다. 지금은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아버지는 오랫동안 당신이 좋아서 장사를 했던 분이다. 그래서 물건을 비교해 보고 싸게 사는 걸 여전히 즐기시고, 남들보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그뿐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교복을 다려주시던 분이다. 자식들에게 자상한 아버지는 아니셨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 아래서 자란 나는 요리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요리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걸 즐기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시어머니께서는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무척 헌신적인 삶을 사셨던 분이다. 시어머니는 9남매의 장녀였고, 늘 다른 사람을 챙기는 일이 몸에 밴 분이다. 다가구 주택을 소유하고 사셨던 시어머니는 옥탑에 혼자 세 들어 사는 남자를 무척 챙기셨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고 누나는 제주도에 산다며 늘 안타까워하셨다.

심지어 몸을 다쳐 일을 못 나가 월세도 못 내고 보증금을 까먹고 사는 처지였는데도 명절이면 명절 음식을 한 상 차려 옥탑에 가져다주셨다(평소의 성품으로 보아 아마 명절날만 그러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평소에도 자주 그 사람을 걱정하셨다. 이런 분이 자신의 남편과 자식들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시아버지는 "이 사람아, 나 밥 어떻게 하라고, 밥하는 방법은 가르쳐주고 갔어야지"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다. 나는 고부간의 갈등을 주소재로 삼는 한국 드라마를 너무 자주 봐왔던 탓인지 시어머니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해서야 시어머니만큼 시아버지의 성품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남자들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 해도 자신의 아버지를 닮을 수밖에 없나 보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자란 '남자의 모습'이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었을 테니까.

그토록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과 나처럼 오히려 아버지가 헌신적(?)인 가정에서 자란 내가 서로를 이해하기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부모의 영향 아래서 살았던 시간은 소소하게 우리의 몸에 스며들어 사소한 습관을 만들고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싸우고 또 싸우겠지만, 언젠가는...

 우리는 정반대에 가까운 가정 환경 아래서 자랐다.
우리는 정반대에 가까운 가정 환경 아래서 자랐다. ⓒ pixabay

최근 들어, 사소한 일들이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현실의 삶에서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우리는 모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 일어날지 모를 불확실한 기적이나 혹은 행운, 판타지를 기대하는 영역이 아니다. 사소한 습관들로 이뤄진 일상적인 일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 살아내는 시간의 연속에 가깝다.

남편과 나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소한 습관의 차이 때문에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싸움이 반복되다 보면 그 어느 순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도 같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시작된 싸움은, 함께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적응하는 일로 끝나지 않을까. 각자의 부모와 함께 사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든 습관이 우리가 함께 사는 시간을 통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어렵긴 해도 사소한 습관은 시간의 흐름에 생겨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없어지기도 하니까. 함께 사는 동안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배일 일상을 기대해 본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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