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를 다니던 때에 두 가지 알바를 했습니다. 하나는 위층에 사는 국민학교 동생한테 과외를 했고, 다른 하나는 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아파트에서 신문을 돌렸어요. 여느 날에는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느라 열 시에 학교를 마치고 열한 시에나 집에 돌아왔기에 주말마다 두 시간씩 과외를 했고, 신문 돌리기는 방학에만 했습니다.
한마을에 사는 이웃집 동생하고는 어릴 적부터 늘 같이 놀던 사이입니다. 이 아이가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학교 성적을 높여야 한다고 여기셨기에 과외를 맡기셨을 테지요. 그동안 같이 놀기만 하다가 교과서랑 참고서랑 문제집을 옆에 놓고 주말마다 두 시간씩 과외를 하자니 진땀이 났습니다. 가르치는 저도 배우는 동생도 모두 진땀이 나요.
신문을 돌리는 알바를 하는 곳은 집에서 이 킬로미터 남짓 떨어졌습니다. 이 알바를 하려고 늘 달리기를 했습니다. 집부터 신문지국까지 달리기를 하고, 신문지국에서는 신문을 받아서 광고종이를 끼운 뒤에 다시 달리기를 하면서 신문을 돌립니다. 5층짜리 아파트를 돌면서 넣는 신문이기에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알바를 했어요.
"돈 벌어서 사치품이나 사려고 한다." 이것은 청소년 노동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자 오해입니다 … 청소년 알바를 온전한 노동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먹고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위한 가욋일로 생각하는 것이에요. (14, 16쪽)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눠 주는 것은 사업주(사장)의 의무 사항입니다. 이를 어기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잘 안 지켜지다 보니 최근에는 처벌을 강화해서 2015년부터는 즉시 과태료 처분을 하기로 했습니다. (24족)이렇게 두 가지 알바를 하는데, 이때에 우리 어머니하고 아래층 아주머니는 우리 마을에서 신문을 돌리는 부업을 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두 가지 신문을 돌리셨고, 아래층 아주머니는 한 가지 신문하고 우유를 돌리셨습니다. 주말이라든지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에는 으레 형하고 나는 어머니를 거들어 신문을 돌립니다. 신문을 돌리다가 아래층 아주머니를 만나면, 아래층 아주머니가 돌리는 신문하고 우유를 받아서 높은 층으로 쿵쿵쿵 달려 올라가서 넣곤 했습니다.
이리하여 방학이 되면 어머니가 으레 묻습니다. 방학인데 다른 마을에서 신문을 돌리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러마 하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신문지국에 말해서 방학 때에 비는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아 주셨습니다. 이러던 1989년 겨울 어느 날입니다. 한 달 동안 씩씩하게 신문을 다 돌리고 일삯을 받는 날입니다.
그런데, 신문지국장이 오천 원을 덜 줍니다. 이즈음 신문을 돌리면 '똑같은 부수'를 돌려도 나이에 따라 다 달리 일삯을 받았습니다. 120부를 돌린다 치면, 국민학생(초등학생)이 3만 원으로 가장 적게 받고, 중·고등학생은 5만 원으로 조금 더 받으며, 어른은 10만 원 남짓 받았습니다. 다만, 이 일삯은 신문만 돌린 값이 아니라 신문값까지 거두되 80∼90퍼센트 수금을 마칠 적에 줍니다.
이때 신문지국장은 '광고종이를 신문에 끼운 일삯' 오천 원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국장한테 주기로 한 돈을 왜 안 주느냐고 여쭈니 "내가 언제 주기로 했어?" 하고 큰소리를 칩니다. 광고종이를 넣은 일삯을 주기로 해서 다 넣지 않았느냐고 따지니 갑자기 따귀를 찰싹 때립니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지만, 따귀 맞은 일보다 오천 원을 받아야겠다고 다시 따지는데, 이번에는 발로 배를 확 걷어차서 지국 벽에 쿵 하고 찧었습니다. 신문지국장은 몇 마디 욕을 더 늘어놓은 뒤에 오천 원짜리 종이돈을 확 집어던졌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3개월을 넘는 수습 기간은 정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일하는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정했다면 수습 기간을 정했다 해도 그 기간 임금을 깎아서 최저 임금보다 적게 줄 수 없습니다. (33쪽)최저 임금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많고, 법을 악용하여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많은데 행정 기관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근로 감독 자체가 형식적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합니다 … 미비하나마 근로 감독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도 문제입니다. (38∼39쪽)
이수정 님이 글을 쓰고, 홍윤표 님이 그림을 넣은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철수와영희,2015)를 읽다가 불쑥불쑥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옛 생각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싸합니다. 내가 1989년에 겪은 일을 2015년 언저리를 사는 푸름이도 엇비슷하게 겪는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가슴이 저립니다.
푸름이는 왜 알바를 하려고 할까요? 돈을 벌려고 일자리를 찾지요. 푸름이는 왜 돈을 벌려고 할까요?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니 돈을 벌려고 하지요. 살림이 넉넉하기에 알바를 찾는 푸름이는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적든 많든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살림에 보태려고 하기에 알바 자리를 찾아요. 이른바 '용돈벌이'를 생각하며 알바를 할 푸름이는 매우 드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용돈을 벌려고 알바를 하더라도 푸름이도 똑같이 '일(노동)'을 하지요. 어른들도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옷을 사 입거나 합니다. 푸름이만 '일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간다든지 극장에 간다든지 옷을 사서 입지 않아요.
사업주들은 청소년 노동자를 '미숙련' 업무에 '싼값'으로 쓰려고 고용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업무에 필요한 교육은 생략하고, 노동에 대한 대가는 헐값이에요. (47쪽)폭력은 청소년의 인격과 신체를 훼손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실제로 사업주나 관리자에게 손찌검을 당하거나 욕설을 들어야 했던 청소년 노동자 대부분은 수치심과 공포를 견디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78쪽)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라는 책에서도 다루지만, 어른인 사업주(사장)가 푸름이를 뽑아서 일을 시키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다른 어른보다 돈을 적게 주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규직 일자리'가 아닌 '비정규직 일자리'로 쓰면서 세금도 적게 내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알바생한테 4대 보험을 챙겨 주려는 사업주는 참으로 드물어요. 알바생한테 '최저임금'이나마 제대로 챙겨 주려는 사업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요. 최저임금이란 '적어도 이만큼은 주어야 한다'는 돈이지만, '그냥 이만큼만 주면 된다'고 여기는 사업주가 그야말로 많습니다.
아무래도 법을 마련하는 이들 스스로 '청소년 노동'을 제대로 모르기에 최저임금제를 내놓으면서도, 이를 잘 지키도록 이끌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청소년 노동뿐 아니라 '어른 노동'도 제대로 모르기에 비정규직이 끝없이 늘어날 뿐 아니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기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푸름이가 알바 자리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으려면 어떤 제도가 있어야 할까요? 오늘날 같은 최저임금제가 아니라 '적정임금제'가 있어야지 싶습니다. '적어도 이만큼은 주어야 한다'는 제도 말고, '제대로 이만큼은 주어야 한다'는 제도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모든 직장 내 성희롱은 권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주로 힘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행하지요. 이는 노동 조건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속출합니다. (94쪽)현장 실습 중 부당한 대우를 겪다 보면 특성화고 학생 중 일부는 '아, 이래서 대학을 가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취업이 아닌 진학을 꿈꿉니다. (123쪽)
일삯은 일한 대가로 받아야 합니다. 일삯은 나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일삯은 졸업장에 따라 다르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일삯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일삯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라서 받아서는 안 되며, 한국노동자·이주노동자로 갈라서 받아서도 안 되지요.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알바를 할 적에 이 같은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그무렵 이런 책이 한 권이라도 있었으면 어처구니없는 일에 씩씩하게 맞설 만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1980년대는 '청소년 노동'뿐 아니라 '어른 노동'을 놓고도 차별이나 피해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도와줄 만한 길잡이책은 거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1980년대에 크게 불거진 민주운동 물결이 있었기에 비로소 '어른 노동'을 놓고 벌어진 차별이나 피해나 상처를 줄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생기고, 노동운동이 일어났어요.
사회에 민주 물결이 없으니 어른도 푸름이도 '노동 차별'로 시달립니다. 나라에 민주나 평화나 평등과 같은 생각이 흐르지 못하니 어른 노동이나 청소년 노동 모두 아프게 짓눌리거나 짓밟힙니다.
우리는 살면서 세계 인권 선언과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에 대해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고약한 편견입니다. 사업주 일부도 이런 인식을 악용해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면서 협상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파업으로 손해가 생겼다면서 엄청난 금액의 손해 배상액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법원에서 불법 파업이 아니라고 판단해도 회사는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파업을 불법으로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1쪽)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를 쓴 어른은 이 나라 푸름이가 '일하는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봅니다. 푸름이가 알바 자리를 얻을 적에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쓰도록 알려주고, 근로계약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며, 푸름이 스스로 근무일지를 잘 써 두라고 알려줍니다. 푸름이가 일터에서 푸대접이나 폭력을 받았다면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알려주기도 합니다.
일하는 푸름이는 사랑받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푸름이는 따스한 손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을 하지 않는 푸름이도 사랑받을 노릇이고, 일하는 어른이나 일하지 않는 어른도 모두 따스한 손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어른은 푸름이한테 알맞춤한 일을 알맞게 맡기면서 일삯을 알맞게 줄 수 있는 마음과 몸짓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푸름이가 사회를 아름답게 맞아들이도록 이끄는 사업주가 되어야지 싶고, 푸름이가 나이나 졸업장 때문에 푸대접을 받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일하는 푸름이가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사회 어른들이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
(이수정 글 /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펴냄 / 2015.11.13.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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