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이 아닌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자, <한국경제 대안찾기>에서 답을 찾아라!
'주운 핸드전화를 10만 원에 팔면 국민소득은 얼마나 오를까?' ① 10만 원 ② 0원 ③ 20만 원 ④ 알 수 없음(통계에 잡히지 않음)주운 사람이 팔아서 10만 원을 벌었으니 (국민)소득이 10만 원 오른 것 같은데, 이런 것까지 한국은행에서 통계로 파악할 것 같지는 않다. 대략 추산하는 걸까? 아님 이런 건 예외니까 없는 걸로 할지도 모른다. 만약 10만 원을 국민소득으로 파악한다면 국민소득이란 건 윤리와 동떨어진 개념인가? 의문이 계속된다.
그나저나 잃어버린 사람은 다시 핸드폰을 사야 하니 제조업체는 한 대를 더 팔 수 있게 된 셈이다. 그 값을 50만 원만 쳐도 국민소득은 50만 원이 새로 늘어나게 된다. 새로 50만 원의 국민소득을 만들어냈으니 돌려주지 않은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할까?
한국은행 출신 정대영, 착한통계로 한국경제를 진단하다이런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반박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경제학자나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확히 모를 것이다. 이런 걸 꼭 정확히 알아야 할 건 아니지만, 국민소득이니 환율이니 하는 경제통계를 대할 때 그것이 우리 보통사람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정부와 경제계는 늘 무역수지나 미국 금리 같은 걸 거론하며 현재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방어(?)한다. 일자리는 모자라고, 교육비와 집세 등 쓸 데는 많은데 말이다. 무역수지는 계속 흑자라고 하고, 우리나라가 세계 10번째인가 하는 경제대국이라고 하는데, 우리네 삶은 팍팍하다. 왜 그렇지? 잘 몰라서도 그렇지만,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경제통계를 무시하곤 한다. <한국경제 대안찾기>는 바로 이런 문제의 답을 주기 위한 책이다.
저자 정대영은 한국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냥 월급쟁이로 끝낸 게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금융과 산업이 짜임새도 있고 건전한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으로 일했고, 금융인들을 가르치는 한국금융연수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그러니 한국은행에서 내놓는 여러 경제통계나 경제현실에 정통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요즘말로 하자면 '착한통계'를 근거로 한국경제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자네 책이 최고의 경제학 책이야!" 오래 전에 내가 재무설계 책(<내 인생 첫번째 재무설계>)을 냈을 때 선배가 한 말이다. 대학원생들에게 그 책으로 토론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학은 주로 거시경제학이고 보통사람의 삶과는 동떨어진 얘기인데, 내 책이 가정 경제에 실감나는 얘기라는 거였다.
최근 <한국경제 대안찾기>를 읽으며 다시 그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 책이야말로 정말 고등학교나 대학 교양과정에서 쓸 교재다.'내가 쓴 책이야 가정경제 상담한 내용을 이야기 식으로 쓴 책일 뿐이고, 이 책은 정부나 학자 그 누가 봐도 손잡을 데 없는 엄밀한 경제통계를 근거로 쓴 책이다. 거기에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국민경제와 서민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고교나 대학 경제교재로 써도 마땅한 책1장은 독자에 따라서는 좀 지루할 수도 있으나 경제 통계를 하나하나 착한(?) 관점에서 뜯어보고 있다. 전문가이고 서민의 삶에 애정이 있는 정대영의 손에서, 그동안 내게 의미 없는 수치였던 국민소득, 투자, 수출 등 '죽은 통계'들은 하나하나 관계성을 회복하며 살아났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소비다.
국민소득이 투자나 수출로 오르는 것보다 소비를 통해 더 많이 오른다는 점을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 그 소비를 늘리기 위한 방법은 여럿이다. 금리를 낮춰서 또는 재산가치(특히 부동산)를 높여서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소득을 높이는 방법도 여럿이다. 소득이 아예 없는 청년, 노년(농민)층에 기본소득으로 주자는 안도 있고 이를 성남시와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되기도 한다. 이런 걸 포함해서 진보와 보수간의 오래된 해법 논쟁도 있다. 부자와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 복지를 늘리는 것이 소비를 늘리는 것이라는 주장과 규제를 완화해 기업투자를 늘려 성장을 해야 세금이 더 걷힌다는 주장이 팽팽한 게 우리 현실이다.
이에 반해 정대영은 거시통계를 기반으로 현실성 있는 대안을 주장한다. 소비로부터 일자리로, 다시 실업급여, 기초연금, 국민연금으로 논리의 고리가 이어진다. 그 고리의 핵심 중 하나로 신뢰 문제를 거론한다.
독일에 근무할 때 저자는 사람들이 횡단보도에서 차가 오는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건너는 걸 꽤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개인과 사회의 신뢰수준이 비경제적 요소이지만 거의 모든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의 원인이 되고, 경제사회 전체를 부실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의 통계도 인용한다. 한국에서 사업하기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첫째, 정책의 불안정성 둘째, 비효율적인 정부관료 셋째, 금융 접근성 부족을 든다는 것이다. 정부가 목숨(?) 걸고 하려는 노동개혁(아마 노동 관련 규제)은 네 번째가 아닐까.
노동개혁보다 관료개혁이 먼저다뭐야, 그럼? 첫째·둘째·셋째 다 관료 문제 아닌가? 정년이 보장된 잘 나가는 직장의 정년을 연장해 준 것(정년연장법), 생산성과 연계한 임금피크제와 저성과자 해고 문제, 이런 것들을 두고 노동개혁을 하자고 다투지만 정작 그보다 더 심각한 것들은 관료의 문제라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를 아시나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웃기기도 했고 놀랍기도 한 대목이었다. 위 경쟁력 지수의 순위 얘기다. 정부정책 투명성 부문은 144개 국가 중 133위다. 마다가스카르 134위, 가나 132위다. 가나는 월드컵 중계를 통해 좀 알지만, 마다가스카르는 웬만한 사람은 통 모를 나라다. 정부나 공무원, 정치권은 남에게 호통칠 일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반성할 일이다. 아니, 특권을 가진 그들이 저절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나서서 개혁해야 한다.
이 책이 그냥 푸념하듯 정부와 관료체계를 비판하는 정도의 책이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금감원과 금융위를 상대로 다퉈본 적이 있지만, 저자는 전문가로서 두 금융당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공무원과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특혜로 과도한 몫을 챙기는 집단들저자 정대영이 다음으로 주목하는 것은 특혜다. 이른바 진보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재벌개혁을 주장하지만, 나라 전체를 자세히 뜯어보면 더 큰 문제는 기여한 것보다 과도하게 가져가는 특혜집단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재벌개혁을 넘어 경제 전체의 잘못된 '갑을'관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을 봐주자거나 재벌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재벌도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법을 잘 지키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면 정책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더 중요하고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그럼 특권적 이익집단이 누구냐? 정대영이 꼽는 가장 큰 이익집단은 임대소득자 등 부동산 과다소유자다. 다음으로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집단, 관료 등 공무원, 교수, 공기업 직원, 대기업 정규직 등을 꼽는다. 그들이 과도하게 가져가는 방식이 시장원리보다는 특혜나 제도적 과보호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 때문에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게 되고, 비정규직 택배기사나 중소기업 노동자 등이 정당한 보상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적하는 근본 문제는 비싼 임대료와 집값, 교육비 등으로 대표되는 고비용 구조다. 이 때문에 창업이 어렵고, 자영업자와 괜찮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포함하여 국민 거의 대부분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발로 뛰어 찾아낸, 한국경제를 바꿀 구체적 대안들여기까지만 썼다면 이 책은 그렇고 그런 수많은 비판서 중 하나로 분류되고 말았을 것이다. 정대영은 자신의 전문인 경제통계를 통한 한국경제의 근본모순을 진단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책의 3장에서 자신이 발로 뛰며 확인한 대안들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있다. 당장 정책으로 써도 전혀 손색이 없을 내용들이다.
정대영의 해법이 더욱 빛나는 것은, 흔한 주장처럼 세금 더 거둬 문제를 해결하자거나 복지를 확장하자는 게 아니라, 기존 제도를 활용하고 여러 당사자들의 이해를 조정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관점에 있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 해법 중에도 그런 대목들이 여럿 있다.
그동안 주거취약자들을 위해 지자체나 공기업이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싸게 공급해 왔다. 그 결과로 공기업들에는 적자가 쌓여 왔다. 주택 관련 공기업의 적자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적자공급 소지는 분명하다. 이래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정의 면에서도 문제될 수 있다.
정대영의 해법은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장기 운용수익률을 위험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무주택자들에게 집값의 연4.3% 이자에 해당하는 임대료만으로도 새집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3~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75제곱미터 아파트의 임대료도 월 75만 원씩 내면 된다는 것이다. 서울의 괜찮은 원룸 월세가 40~5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이런 주택에 미혼 청년 넷이 같이 살면 각자 20만 원만 내도 된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창문을 열수 없는 허름한 고시원이 아니라 번듯한 아파트를 말이다.
서울시의 주거지원 정책자금(연2%)을 활용해 대학생 공동주거사업을 하고 있는 나는 이 대목에서 느낀 바가 많았다. 정책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주거난을 해결할 수 있다. 필자의 기본생각도 그렇다. 이 잘 사는 나라에서 왜 이렇게 주거가 빈곤할까 싶고 나라의 재원을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지금보다 훨씬 쾌적하고 싸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주거난을 해결하고자 청년들이 스스로 모여 공동생활을 하기도 하고,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이른바 사회주택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너무 느리고 규모도 작다. 어쩔 수 없다면 모르되, 충분히 더 잘 할 수 있는 재원이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왜인지 따져봐야 한다.
정대영은 지금 한국사회의 근본 모순은 너무도 뿌리가 깊어 쉬운 정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기득권층이 크게 반발할 것이라는 것이다. 정대영은 여기서 비켜서지 않는다. 반발이 있더라도 한국경제 전체를 위해 그 반대를 무릅쓰고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연히 정치권에서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또 대선을 앞두고 뜻있는 정치인들이 정대영의 주장을 잘 활용할 것을 기대해 본다.
괜찮은 일자리를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는 큰 틀에서 정대영이 주장하는 정책은 다양하다. 은행설립을 더 늘리자거나,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7급과 9급 채용을 늘리자거나, 의사 등 업권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제도를 고치자거나, 공무원과 공기업의 보수기준을 고치자거나, 소득세 포괄주의 도입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칠 일들이다. 혁명가도 아닌, 한국은행에서 34년 근무하고 은퇴한 그가, 어찌 이리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다시 래디칼리즘(Radicalism)을 생각해 본다사전엔 급진주의(急進主義)로 설명되어 있다. 진(進), 앞으로 나아가되 급하게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래디컬(Radical)에는 근본적(根本的)이라는 뜻이 있다.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문제의 근본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실천하기. 여기서 급(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 속에서 진보주의자들이 혁명을 하기 위해 급하게 서두른 것을 우파적 시각에서 본 것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속도는 시속 100km 식의 자연계의 속도가 아니라 사회변화의 속도이고 이는 그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속도다. 바꾸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지금의 속도가 느리다고 할 것이고, 지금 이대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의 속도가 빠르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거기에 비난의 뜻을 담을 것이다.
나는 운동주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인지가 문제라고 본다. 문제를 정확히 보고 그것을 개혁할 역량이 된다면 그에 맞게 하면 된다.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욕심을 부려 지나친 행동을 하거나 말로만 센 주장을 펼치는 것은 쓸데없이 빠른(급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를 정확히 보고 있는가? 이 근본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이웃들과 이것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가? 나아가 기득권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함께 행동해 고칠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하자.
기득권자들이 그것을 급진(急進)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비난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고 권리다. 그러나 하나 더 생각해 보자. 그들 기득권자들이라고 해서 지금의 이 체제를 그대로 천년만년 끌고가고 싶고, 또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볼까? 생각이 있는 기득권자라면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정대영의 대안찾기에 수많은 실천이 덧붙여지기를우리 경제는 이제 3% 성장도 어려운 처지다.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재정을 위해서도 이제 '소득세 포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정대영은 주장한다. 과거에는 조세제도가 부실해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서 재정이 모자라지 않았고 복지수요도 지금보다 훨씬 적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런 평가는 진보든 보수든, 기득권자든 서민이든 동의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사회갈등은 팽팽하게 이어졌다. 역사논쟁으로 뒤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앞을 바라보자, 그 답이 무엇일까?
정대영은 성장과 일자리를 위한 쉬운 정책은 이제 없다고 단언한다. 기득권자의 반발 때문에 힘들더라도 강력한 의지로 구체적 내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정부의 여러 정책이 일자리 만들기에 잘 부합하도록 조정하고 개혁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를 만들자고 한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먼저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일이다. 나아가 일자리 위원회가 아니라 일자리 부총리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그 외 일자리를 늘리면서도 지속가능한 국민경제에 필요한 여러 정책들을 정대영은 소개하고 있다. 그저 책상에서 구상한 게 아니라 여러 정책가나 경제인 나아가 시민운동가들과 깊이 토의한 내용들이다. 이런 구체성과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하나하나 실천으로 이어질 때 한국사회의 고질병이 고쳐질 것이다.
49대 51의 논쟁과 힘겨루기, 아 이제 끝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의 대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정대영의 '대안찾기'가 실천의 밑거름이 되기 바란다. 그의 책이 말만이 아닌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한 구체적 무기가 되기에 충분하기에 나도 부족하나마 이런 글로 보태고자 한다. 나아가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내용이 정대영의 '대안찾기'에 덧붙여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