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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어린이문학 가운데 하나인 <달라도 친구잖아!>(개암나무, 2012)를 즐겁게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 만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끼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예쁜 어린이문학이 꾸준히 나옵니다. 이 어린이문학이 어떻게 대단하기에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가 하면, 이 어린이문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 이야기를 학교에 얽매여서 들려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삶을 꿈으로 가꾸는 숨결로 들려주기에 여러모로 돋보입니다.

그러면 한국 어린이문학은 어떠할까요? 요즈음 나오는 한국 어린이문학은 '학교에서 생기는 말썽'을 줄거리로 삼기 마련입니다. 아니면, '집에서 겪는 골칫거리'를 줄거리로 삼아요. 생각이 홀가분하게 춤추는 꿈노래(판타지) 같은 어린이문학도 드물지만, '생활동화'라고 할 적에 '학교에서 동무끼리 따돌리거나 교사가 바보스러운 모습'을 흔히 그리고, '집에서 어머니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시험공부로 들볶는 모습'을 자꾸 그립니다. 때로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다투는 집안'을 그리고, '가난한 옛 골목마을이나 시골마을 이야기'를 되새기는 얼거리이곤 합니다. 한국 어린이문학에서 생활동화는 거의 다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겉그림
겉그림 ⓒ 개암나무
일본에서 "すてきなルちゃん"라는 이름으로 2009년에 나온 이 어린이문학은 "멋진 루짱"입니다. 한국말로 옮기며 "달라도 친구잖아!"로 바꾸었는데, '루짱'은 이 어린이문학에서 '말하는 이(주인공)'한테 이모입니다.

'나는 (이모) 루짱이 꽤 괜찮은 화가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무슨 그림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하고, 뭐랄까, 왠지 기분을 좋게 하는 무척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거든요.' (9쪽)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오늘도 루짱은 내 방에서 캔버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어요.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그림을 보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거든요.' (19쪽)

일본 어린이문학 <달라도 친구잖아!>에 나오는 루 이모(루짱)는 주인공 아이네 집에 찾아옵니다. 여느 돈벌이를 딱히 하지 않으면서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루 이모인데, 언니네 집에서 밥을 얻고 잠자리도 빌리면서 그림 한 점을 마무리하려고 했대요. 그러면, 루 이모는 왜 굳이 언니네 집에까지 와서 그림을 그리려 할까요? 바로 주인공 아이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재미난 이야기를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으면서, 이 그림을 기쁘게 마무리짓고 주인공 아이한테 선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루 이모는 돈을 버는 재주가 영 없다 할 만합니다. 퍽 오랜 나날을 들여서 천천히 마무리지은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지도 않고, 돈을 받고 팔지도 않으니까요. 이런 그림을 덜컥 누군가한테 선물하면서 사니까요.

'소라는 파란 두건의 끝을 뾰족하게 세우고 깡충깡충 뛰며 들판의 외길을 따라 집을 향해 걸어갔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세 친구는 처음으로 두건이 정말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두건이 친한 친구처럼 소라의 머리에 붙어 있었거든.' (14쪽)

'나는 연필을 계속 깎다가 문득 <들장미>는 스기야마에게 좋아하는 걸 넘어 어떤 특별한 노래일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5쪽)

루 이모는 그림을 이레에 걸쳐서 마무리짓습니다. 밑그림은 벌써 다른 곳에서 그려서 가져왔습니다. 이레에 걸쳐서 그림을 마무리짓는 동안 일곱 요일에 맞추어 한 가지씩 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인공 아이는 루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으로는 느끼지 않습니다. 더구나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는 마치 주인공 아이네 어머니, 그러니까 루 이모네 언니 이야기인 듯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루 이모하고 언니가 어릴 적에 곁에서 늘 지켜보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얽힌 삶을 가만히 마음 깊이 품었다가 주인공 아이한테 들려준다고 할 수 있어요. 나중에 '우리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한테 기쁘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품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림 한 점은 이야기하고 맞물려서 삶을 고운 꿈으로 바라보도록 북돋우는 징검다리 구실을 할 테고요.

왜냐하면 루 이모가 그린 그림을 주인공 아이는 방 한쪽에 걸 테고 이 그림을 늘 들여다볼 테지요. 그냥 그린 그림이 아니고, 멋지게 그린 그림이 아닌, 그야말로 온 사랑을 담아서 그린 그림이기에 이 그림을 들여다보는 동안 언제나 사랑스러운 숨결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포리의 거실 아래는 아주 신기한 소인들의 화랑이 있었던 거야! 걸려 있는 그림들은 모두 포리가 기부한 얼룩 하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표들이었어. 소인들은 성냥개비로 만들어진 액자에 우표를 하나씩 정성스레 넣어 마루 밑 벽에 걸어 놓고 있었던 거였어.' (45족)

'기무는 언제나 바람이 부는 초록 들판을 상상했어. 아무것도 없이 공기만 반짝반짝 파랗게 퍼져 가는 그런 초록 들판을 말이야. 기무는 들판의 중앙에서 바람 아이가 되어 빛과 함께 빙글빙글 춤추고 싶었어.' (63∼64쪽)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다른 숨결로 함께 어우러지기에 더없이 예쁘게 놀면서 사랑스럽구나 싶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다른 숨결로 함께 어우러지기에 더없이 예쁘게 놀면서 사랑스럽구나 싶습니다. ⓒ 최종규

한국말로 옮긴 이름은 "달라도 친구잖아"인데, 어느 모로 본다면 이 말마디는 이 일본 어린이문학을 한 마디로 잘 나타낸다고도 여길 만합니다. 이레에 걸쳐서 루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에 나오는 일곱 아이는 "다 다른 아름다운 동무"이거든요. 그리고, "달라도 친구"라기보다는 "달라서 친구"입니다. 저마다 다른 동무요, 저마다 새롭게 살림을 짓고 살림을 가꾸려는 동무예요. 저마다 슬기로운 꿈을 품으려는 동무이면서, 저마다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동무입니다.

'지금은 알아요. 빛과 바람의 녹색 들판도, 아이들의 웃음 소리도, 게다가 루짱이 이야기해 준 일주일 동안 여러 이야기도 모두 하나가 되어 이 그림에 녹아 있다는 것을요.' (70∼71쪽)

책 끝에는 루 이모가 아이한테 선물한 그림이라면서 그림 한 점이 조그맣게 실립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다케다 미호'라는 분이 그렸다고 합니다. 다케다 미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그림책 작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분 그림책 가운데 꼭 세 권만 한국말로 나왔는데(<책상 밑의 도깨비> <우리 엄마 맞아요?> <짝꿍 바꿔 주세요!>), 한국말로 나온 그림책 세 권을 살피면 아이끼리 나누는 깊은 마음이라든지 아이와 어른이 따사로이 나누는 마음을 살가이 밝힙니다. 아이들이 가슴 가득 곱게 담을 숨결을 늘 헤아리는 그림책 작가이기에, <달라도 친구잖아!>라는 책 끝에 '루 이모가 마무리지어서 선물한 그림'을 선뜻 그려서 담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곧, 어린이문학이란 마음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노래하고, 마음을 북돋우며, 마음을 사랑하기에 조그마한 이야기 한 자락이 어린이문학으로 태어납니다. 마음을 티없이 바라보고, 마음을 아낌없이 가꾸며, 마음을 즐거이 얼싸안을 수 있기에 따스한 꿈이 흐르는 어린이문학이 될 만합니다.

바람을 타고, 또는 구름을 타고, 또는 햇살에 실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예쁜 어린이문학 한 권을 읽는 아이들이 '내 동무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슬기롭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동무는 어떤 웃음을 지으면서 아침을 열까?' 하고 반가이 마주할 수 있기를 빕니다. 꿈을 곱게 품어서 그림으로 빚는 이모는 더없이 멋지고, 이런 이모를 둔 아이는 날마다 기쁨이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달라도 친구잖아!>(다카도노 호코 글·그림 / 이서용 옮김 / 개암나무 펴냄 / 2012.6.1. / 9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달라도 친구잖아

다카도노 호코 글.그림, 이서용 옮김, 개암나무(2012)


#달라도 친구잖아#다카도노 호코#어린이문학#어린이책#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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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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