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때 한 강남 부자가 문재인은 좋은데, 옆에 있는 이정우가 싫어 못 찍겠다고 했다더라. (문재인) 옆에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대선에선 옆에 있는 일은 없을 거다(웃음)."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가 11일 퇴임 기념 대담 말미에 남긴 쓴 소리다. 참여정부 출신 정치인들의 이른바 '종부세(종합부동산세) 트라우마'를 꼬집은 것이다.
"종부세는 가장 훌륭한 세금"... 참여정부 출신 '트라우마'에 일침이정우 교수는 이날 40년 가까이 함께 토지정의운동을 벌여온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부 석좌교수가 함께 청중들 앞에 섰다. 이날 대담은 토지+자유연구소가 지난달 10일부터 매주 금요일 진행한 두 교수 퇴임 기념 강좌를 마무리하는 자리였다.(관련기사:
이정우 교수 "진보 대통령이 부자에게도 유리하다")
참여정부 청와대 초대 정책실장 출신인 이 교수는 지난 2005년 기준시가 6억 원 이상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밑거름을 만들었다. 토지 불로소득을 모두 회수해야 한다는 미국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 이론을 국내에 들여온 김윤상 교수의 '지공주의' 이론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종부세는 당시 한나라당, 보수 언론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이른바 '세금폭탄론'에 시달렸고 지난 2008년 헌재의 일부 위헌 판결을 계기로 유명무실화된 상태다.
당시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조차 이른바 '종부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교수는 여전히 종부세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통상학부 교수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은 종부세 얘기만 나오면 기를 못 펴고 주눅드는데 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라면서 "이 교수는 문재인 캠프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아 종부세 우수성을 강조하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문 캠프 다른 사람들은 위원장이 표 떨어지는 소리하고 다닌다고 난감해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안철수 캠프 경제민주화포럼에 참여했던 전강수 교수도 "안철수 캠프에서 부동산 정책을 만들었는데 보유세 얘기하려고 해도 '종부세' 얘기는 하지 말라는 답답한 상황이었다"면서 "당시 이정우 교수가 전화해 거긴 왜 종부세 얘기 안 해요, 라고 묻는데 사람 미치고 환장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이에 이정우 교수는 "2012년 대선 때 TV 토론에서 나가 학자로서 소신껏 '종부세는 우리나라 세금 중 가장 좋은 세금이고 위헌 판결은 잘못됐다'고 늘 말했다"면서 "캠프에서 난감해하고 걱정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적인 압력이나 경고는 한 번도 없었고 문재인 후보에게도 그런 말을 못 들어 움츠러들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실패 안해, 문재인은 노무현보다 훌륭한 대통령감"문재인 대표가 좋은 대통령감이냐는 한 청중 질문에도 이 교수는 "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의감, 균형감각 같은 여러 장점을 다 갖고 있고, (노 전 대통령의) 약점인 말이 많다거나 말 실수가 없어 노무현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공수부대 출신답지 않게 너무 신중하고 남에게 모진소리를 못해 우유부단하게 비치기도 하지만 잠재력과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서도 "참여정부는 실패한 게 아니고 굉장히 잘했고 역대 정부 가운데 제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까지 위정자들이 임기 안에 경제성장률 등 양적인 지표를 높이려고 근시안적으로 해 뒤에 두고두고 많은 문제를 남겼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나는 욕먹어도 좋다, 뒤에 오는 대통령에게 부담 주지 않겠다는 원칙으로 일했다, 나중에는 제대로 평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강철규, 김수현, 이동걸 등 참여정부 경제정책을 맡았던 학자들과 함께 쓴 <경국제민의 길>이란 책을 낸 이 교수는 "참여정부가 누명을 많이 쓰는데, 그 책을 보면 실제로 꽤 잘 했구나 생각할 것"이라면서 "참여정부는 부동산, 지역 균형 발전, 남북 문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고 장기적 시야에서 일했던 최초의 정부"라고 추켜세웠다.
이 교수는 노 대통령과 대선에서 인연을 맺게 된 계기도 털어놨다. 이 교수는 "원래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에 있던 교수들이 (당선) 확률이 '제로(0)'라며 다 떠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울컥해 나라도 돕겠다고 나선 것"이라면서 "당시 노무현 캠프에 교수가 25명이었고 이회창 캠프에는 교수가 500명이란 얘기를 나중에 듣었는데 그때 알았으면 도망갔을 것(웃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대담을 나눈 이정우 교수와 김윤상 교수는 중고교는 물론 같은 대학까지 1년 선후배 사이로, 경북대에서도 40년 가까이 함께 교수로 활동하다 올해 정년퇴임했다. 전공은 경제학(이정우)과 법학(김윤상, 추후 행정학)으로 갈렸지만, 둘 다 헨리 조지 사상에 심취해 토지 사유제에 비롯된 불평등 문제 해법에 관심을 기울인 것까지 똑같다.(관련기사:
퇴임 강연 앞둔 '50년 지기' 김윤상-이정우 경북대 교수의 '직설' 1편,
2편)
이들과 헨리조지연구회를 이끌어온 전강수 교수는 "두 사람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김윤상 교수가 이상주의자라면, 이정우 교수는 현실주의자 면모가 강하다"면서 "(1990년대) 김윤상 교수가 번역한 헨리 조지 책으로 공부했는데 그 때 태도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하는 모습에 감사하고,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에 들어가 종부세 싸움을 치열하게 하면서 물러서지 않고 (과세 대상을) 더 확대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