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에서는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뒤꼍에서 유자를 땁니다. 가시가 많은 유자나무 곁에 걸상을 받치고 서서 한 알씩 찬찬히 따서 큰아이한테 건네면, 큰아이는 곧 작은아이한테 건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건네준 유자알을 한손에 하나씩 받은 뒤 신나게 콩콩 뛰면서 마당으로 내려갑니다.
뒤꼍에서 해를 잘 받으며 자라는 유자나무는 봄이면 하얀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노란 열매를 맺어요. 우리는 유자나무를 비롯해서 모든 나무를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집 사랑스러운 나무야, 잘 잤니?' 하고 물은 뒤 '우리 집 예쁜 나무야, 잘 자렴!' 하고 절을 합니다.
마당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후박나무를 보고는 '네 그늘이 참으로 멋지구나!' 하고 노래합니다. 겨울에는 그늘이 안 달갑다고도 할 만하지만, 겨울에는 해가 길게 눕기 때문에 그리 그늘지지 않습니다.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서면, 한여름에는 뙤약볕을 가려 주고 한겨울에는 세찬 바람을 막아 줍니다. 예부터 집 둘레에 나무를 알맞게 심는 까닭은 볕과 바람을 고루 누리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나무가 있어서 볕이랑 그늘을 함께 맞이하고, 나무가 있기에 싱그러운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세찬 바람을 가려 줍니다.
아이들하고 <나의 사과나무>(키즈엠, 2015)라는 그림책을 보면서 나무 한 그루란 얼마나 대단한가 하고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버려진 능금나무를 아이가 손수 살뜰히 돌보면서 되살리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에는 '되살아난 능금나무가 능금 열매를 잔뜩 베푸는 모습'이 나옵니다. 되살아난 능금나무에는 새가 다시 찾아오고, 벌레도 꼬물꼬물 기어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벌레를 함부로 잡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벌레는 새한테 먹이가 되니까요. 벌레는 때때로 능금알을 뚫고 파먹을 테지만, 몇 알쯤 파먹어도 괜찮아요. 벌레가 어느 만큼 있어야 새도 벌레잡이를 하면서 새끼 새를 돌보거든요. 나무 한 그루는 새도 받아들이고 벌레도 받아들이며, 무엇보다 저를 아끼고 돌보아 주는 따순 손길과 마음과 사랑인 사람들도 받아들입니다.
그나저나 마당을 누릴 수 있어야 나무를 심어서 건사합니다. 마당이 제법 넓어야 나무 밑에 평상이나 걸상을 두면서 그늘을 누립니다. 마당이 아주 넓지 않더라도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꾼다면, 한 해 내내 즐거운 살림을 북돋울 만합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맨발로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곁에서 요모조모 살림을 짓지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일하는 곁에서 어깨너머로 살림을 배웁니다.
듬직하고 알찬 <모둠도둠 산꽃도감>(자연과생태, 2013)을 아이들하고 함께 넘기면서 다시금 생각에 잠깁니다. <모둠모둠 산꽃도감>은 멧골에서 흔히 피는 온갖 꽃을 한 자리에 알맞게 갈래를 지어서 '비슷한 생김새'가 어떻게 다르거나 같은가를 알려줍니다.
어수리와 참당귀와 궁궁이와 강활과 구릿대와 고본과 바디나물이 어떻게 다른가를 나란히 알려주고, 양지꽃과 세잎양지꽃과 돌양지꽃과 물양지꽃과 딱지꽃과 가락지나물을 어떻게 가르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뻐꾹채와 엉겅퀴와 큰엉겅퀴와 바늘엉겅퀴들을 어떻게 살피면 되는가를 쉽게 밝힙니다.
멧꽃을 모둠으로 묶어서 보여주기까지 무척 오랫동안 멧꽃을 지켜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마주보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멧꽃처럼 들꽃도 오래도록 사랑으로 지켜보거나 살펴볼 적에 꽃마다 어떻게 다르면서 새롭고 아름다운가를 기쁘게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꽃이 저마다 다르듯이 마을도 저마다 다릅니다. 시골에 있기에 다 같은 마을이 아니라, 볕과 바람과 비와 흙이 저마다 살짝살짝 다른 마을입니다. 마을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기쁜 사랑을 마음에 고이 품으면서 저마다 새로운 꿈을 차근차근 이루려 합니다.
마당 생김새도 집집마다 다르지요. 마당에 놓는 살림도 집집마다 다르고요. 마당을 가꾸는 손길도 집집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마당 한쪽에 심는 나무도 집집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겨울이 되어도 마당에서 맨발로 뛰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망가진 세발자전거'를 갖고 새로운 놀이를 짓습니다. 작은아이는 망가진 앞쪽 손잡이를 들고 놀다가, 큰아이가 끌어 주는 뒤쪽 걸상을 붙잡고 '손으로 끄는 자전거' 놀이를 새삼스레 즐깁니다.
아버지가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워서 마을 뒤쪽 천등산 골짜기로 나들이를 가면, 작은아이는 먼저 앞장서서 숲길을 헤치고 싶습니다. 큰아이는 골짜기로 들어서기 앞서 빨갛거나 노랗게 물든 잎을 뜯어서 '가랑잎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마을 한 바퀴를 그냥 달리면서 도는 놀이를 할 적에, 아이들이 붙인 이름으로는 '마을 한 바퀴 놀이'인데,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날듯이 통통통 달립니다. 따로 장난감이 없이, 언제나 스스로 장난감이 되면서 기쁘게 하루를 짓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제 어버이를 장난감으로 삼기 일쑤입니다. 목말을 태워 달라는 둥, 엎드려서 말이 되어 달라는 둥, 드러누워서 배가 되어 달라는 둥, 어버이는 아이들 놀잇감이나 장난감이 됩니다. 그러면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을 장난감으로 삼아 봅니다. 아이들 손이나 발을 잡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돕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마당에서 깔깔깔 웃으면서 놀도록 북돋우는 놀잇감이 되고, 어버이는 다시 아이들이 타고 안기고 업히면서 노래하는 놀잇감이 됩니다.
마당에서 함께 뛰고, 마당에서 함께 일하며, 마당에서 함께 빨래를 널고 걷습니다. 마당에서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마당에서 함께 술래잡기를 하며, 마당에서 긴줄을 살살 돌리며 줄넘기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마당에 선 나무는 우리를 포근히 굽어보면서 겨울바람을 막아 주고 솨락솨락 겨울노래를 들려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5년 12월호에도 함께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