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1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히피아스의 참주(비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한 독재자) 정치 이후 클레이스테네스의 주도로 민주정을 성립 시켰다. 아테네는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정치 형태를 가지고 예술, 철학, 교육에 있어서 상당한 발전을 이뤄냈다. 소크라테스, 페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다양한 철학자와 정치가들이 아테네에서 배출되었으며 이런 요소들은 유럽 대륙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시대인 기원전 440~30년 즈음해서 절정기였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주도하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싸워서 결국 패배했고, 마케도니아 왕국이 정복하면서 기원전 338년 무너지게 된다.
아테네 이후 로마에서 공화정이 있었고 현재에는 민주주의라는 정치형태가 가장 경쟁력있는 형태라고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 정치형태를 띠고 있는 스위스를 제외하면, 도시국가였던 고대 아테네에 비해 커진 국가의 크기 때문에 수많은 나라들이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위임했던 권리를 가져올 때가 됐다, 그것이 가능하다"뉴질랜드 웰링턴 점거 시위에서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에서 6살 소녀의 "우리 시위하지 말고, 행진해요"라는 한 마디가 '집단지성'을 만들어냈고 시위는 평화롭고 즐겁게 진행되고 마무리되었다.
미국의 드라마 <뉴스룸>에는 지도자 없는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 대한 논란이 언급되고 있다. 주인공은 ACN 앵커 윌 맥커보이는 지도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월가 시위를 주도했던 한 여성은 그런 생각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월가 시위는 전 세계로 퍼지며 뉴질랜드 웰링턴에서도 시위가 발생한 것인데, 그곳에서 '지도자 없는 운동'이라도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국은 현재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정당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국민들이 언제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 정치와 시민간의 거리감에 의한 '시민 없는 민주주의'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기도 하다. '웰링턴 시위'가 보여준 '집단지성'을 먼 미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실험'은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IT를 기반으로한 '시민 있는 민주주의', '대의제와 공존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발행된 제1090호 <한겨레 21>은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루미오'라는 프로그램을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웰링턴 시위에 참여했던 뉴질랜드 출신의 청년인 벤저민 나이트는 집단적 의사결정을 돕는 소프트웨어인 루미오를 만들었다. 루미오는 '오픈소스'로 무상으로 스프트웨어의 설계도를 공개해 배포하고 적절하게 변형할 수 있도록 했다. 전 세계적인 집단적 의사결정을 돕겠다는 것이다. 루미오는 단순히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의제를 만들고 토론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진행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해서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사에 따르면 벤저민 나이트는 "인간은 유일하게 지식을 축적하는 동물입니다. 컵 하나를 만들 때도 조상들이 해온 시행착오를 뇌 속에 저장하고 있죠.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유일한 종입니다. 그런데 왜 그 집단지성이 인류가 오랜 기간 구축해온 정치제도, 시스템에서는 구현되지 않는 건지, 그게 늘 제가 해결하고 싶은 딜레마였어요"라며 해답의 실마리를 '웰링턴 점거 시위'에서 찾았다. 그는 "온라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해도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죠. 또 모두가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에 함께 있지 않아도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요"라며 해답의 실체를 온라인에서 찾았다.
루미오의 이런 시도를 시작으로 뉴질랜드 웰링턴의 '주류 제한 정책'을 비롯해 시민단체, 여행사, 기업들이 이를 활용했다. 루미오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토론장이 됨으로써 '시민있는 민주주의'를 통한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을 때보다 어떤 '진리'가 있을 때 혹은 상명하복의 구조에서 사람들이 더 쉽게 합의하고 납득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균관대학교 김범준 물리학 교수는 <세상 물정의 물리학>이라는 책에서 '의사소통 채널의 다양성'과 '때맞은 정도'를 비교한 그래프를 통해 상명하복 구조에서 다양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한동안은 때맞음이 약해지지만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면 결국 상명하복 구조보다 더 강한 때맞음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루미오는 이제 뉴질랜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대학생들이 먼저 루미오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동맹'도 루미오를 활용하고 있다. 또한 스페인의 '디사이드 마드리드'는 '시민의 직접 정치 참여'를 가능하도록 했다. 미국의 브리게이드도 루미오와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정치 참여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반대 의견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견이 올라오면 투표를 해서 의사를 표시하고 여론을 수렴한다.)
<중앙일보> 21월 7일 기사([이젠 시민이다] 휴대전화서 정책 투표하고 끝장 토론 … '앱 정치'뜬다)에 따르면 핀란드에서는 5만 명의 전자서명이 있으면 일반시민들도 법안을 발의하고 법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오픈미니스토리'라는 사이트를 통해 전자서명이 가능하도록 했고, '음주운전 가해자 가중처벌법안'이 회부되기도 했다.
나는 아래와 같은 <한겨레 21> 기사(호모 모빌리쿠스의 정치 실험)의 마지막 문장이 이와 같은 세계적인 현상을 정리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제일 마음에 들기도 했다.
"이제 위임했던 권리를 가져올 때가 됐다. 그것이 가능하다."이 한 문장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한계'로부터 우리를 꺼내고 우리가 스스로 주권자임을 생각하면서 주권의식과 책임의식을 지닌 '국민'으로 '시민 있는 민주주의'를 이루는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진행되는 '직접민주주의 실험'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직접민주주의 실험은 진행되고 있다. '더 나은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개발자들'은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일상생활을 구현할 수 있게 돕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하려는 한국인들의 모임은 이런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공존하고 조언하고 협조하면서 자체적으로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한겨레 21> 기사(헌법 1조 2항을 돌려드립니다)에서는 '빠흐띠'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빠흐띠는 "의사결정을 돕는 기능, 서로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합리적이고 건강한 토론을 유도하는 기능, 뉴스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 기능, 무엇보다 헌법 제1조 2항이 규정하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항을 실현할 수 있는 국민 법안 발의 기능 등"을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직접민주주의 실험이 이곳에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풀뿌리 시민정치 연구소이자 정치 벤처를 표방한 '와글'(WAGL)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진행 중인 직접 민주주의 실험의 사례를 찾아내고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루미오의 설립자인 벤저민 나이트도 이 단체에서 기획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한때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에서 대표 직무대행을 지냈지만 지금은 시민운동 활동을 하고 있는 문성근 대표는 '시민의 날개'라는 단체를 통해 시민정치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2008년 촛불 때 수백만 명이 미국산 소고기 반대서명을 하고 국민청원을 했지만 지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없다. 만약 시민의 포털이 있었다면 축적돼 있을 것이다. 평시에는 관심 분야에 따라 여러 커뮤니티에서 놀다가 시민의 힘을 정치적 에너지로 결집시킬 때가 오면 집중하고 축적할 수 있다"며 12월 10일에는 서울시청에서 '시민의 날개 베타버젼 오픈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시험 운용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한국에서도 아직 크게 알려져서 사회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민주국가에서의 국민들이 국민들의 주권의식과 책임의식을 '자유스럽게' 길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선거뿐만 아니라 정보의 전달과 흡수 등에 걸쳐 여러 변화를 발생시켜 충분히 효과를 발생키실 수 있다고 본다.
내가 현재 미국에 있는 한 지인분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방식이라면 범국가적 사회 시스템의 발전에 용이하지 않을까"라며 "'전자 네트워크' 라는 필드는 애초에 무정부상태를 전제로 묻고가기 때문에(통제하려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효과적이지 못하니까) 비전통적 개입과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범국가적 지리를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며 시각을 세계로 넓혔다. 나도 만약 언어의 차이 문제가 기술발전 등으로 극복된다면 충분히 '범국가적'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어쨋든 이를 위해서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실험들을 성공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관용이 필요하다. 한국의 국민들이 이런 변화와 실험을 받아들이고 실험이 성공적으로 되어서 '대중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