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은 삼성전자 반도체/LCD 사업장의 직업병 피해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강남역 8번출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70여 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측은 사옥 바로 앞에서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농성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번 나와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직업병 피해해결을 위해 마련된 공식 조정테이블에서도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며, 철저한 재발방지대책과 배제 없는 보상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올림은 오는 12월 22일 화요일 저녁 삼성전자 본관을 에워싸고, 직업병 피해의 사회적해결을 촉구하는 '221인의 방진복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21명이라는 숫자는 현재(2015년 10월 기준)까지 제보된 직업병 피해자 221명을 나타냅니다. 돌아오는 화요일,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기자글[관련기사] 12월 22일 221개의 방진복이 되어 주세요[관련기사]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반올림'이라는 단체 이름에는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인권을 반이라도 올려보자"는 갸륵한 뜻이 들어 있다. 삼성에서 일하다 병들거나 사망한 노동자와 그 가족·공인노무사·변호사·의사·인권 노동안전 활동가 등이 함께하는 단체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에 있어 결코 제 3자가 아닌 당사자들이다.
그 '반올림' 회원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서울 강남역 8번 출입구 앞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위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점심·저녁 시간 그리고 틈틈이 짬 날 때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하는 소리가 강남역 8번 출입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 울려 퍼진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혜경입니다. 저는 삼성에 들어가서 일하다가 지금은 집에 있어요. 병이 들어서 걷지도 못하고 잘 보지도 못하고 이곳저곳 고장이 나서 일도 못해요. 제가 이렇게 되고 나니 저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것보고 '나는 괜찮구나'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삼성은 저 같은 사람 계속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삼성은 '사과'를 마음 다잡아서 정중하게 하세요. 그리고요, 재발 방지도 제대로 하셔야 되겠어요. 제대로 꼭 해야만 해요.""안녕하세요? 저는 한혜경 엄마 김시녀입니다. 우리 딸을 비롯해 삼성엔 너무 많은 직업병 피해자들이 있습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공유정옥입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이유가 벤젠이나 방사선 영향이 의심되는데 삼성이 화학물질이나 작업환경에 대해 영업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의 아빠 황상기입니다. 우리 유미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린 지가 벌써 10년이 넘어 3달만 있으면 11년이 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던데, 삼성은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변한 게 있다면 삼성 반도체, LCD에서 백혈병을 포함하여 암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에 걸렸다고 제보한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올해 10월을 기준으로 221명이 제보를 해왔고, 그중 75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미를 보내고, 더는 이런 고통과 질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삼성과 싸워왔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는 늘고 있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삼성이 문제 해결하기 전까지 우리는 이 자리를 지킬 예정입니다. 삼성이 제발 진정성 있는 태도로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많은 분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강남역 8번 출구 앞을 지나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희는 오늘로써 ○○일째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사회적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 중인 반올림입니다. 지나는 시민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왜 농성을 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한 번만 귀 기울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삼성의 잘못된 태도를 꾸짖어주십시오."그 장소에서는 매일 저녁 시간마다 '삼성 직업병 문제 사회적 해결을 위한 이어말하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나는 지난 10월 25일 27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했다. 불과 10여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한혜경, 김시녀씨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의사와 공인노무사들이었다.
손가락 잘린 청년의 호소, 30년 지난 산재 현실은 어떤가
나는 "우리 모두 등에다가 '의사', '공인노무사', '교수' 이렇게 크게 써 붙이고 앉아 있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농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직업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 두지 않을까 싶은 간절한 생각 때문이었다.
1988년에 '노동과 건강연구회'라는 단체가 설립됐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이 일천할 때여서 단체 간판을 보고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노동자들에게 흑염소나 개소주 등 건강식품을 파는 곳이냐?"고 묻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같은 해 '제1차 산업 안전보건활동을 위한 공동교육훈련'이 열렸다. 전국의 보건의료인들과 노동자들이 100명쯤 모여서 2박 3일 동안 '지지고 볶으며' 치르는 꽤 큰 규모의 행사였다.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한 손에 검은 장갑을 끼고 야전잠바를 입은 청년이 내 옆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자기 순서가 되자 "장갑 좀 벗어도 될까요?"라고 말하고는 한쪽 손과 입을 사용해 장갑을 벗으려고 애썼다. 내가 얼른 그 청년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마이크를 받아 쥐었다.
장갑 속에서 나온 청년의 오른손은 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잘려나가고 없었다. 손가락이 잘린 정도가 아니라 손등 부분이 밥숟가락 크기만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참가자들 사이에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고 마음 약한 사람들은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모두 그 청년의 한 맺힌 외침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처럼 말이지요. 순간적인 사고를 당해 손가락이 잘린 사람은 그래도 산재로 인정돼 보험 처리가 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공장에 다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골병들어 버린 노동자는 좀처럼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산재보험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치료비조차 한푼 안 나와요. 여기 보니까, 훌륭하신 의사·간호사 선생님들도 많이 오셨는데 앞으로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병 걸리고 수은 중독에 걸려 병원에 찾아오는 노동자가 있거든 제발 좀 친절하게 잘 대해 주세요." 그것뿐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다쳐서 원통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잠시 숙연해진 사람들 앞에서 "노동 상담하는 하종강입니다. 어쩌구..." 말하는 내가 참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가 직업병 인정을 받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직업병을 '인정'하고 '보상'하고 '예방'하는 실태가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서울 한복판, 강남역에 있는 '반올림' 농성장에서 매일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에도 노조가 있었다면, 우리 딸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8년이 흘렀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역학 조사·산재 신청·불승인·행정소송 등이 이어졌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제작·상영됐다. 그 사이에 100여 명이 사망했고 지금도 200명 넘는 사람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 피해자 측의 주장이다.
2014년 8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이숙영씨의 사망을 직업병(정확하게는 '직업성 질병' 또는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직업병 인정 역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그 무렵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만나 인터뷰했을 때, 그동안 언론에 많이 시달렸을 사람을 다시 또 강원도 속초에서 서울까지 올라오게 한 것이 송구스러워 "판결이 확정된 뒤, 언론사에서 연락 많이 받으셨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 답은 놀랍게도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중요한 판결에 대해 왜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는지 이상했다. 만약 삼성 사건이 아니어도 그랬을까?
황상기씨는 평소 "삼성전자에 노조가 있었다면 우리 딸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황상기씨는 숨도 쉬지 않고 일사천리로 답했다. 황상기씨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옮긴다.
"그 전에 회사 택시를 할 때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노동조합이 있어야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에 노동조합이 없다고 하면 노동자는 아무리 옳은 지식을 갖고 있고 아무리 회사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노동조합이 있다고 하면 나의 억울함, 나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있어야지만 노동자가 안전하고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온 것입니다.만일 삼성반도체 공장에 노동조합이 있었다고 하면 노동조합에서 작업장을 안전하게 관리했을 거라고 판단이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노동자가 자기 작업장에 불안전하다고 하면 어느 노동자가 일을 하겠습니까? 자기 작업장에서 많은 유해물질을 써서 자신에게 해롭다고 하면 내가 누구한테 말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삼성반도체 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이거든요. 만일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말을 하고, 노동조합은 회사에 건의를 해서 작업장을 안전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만일 사업장이 안전하다고 하면 노동자들은 암·난치병 질환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유미는 죽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가정은 지금 이렇게 불행한 일을 겪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정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황상기씨가 '이렇게 불행한 일'이라고 간단히 표현했지만, 황유미씨 일로 할머니는 "애를 몹쓸 회사에 보내 이렇게 됐다"며 걱정하시다 곧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렸고, 집 사려고 알뜰하게 모았던 돈은 유미씨의 치료비로 모두 써버렸다고 한다. 강원도 속초에 있는 황상기씨 집을 방문했던 '반올림' 활동가들이 다 쓰러져가는 집 모습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잃은 적도 있었다.
황상기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가수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이다. 그 이유를 황상기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노래에 보면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런 가사가 나오잖아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가족들 얼굴을 다 보고, 씻고, 옷 입고, 먹고 하는 거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식구들 얼굴을 다 볼 수 있으면 행복한 가정이거든요. 지금은 가족을 다 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잖아요. 가사 중에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어.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는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요. 유미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을 끝까지 간다...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요."그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메던 황상기씨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강남역 8번 출입구에 서 있는 심정으로 호소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학장 하종강입니다. 12월 22일 화요일 저녁 7시, 강남역 8번 출입구 앞에 들러주십시오.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사회적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 중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이 추운 겨울, '반올림'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고 사람답게 일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사람과 사랑이 더 필요합니다. 준비해 놓은 방진복 221벌이 모자라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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