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제 슬슬 수학도 시작하셔야죠. 어머니가 집에서 학습지를 통해 시키고 있는 것은 아는데, 학교 진도에 따라 어느 정도 선행을 해주어야 해요."지금 집에 오시는 한글학습지 선생님의 말입니다.
사교육이라고는 한글 학습을 위해 방문학습지를 달랑 하나 하고 있는 쌍둥이 남매입니다. 매일 정해진 분량의 학습지를 추가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7세 내내 제가 목표한 것은 오로지 하나 '공부란 매일 해야하는 습관이라는 인식 가지기'였거든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학습적 성취보다는 아이들의 공부 습관이나 성격을 좀더 관심있게 분석하기도 했고요.
선행학습, 사교육이란 대체 뭘까요?얼마 전 맘 카페에서 읽은 에피소드입니다
그저께 학급 홈피에 내일 구구단 2단 시험을 볼테니 암기해오라고 해서 아이가 외우도록 한 다음 등교를 시켰다고 합니다. 아이는 무사통과 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다음날 표정이 좋지 않더래요.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어차피 너희들은 학원에서 미리 배웠을테니 본인은 가르칠게 없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느닷없이 3단부터 9단까지 쪽지시험을 치르게 했다고 합니다.
2학년인 자녀가 아직 구구단 외우기 선행을 안한 상태라 처참한 결과가 나왔는데, 더 큰 문제는 그 이후 선생의 발언이더군요. 선생님께선 점수가 낮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너희 엄마들은 학원도 안보내느냐, 학습지도 안하느냐'며 비웃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아이의 말로 표현하자면 선생님이 기분나쁘게 웃으면서 엄마를 흉보고 혼냈다는 거예요.
아이를 통해 비슷한 발언을 전해 들은 엄마들이 선생님의 반응에 화가 난 나머지 단체로 학교에 항의를 해야할 지 검토하고 있다고 하네요.
워킹맘인 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일로 연일 걱정만하고 있는데, 쌍둥이 남매가 들어갈 초등학교 역시 한글 익힘의 정도가 반 아이들 중에 크게 늦은 몇 명에게는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집에서 한글 학습을 시키라고 지적하는 것 같더라고 큰 아이를 같은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지인이 알려주시더군요.
작은 사건이지만 이것을 통해 학교와 사교육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첫째. 학교에서는 2단만 배웠다는데 전체 구구단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이 몇 명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통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구구단을 미리 학습하지 않은 것이 엄마 탓이되는 현실을 보며 기초 학습을 엄마에게 의존한다면 요즈음 학교에서는 대체 뭘 가르치는 걸까 궁금해지더군요. 더불어 엄마가 집에서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 것을 선생님이 공공연하게 언급한다는 사실을 통해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사명감이 정말 얄팍해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셋째. 엄마들이 선생님의 한마디에 항의라는 집단행동을 하는 현실을 보며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엄마들이 선생님을 무시하는 발언과 행동이 이어질 때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걱정스러워졌습니다.
닭이 먼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미리 선행학습을 해오기 때문에 학교의 학습 분위기가 바뀐 건지 아니면 학교가 이렇게 변했기 때문에 선행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건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이 의미 없듯 선행학습의 선후를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한 가지 사례만 보고 모든 학교의 구구단 수업을 일반화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또 선생님이 모두 위와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만점을 받은 어느 엄마는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도 하니 엄마들의 마음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죠.
어쨌거나 이러한 학교의 분위기는 우리 아이들을 점점 더 학교 밖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학교 밖에서 어느 정도 학습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거죠. 학교 수업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며 학교가 끝나자마자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이동하며 그 예쁜 시절을 보내버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안타까울 뿐이에요.
사실 아직 초등 입학 전인 쌍둥이 남매에게 누구나 학습이라고 여기는 수학이나 영어 같은 (타인의 힘을 빌은) 사교육, 특히 선행학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아서 이에 대한 글을 쓸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그렇다고 쌍디 남매가 아예 학습을 안한 것도 아니죠. 시판되는 한글과 수학 학습지를 7세 기간동안 진행했는데요. 이건 틀린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쉬운 과정의 진도에 대해 매일 정해진 분량을 해냈는지만 체크하고 있는 터라 엄마표 홈스쿨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럽지만 어쨌거나 학습을 하긴 했거든요.
학교에 가서 본격적인 학습을 시작하는 시기가 오면 지금과 다른 방법으로 엄마표 학습을 시작하거나, 다른 관점에서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언급하게 될 수도 있어 이번 글은 무척 조심스럽네요. 또 위에 언급한 어떤 선생님의 모습이 공교육에 종사하는 분들 전체의 모습도 아닐 거예요.
다만. 직업인으로서의 선생님에 대한 실망감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고 이런 것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저 스스로가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아이를 사교육으로 내몰게 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모르는 좋은 선생님들이 아직도 많이 계실 거라는 걸 알면서도, 또 가장 우수한 참고서는 교과서, 학교에 가면 교과서에 충실해야 기본을 세울 수 있다는 책들을 많이 읽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런 사례들을 접하면 불안해져요.
그 불안은 내 아이가 뒤쳐질까봐, 아이가 뒤처지는 것이 대해 제가 혹은 제가 일하는 것이 비난받을까봐 두려운 거겠죠.
7세인데도 벌써부터 셔틀을 타고 짧지 않은 거리의 영어학원을 다니는 유치원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쌍둥이 남매.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셔틀을 타고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부러운 행위임을 알기에, 영어 학원을 보내도 불안함은 덜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휩쓸리지 말자'고 다짐해봅니다.
셔틀까지 타면서 사교육 시장에 진입할 생각은 없지만 집으로 오는 선생님이나 엄마표 교육은 사실 거부감이 덜한 편이라 아이들의 초등 입학 후 방과 후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 채울 지 조금 고민이기는 합니다. 아마 제가 폴타임잡 워킹맘이 아니었다면, 어느정도라도 저에게 시간이 허용됐다면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엄마표 학습을 시켰을 것 같아요.
저는 정말이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회사에 계속 다니며 바빠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에 덧붙여 현직교사로서 격차가 많이 나는 아이들을 이끌어야하는 분들께는 선행학습을 과도하게 하거나 혹은 아예 안해오는(드물게 선천적으로 학습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 기준이 아니라 평균적인 수준에서 학습지도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평균 이하인 아이들을 따로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많으시겠죠. 그리고 그때 가정에서의 기본 학습을 강조하실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학습력이 떨어지는 경우 반드시 가정에서도 보충수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제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학교 박, 특히 엄마에게 과도한 선행학습을 강요하는 일부 선생님의 태도만 지적한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겨우 아이 둘을 돌보는데에도 이렇게 힘들다고 낑낑대는데, 수십명의 아이들과 매일 정신없이 생활하시는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선생님들의 노고에는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