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엠파티쿠스.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란 책에서 나온 말이다. 리프킨의 표현을 빌자면 21세기는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가 이끌어 나가는 '공감의 시대'가 된다고 한다. 호모 엠파티쿠스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신 지도계층이라면, 우리 정부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도 틀림없이 공감하는 인간일 것이다.
현 서울시장 박원순이 대권후보 자리에까지 올랐던 이면에는 박원순 시장 특유의 공감능력과 소통이 있다. 실제로 그는 세월호 사건 직후뿐만 아니라 재선한 후에도 가족여행 대신 직접 차를 몰고 팽목항을 찾아갔다. 이후 작년 7월과 12월에도 때때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장을 방문해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청년수당 정책도 박원순 시장의 이런 공감행보의 일환이다. 그는 청년수당 정책 수립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일의 희망이 있다면, 오늘 힘들어도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내일의 태양이 없다'고 한 어느 청년의 말이 그야말로 저의 가슴에 비수처럼 와 닿았습니다. 청년수당 정책은 절절한 마음으로 3년의 토론을 거쳐 만들어진 정책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청년수당은 이렇게 헬조선, 수저계급론 등 암울한 키워드가 난립하는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기존의 청년정책들은 대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기업이 청년들을 고용할 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정부가 지난 3년간 청년고용촉진을 위해 투입한 예산은 5조원이 넘는다.
그러나 정작 청년일자리는 단기인턴, 비정규직 등 일회성 일자리만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가 현재 시행 중인 청년일자리 사업 16개 가운데 취업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4개 사업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사실상 기업 보조금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2013년 약 2500억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중소기업 청년인턴제의 경우 정규직 전환 비율이 66.6%, 정규직 전환지원금 종료 이후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한 비율은 57.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기업에게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이 무용성과 비효율성을 낳자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 새롭게 시도하는 정책이 바로 청년수당이다.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원했던 기존의 정책들에서 시선을 바꿔 청년들이 미래 세대로서 기초체력을 기를 수 있는 곳에 직접 투자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청년들에 직접 돈을 주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이 정책을 폄하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기업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올바른 복지정책이요, 청년들에게 직접 돈을 지원해 효용성과 활용성을 극대화 하겠다는 정책은 어째서 포퓰리즘에 해당하는 것인지 그 기준을 도무지 알 수 없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 대통령께서도 4년 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월 30만 원을 지급하는 취업활동수당을 주장한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의 포퓰리즘 주장이 사실상 정치공세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들의 정쟁에 고통 받는 것은 고스란히 청년들의 몫이다. 중앙정부는 심지어 청년 수당 신설이 사회보장기본법 위반이라며, 지난 1일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차하면 정부가 서울시에 지급하는 교부세 중 청년수당 예산만큼 깎겠다는 소리다.
현재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청년복지인프라와 경제정책이 충분한 성과를 내고서나 이런 압박을 가한다면 이해라도 할 일이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시행중인 청년고용정책은 139개에 달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해마다 증가세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0%대에 달한다. 사실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의 인프라가 충분하다면, 지자체가 가뜩이나 없는 예산에서 굳이 돈을 쥐어짜내면서까지 무리할 필요가 없다.
박원순 시장의 청년수당은 기존의 미흡한 중앙정부의 청년 정책과 청년들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 하나의 타개책이다. 그들에게 호모 엠파티쿠스가 돼 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부디 청년들의 고통에 공감은 못하더라도, 훼방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