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 그중에서도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작가들을 대표작품 위주로 한 명씩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주로 영미권의 작가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 기자 말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범죄소설의 역사에 등장한 탐정 또는 형사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을 꼽는다면, 미국작가 제프리 디버(1950~ )의 '링컨 라임 시리즈' 주인공 링컨 라임이 아닐까 한다. 이 시리즈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캐릭터의 독특함이다. 작가가 1997년에 발표한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본 컬렉터>에서 마흔 살의 링컨 라임은 전신이 마비된 상태로 등장한다. 말하고 듣고 볼 수는 있지만 목 아래로는 왼손 약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다.
침대에 누워서 또는 특수 휠체어에 앉아서 도우미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한다. 얼굴이 간지러울 때 긁지도 못한다. 대신에 사건 수사 능력은 뛰어나다.
제프리 디버는 이런 인물을 만들려고 애초부터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육체적인 능력은 제로에 가까우면서, 사고력만큼은 남들보다 뛰어난 탐정을 원했던 것이다. 작가는 범인이 무기를 갖고 달려들어도 어떤 육체적인 저항도 할 수 없는 인물을 생각했다.
총을 쏘거나 달리기를 잘하거나 탐문수사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이 가져오는 증거만을 분석해서 범인을 추적하는, 머리만 있는 캐릭터를 원했다. 오직 정신만이 존재의 핵심인 인물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제프리 디버도 참 짓궂은 작가다. 아무리 소설 속이라지만 앞날이 창창한 한 사람의 육체를 망가뜨려 버렸으니.
침대에 누워서 수사하는 전신마비 탐정
시리즈의 두 번째 특징은 과학수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제프리 디버는 <본 컬렉터>를 구상하던 당시, 수사기관이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범인은 심리학자를 속일 수 있고 형사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DNA 판독 결과, 지문분석결과까지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해서 전신마비탐정 링컨 라임이 탄생한다.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링컨 라임은 뉴욕시경 과학수사국장이었다. 라임은 오직 증거만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범인의 동기에는 관심이 없다.
절대 증인을 믿지 말라고도 말한다. 사람의 기억력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얘기다. 그는 지하철역에서 범죄현장감식을 하던 도중에 무너져내린 대들보에 맞아서 척추의 제4경추가 박살나는 중상을 입는다.
이때부터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라임이 다시 스스로의 능력으로 호흡을 할 수 있기까지 8개월이 걸린다. 부인과도 이혼했다. 라임은 자살을 꿈꾼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숨을 쉬는데 8개월이 걸렸어. 무슨 말인지 이해되? 동물의 기본적인 신체기능을 습득하는데만 8개월이 걸렸어.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그린다거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게 아니야. 빌어먹을, 숨 쉬는 것 말이야!"<본 컬렉터>에서 라임은 자살을 막으려는 다른 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형사는 바로 라임의 파트너이자 이후에 연인이 되는, 역시 뉴욕시경 소속의 아멜리아 색스다. 색스는 전신마비 상태인 라임을 대신해서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다. 현장을 감식하고 미량증거물들을 모아온다.
그러면 라임은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다른 형사들과 함께 첨단장비를 이용해서 그 증거물들을 분석한다. 증거물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링컨 라임 시리즈'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리즈의 10번째 편인 <킬 룸>(2014년 11월 국내 발간) 에서는 20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저격에 성공하는 범인을 추적한다. 이제 라임은 더 이상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그를 붙잡아주는 것은 두 가지, 연인 아멜리아 색스와 과학기술을 이용한 범인 추적이다.
제프리 디버의 다양한 작품들
<본 컬렉터>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서 2000년에 국내에서도 모음 하나 바꿔 <본 콜렉터>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다. 주연은 덴젤 워싱턴과 안젤리나 졸리.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흑인인 덴젤 워싱턴이 링컨 라임을 연기했고, 아멜리아 색스라는 이름을 '아멜리아 도나위'로 바꾸었다(아마도 '색스'라는 발음이 주는 어감을 고려한 듯).
제프리 디버는 '링컨 라임 시리즈' 외에도 여러 편의 스탠드 얼론(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악마의 눈물>, <옥토버 리스트>, <블루 노웨어>, <도로변 십자가> 등이다. <악마의 눈물>에서는 최고의 문서, 필적 감정가인 파커 킨케이드가 등장한다. 필적을 통해서 그 글을 쓴 사람의 프로필을 파악하는 것이다.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사람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해서 심리를 간파하는 수사관 캐서린 댄스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옥토버 리스트>는 특이하게도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제프리 디버는 다양한 주인공과 수사기법을 작품을 보여주려 한다.
그렇더라도 많은 독자들은 '링컨 라임 시리즈'에 관심을 갖고 후속작을 기대할 것이다.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의 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링컨 라임은 첨단 의학의 도움을 받아서 전신마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궁금하기 때문.
작품 속에서 링컨 라임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은 오래전부터 골고다 언덕에 관심이 많았다고. 그곳은 2000년 전에 일어났던 범죄현장이기에 자신이 직접 조사해보고 싶다면서. 증거가 없기에 성서 속 이야기들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링컨 라임이 그 꿈을 이루어서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