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한 달 동안 이어진 '이탈리아 미술 기행'의 마지막 일정은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입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은 1년 내내 전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복잡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박물관을 관람하려면, 아침 첫 시간 예약이 필수입니다. 나는 물론 3개월 전에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다른 관광객들처럼 길게 줄을 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일찍 서둘러야 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9시부터 문을 여는 '바티칸 박물관'. 내가 도착한 시간은 8시 20분인데, 벌써 관광객들의 줄이 수 백 미터나 이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일렬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한 열을 이루고 있는 줄입니다. 나는 부러운 듯 바라보는 그들 곁을 빠른 걸음으로 휙휙 지나갑니다. 예약자 줄엔 5명 남짓 서 있을 뿐입니다. 이게 뭐라고 뿌듯함까지 밀려옵니다.
라파엘로 최후의 작품 <그리스도의 변모>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린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회화관(Pinacoteca)'입니다. '바티칸 박물관'의 '회화관'은 이탈리아 고전 회화사를 집대성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 회화의 시초로 인정받는 지오토를 시작으로 프라 안젤리코, 멜로초 포를리, 페루지노, 조반니 벨리니, 프라 필리포 리피,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로도비코 카라치, 카라바조, 구이도 레니, 니콜라스 푸생 등 한 달 동안 이탈리아 곳곳에서 만났던 위대한 작가들이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작가들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만날 수는 없습니다. 20개가 넘는 미술관과 성당, 박물관으로 이루어진 '바티칸 박물관'을 모두 보려면 하루 종일 바쁘게 걸음을 옮겨도 모자랄 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만 짧게 만나고, 나머지는 제목 정도만 확인하고 스쳐 지나가야 합니다.
가장 먼저 멜로초 다 포를리(Melozzo da Forli, 1438~1494)의 연작을 만납니다. <음악의 천사들>입니다. 원래 '산티 아포스토리 성당' 천장화의 일부였던 이 조각난 프레스코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끼게 합니다. 프레스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파스텔로 그린 듯한 부드러운 색채의 천사들은 인형처럼 아름답죠.
천상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배경으로 트라이앵글, 탬버린, 작은북, 류트, 바이올린, 그리고 낯선 악기인 레벡을 연주하는 천사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실제로 천상의 음악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제자로 엄격한 사실주의적 묘사와 원근법을 구사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일구었던 멜로초 다 포를리. 그가 남긴 수많은 성화들보다 이 '음악의 천사들'이 더 사랑받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한 달간의 힘겨웠던 여정의 끝을 달려가고 있는 나 역시 이 천사들로 하여 좀 더 행복해진 느낌입니다.
다음으로 페루지노를 지나 라파엘로의 명작 세 점을 한꺼번에 만납니다. <성모 대관> <폴리뇨의 성모> 그리고 <그리스도의 변모>입니다. <성모 대관>은 라파엘로가 10대 후반에 그린 작품으로 구도나 색채, 인물 묘사에 스승인 페루지노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천사들을 배경으로 사랑스러운 성 모자를 묘사한 <폴리뇨의 성모>는 자신의 양식을 어느 정도 완성한 20대 후반 라파엘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라파엘로 최후의 작품인 <그리스도의 변모>.
"만일 라파엘로가 오래 살았으면..."1515년에 바티칸의 예술 책임자가 된 후, 일에 대한 집착과 추진력으로 온갖 기력을 쏟고는 37세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라파엘로. 말년의 그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공무 때문에 수많은 작품을 제자들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 그림, <그리스도의 변모>는 그가 열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작품입니다. 비록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여 아래 부분은 제자 줄리오 로마노가 마무리 하긴 했지만, 라파엘로 최후의 걸작으로 꼽아도 아무 문제없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복음서에 나오는 두 개의 독립된 이야기를 상하로 담고 있습니다. 위쪽에는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타보르산에 오른 예수가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옆에 있는 두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예수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곤란에 빠졌는데 예수가 고쳤다는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쪽엔 예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 제자가 저 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듯, 신성한 모습으로 변모한 예수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죠.
그렇습니다. 그것은 천상과 지상의 대조이고 신성과 인간의 대조입니다. 고통받는 지상의 혼란스러움에 비해, 천상의 신성한 존재들은 날아갈 듯 가볍고 자유롭습니다. 지상의 존재이지만 신성을 떠받치는 3명의 제자들은 그 모습을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가린 채 쓰러져 있죠. 라파엘로의 이 극적인 대조는 르네상스 이후 다음 세대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만일 라파엘로가 오래도록 살았으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라파엘로에 이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만납니다.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입니다. 온갖 유혹을 물리치려 했던 성 히에로니무스. 그는 자신의 몸을 채찍으로 쳤다고 고백했는데, 이 작품은 돌로 가슴을 치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과 단축법을 이용해 히에로니무스의 고행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보다시피, 미완성입니다. 화면 오른쪽 배경의 성당이나 사자의 갈기는 스케치로만 남아 있죠. 그리고 다른 부수적인 형체들도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점이 오히려 성 히에로니무스의 고행을 더 실감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돌로 가슴을 치려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꼬리가 채찍처럼 휘어져 있는 사자가 만든 사선 구도도 특이합니다. 지금껏 그가 추구했던 원근법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기에는 더 없이 적합한 구도처럼 보입니다.
베네치아 화파의 시조, 조반니 벨리니도 만납니다. 밀라노와 베네치아에서 두 번이나 만난 벨리니의 <피에타>가 이곳 '바티칸 박물관'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피에타>는 기존의 다른 피에타들과는 전혀 다른 구도입니다.
이제 막 십자가에서 내려진 죽은 예수를 슬픔에 잠긴 요셉과 니고데모, 마리아 막달레나가 안고 있습니다. 보통의 피에타에서 만날 수 있는 성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은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비록 주인공들이 달라지긴 했지만 '피에타'의 슬픔은 여전합니다.
(* 21-2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