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이 SNS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진보 단체 텔레그램방 알림이 울렸다.
"병신년에는 병신년을 몰아냅시다!!!"그 밑으로 줄줄이 '♡' '짱!' 등 동조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병신이란 단어에 장애인 비하적인 요소가 있지 않나요? 진보 활동을 하는 여러분들은 단어 사용을 할 때 아름다운 말을 쓰시면 좋겠습니다."이대로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지나가도 되는 걸까. 외면해도 되는 걸까. 고민을 이어가던 중 '병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의견이 올라왔다. 생각했던 것만큼 최악은 아니구나. 긴장으로 경직됐던 몸이 풀어지며 마음이 편안해져 문제 제기를 환영하는 이모티콘과 지지글을 써서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병신년'이라는 짤방과 'ㅋㅋㅋㅋ'이라는 네 글자뿐이었다. 그 답장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누군가 내게 찬물 한 바가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쏟아 부은 것만 같았다.
'병신'을 쓰지 말자는 글 이후에 굳이 '병신년' 짤방을 올리고 웃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평소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늘 진보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소리 높여 정권을 비판하고 선출직에 당선된 조직 간부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장애인 차별은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던 것이다.
"대중이 사용하는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뭐라고요?이어서 몇 개의 글들이 올라왔다. '말꼬리보다 의미' '해학적 표현' '대통령 비판' 등 한결같이 '병신년'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민망하지 않도록 하려는 말들로 보였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지만 지탄하고자 하는 강자에 대한 '모욕의 도구'로서 약자를 쓰는 것이 적절한 걸까.
대중이 쓰는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면 그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장애인은 대중이 아니라는 걸까. 장애인을 대중에서 배제하고 강자를 조롱하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장애인)를 짓밟는 것이 진보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보라는 게 언제부터 방향성을 잃은 진보를 표방했는지. 진보주의가 등장한 이유를 이해한다면 사회적 소수자,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 게 도리 아닌가.
속상해서 계속 생각하면 눈물만 나고 손이 떨려서 텔레그램방을 나왔다. 논쟁은 그 밤이 지나고도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며칠을 걸쳐 진행됐다고 한다. 나는 그 풍자가 넘치고 대중들의 언어로 찬사받는 '병신년'이라는 말 덕분에 눈물 흘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군가 쉽게 말하는 '병신년'... 눈물이 납니다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지만, 웅웅 울려서 소음을 의미 있는 소리로 받아들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집중을 기울여야 한다. 종종 누군가와는 신체 기능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상적이라 불리우는 신체에서 뭔가 결핍된 존재로 혐오와 경멸 속에서 차별을 받았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보일까봐 늘 두려웠다. 전화 업무를 맡게 되면 메모지에 전화 내용도 못 받아 적는 '병신'이 될까 봐 불안에 떨며 2~3분 정도의 짧은 전화 통화 하나에도 식은땀을 흘렸다. 두 번, 세 번 무슨 얘기했는지 재차 물어보는 내게 사람들은 "너 진짜 병신이냐?"라고 했다.
병신이냐는 말 앞에서 나는 계속 작아지고 내 다른 몸을 숨기기 위해 애써야 했다. 제대로 듣지 못했어도 들은 척 웃어넘기고 고개를 끄덕이며 넘겨야 했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고, 누군가와는 다른 몸으로 이해받는 게 아니라 '결핍된 존재'로 떨어지고 배제되는 것, 이게 차별이 아니라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병신년'이라는 말이 나온 그 텔레그램방에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불편함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더니 오해하지 말고 맥락을 보라고 강요한다. 어떤 활동가는 자신은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응석받이를 받아주려고 활동하는 게 아니라며 페이스북 친구를 끊고 사업에서 배제시켰다.
약자 짓밟으면서 강자를 비판하겠다고?'병신'은 사전적 정의로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그런 사람으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언어다. 아무리 맥락과 의도를 고려해달라고 해도 '병신'이란 말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집합적인 비하로 작용하는 효과가 크다.
국립국어원이 관리하는 세종 말뭉치(코퍼스)라는 게 있다. 도서와 라디오, 강연 스크립트, 실제 대화 등으로 구축한 빅데이터다. 여기에서 병신의 용례를 구어에 한정해 검색해보면, 과반까진 아니었지만 유의미한 비율로 '병신'이라는 말이 '장애인'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맥락으로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병신'은 전국장애인 차별 철폐연대, 장애인 부모연대 등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해온 단어다. 게다가 국립국어원 '장애인 차별 언어의 양태에 관한 연구'(2009) 보고서에도 '병신'이라는 단어는 여타 단어 중, 장애인 차별성이 가장 높은 말이라고 분석해놨다.
병신이란 말이 비하를 위해 쓰인다면 그 말을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 쓰든 장애인을 비하의 의미도 띄게 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장애인 비하하는 말로 나온 단어의 맥락을 비장애인들이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뭐랄까 당혹스러울 따름이다(물론 장애인 중에도 병신이라는 표현을 불편해하지 않는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병신과 장애인 비하는 '병신'을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것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실재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걸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말이 정치적 올바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걸 두고 '응석 부린다'고 폄하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며 부정적인 인식에 기반해 장애를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맥락과 의도를 보라'며 피해자에게 그걸 용인하라고 강요하는 것. 누군가는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그 조직의 책임자들조차도 이 일에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2차 가해 행위가 계속해서 일어나도 공식적인 입장 발표조차 없었다. 비참했다.
사회적 약자를 짓밟으면서 벌이는 퍼포먼스에서 강자에 대한 비판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까. 시민들의 꿈과 희망이라는 구호와 장애인을 비하해서라도 병신년 못 잃겠다는 아우성 사이에서, 나만 이리도 외로운 걸까. 소외감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 오는 것이 모토인 비공개 그룹에 고민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육십갑자 병신년을 패러디해서 희화화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데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병신년 농담'들을 보며 나처럼 고통스러워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병신년'이 불편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년이 병신년인 게 약자에 대한 비하 용어를 공론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요. 힘내요." 댓글이 달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힘들다고 슬퍼만 할 때가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60갑자 병신년(丙申年)을 패러디하여 다른 사람을 비하하거나 조롱, 희화화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행동을 촉구하는 캠페인 기획안을 쓰고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생각보다 많은 연락이 왔다. 목표했던 인원보다 많은 분들에게 연락이 왔다. 모르는 분들도 파일을 보내달라며 연락들을 보내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행동하게 되었다.
#병신년_소재_농담_NO_캠페인#2016년은_사회적_약자와_소수자에_대한_비하_용어_공론화하는_해로솔직히 나는 이런 활동을 통해 '병신년'이라는 말을 굳이 쓰겠다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데엔 회의적인 입장이다. 아무리 내가 소리 높여 발버둥을 치고 무슨 난장판을 벌여도 쓸 사람은 계속해서 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병신년'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에 그 말로 인해 모욕감·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점, 우리의 사고는 언어로 구성돼 있고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우리가 발화하는 언어는 타인을 배제하거나 차별할 수 있다는 점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주고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발언을 하면 당신들이 말하는 '대중들의 호응'은커녕 지지조차도 잃고 조용히 털릴 수도 있다는 것, 뭐 조그만 위기의식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만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에게도 부탁드리고 싶다. 요즘 2016년 60갑자 병신년을 패러디해 현 정권을 욕하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현 대통령은 애먼 장애인을 비하하지 않아도 여성임을 부각하는 언어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비판하고 풍자할 점 많은 사람이다.
비판하고 싶으면 대통령의 정책과 관점, 문제가 되는 태도들을 이야기하자. 진보 정치가 바라는 세상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만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던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 노동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그 외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못 했던 사람들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세상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을 짓밟지는 말자. 인간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존재다. 처음엔 낯설겠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차별에 기여하고 소수자의 인권이나 인격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언어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고민할 때, 언어 생활도 우리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이 길에 독자분들도 함께 해주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