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서 학생을 능력이나 성취에 따라 단정적으로 판단해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 윌리엄 에어스, <가르친다는 것> 중에서지난 세밑 경기도의 한 고교 교실에서 벌어진 사건을 담은 동영상이 지금까지 온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업 출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께 빗자루를 휘두르고 욕설 등을 했다는 이른바 '빗자루 교사 폭행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동영상이 SNS를 통해 올라오자 순식간에 기름에 불을 붙인 듯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격렬한 분노로 들끓었다. 즉각적으로 강력한 처벌은 물론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해 따끔한 응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곧이어 동영상 속 학생들의 학교와 학년, 이름, 전화번호 그리고 그들의 SNS 계정 등 거의 모든 신상 정보가 드러났다. 이때부터 응징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무차별적인 폭력과 테러가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학생들에게 전화와 문자로 온갖 욕설과 저주의 말들이 날아갔다. 인터넷에서는 댓글과 SNS를 통해 역시 무섭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수천 개씩 말놀이를 이어갔다. 동영상보다 무서운 장면과 이야기들이 그렇게 공공연하게 계속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성에 차지 않는 일에 크게 분노하고 막말하며 터뜨리는 폭력적인 우리 사회의 일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만든 우리의 적나라한 실체이다. 이는 분노와 폭력에 익숙한 해당 학생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성찰하고 제대로 돌아보는 치료를 받아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전화는 꺼졌고 SNS도 문을 닫았다. 세상의 응징은 아주 정당하고 마땅한 것인 양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을 향한 세상의 분노와 폭력이 수위를 넘었다.
경기도교육청(이재정 교육감, 아래 도교육청)도 동영상 논란이 일자 12월 30일 발 빠르게 해당 학교에 나가 사건을 조사했다. 그리고 학교 측도 곧장 학생선도위원회를 열고 해당 학생들의 징계를 논의해 일부 해당 학생들의 퇴학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제 도교육청과 학교의 행정적인 처분만 남았다. 운명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다.
'빗자루 교사 폭행' 학생들 강제 퇴학 당해선 안돼나는 해당 학생들이 자의에 반하여 강제로 퇴학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학생들의 잘못을 옹호하거나 무조건 덮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의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그 책임의 방식이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낙인과 배제를 합리화하여 학교 밖으로 내치는 퇴학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 먼저 그들을 치유하는 일이 앞서기를 바란다(충격적인 상황에서 깊은 상처를 받았을 기간제 선생님의 회복을 위한 조치도 충분히 뒤따라야 할 것은 물론이다).
퇴학이나 민형사상의 책임이라는 것은 몇 명의 학교 부적응자 혹은 전과자를 세상에 던져버리는 일이 될 뿐이다. 이로써 학교는 잠시 평화로워질지 모르겠으나(곧 새로운 그들의 계승자가 나타날 테지만) 세상은 한 걸음 더 어둠의 늪으로 발을 디디는 꼴이 되고 만다. 아무런 처방을 받지 못한 채 학교에서 쫓겨난 이들이 우글거리는 사회가 평화롭고 아름다울 리는 없다.
학생을 가해자로 교사를 피해자로 낙인찍어 강력한 처벌, 민형사상 책임 운운하기 전에 학생과 교사 모두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고 뉘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그들의 내면에 도사린 상처들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 밖 세상에 나가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학교와 교육청의 역할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학생들을 내치는 게 당연지사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너도나도 그들을 학교 밖으로 내치라며 기름을 붓고 있다. 학교와 교육청은 여기에 휘둘리지 말고 학생 한 명 한 명을 치유하려는 용기를 내야하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흡연, 폭력, 장기 결석, 교칙 위반 등 다양한 이유로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내쫓을 것이라면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는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학교를 지우고 그 자리에 경찰서와 감옥을 더 만드는 게 훨씬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힘들게 하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수단으로서의 퇴학이 옳고 학교는 모범생들만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면 말이다.
무엇보다 이를 학생 인권 대 교권의 대립으로 보는 삐딱한 시선도 거두어야 한다. 학생이 교사에게 맞으면 학생 인권의 문제이고, 교사가 학생에게 맞으면 교권의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모두 인권의 문제요 폭력의 문제다. 폭력은 누가 하든 잘못이다. 교사 대 학생의 권리 충돌 문제가 아니다. 때리고 맞는 일에 누구의 편이란 있을 수 없다.
이들의 행위를 교권 침해로 규정하고 선생님에게 대든 무례하고 나쁜 녀석들에 대한 엄벌주의로 해결하려는 것은 길을 잘못 든 것이며 미봉책일 뿐이다. 학생들을 퇴학으로 학교에서 내쫓음으로써 눈앞에 보이지 않게 하여 마치 그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느낄 수는 있으나 이는 착시효과일 뿐이다. 희생양을 통한 '시범타'로서의 역할은 할지 모르겠으나 본질은 해결 안 된 그대로 남는다. '삭제키'를 누른다고 모든 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구호 잊지 마시길
논란의 중심에 선 고교는 (2015년 4월 기준) 재학생이 1400여 명이 넘고 교직원 숫자도 160명이 넘는 거대한 학교이다. 특성화 교과와 일반계가 함께하는 형태의 학교이다. 이런 거대한 학교에서 효율적인 학생 통제와 관리를 위해 부적절한 방식의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 일정 부분 있었을 것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실제로 2000년을 전후해 해당 학교에서 5년여 근무를 했던 한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도 이번과 비슷한 일이 몇 차례 있었다고 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문제의 치료와 해결을 도모하기보다는 모든 일을 덮고 넘어갔다고 했다. 그것이 왜곡된 학교 구조와 시스템으로 굳어져 빚어낸 비극일 것이라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진짜 위기란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잔인하게 괴롭히고, 금세 탄로날 거짓말을 버릇처럼 하여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세상을 향한 무차별적 분노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터뜨리는 내면의 상처를 지닌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고 징계와 처벌로써 배제-분리-격리하여 버린다면 지금의 우리 교육이 진짜 위기라는 방증일 터이다.
이재정 교육감은 취임 이전부터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구호를 신념처럼 새기고 다녔다. 이어 교육감이 된 후 '학생 중심 현장 중심'이라는 말로 무게 중심을 잡아 뒤를 받쳤다. 일부 고교에서 흡연 등의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학생들을 퇴학시키자 이를 지양하라고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한 와중에 벌어진 이번 사건은 이 교육감의 평소 생각을 실체로 드러내는 가장 극적인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학교장의 교육적 고민과 판단 역시 뒤따라야 할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영상 속 학생들에게 분노와 응징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이들도 이제는 그만 멈추고, 교육청과 학교가 가장 교육적인 방법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차분히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교육청과 학교가 교육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하게 하려면 분노와 저주가 아닌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학교의 처리와는 별개로 앞으로 해당 학생들이 서야 할 법정에서도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기보다는 충분한 교육적 치유로 무너진 내면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대한다. 이제 열일곱 살인 이들에게서 반성할 기회를 포함한 모든 시간을 박탈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